[DRIVE] 자동차를 팝니다 #2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by 김아침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 합니다.




작년부터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전기차 캐즘이었다. 캐즘(Chasm)은 새로운 기술 또는 혁신이 소비자 수용 곡선상 얼리어답터에서 다수 사용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격차나 장애물을 말한다.

캐즘 이론 (출처: 나무위키)


전 세계 자동차 OEM 들은 전기차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며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로의 새로운 전환을 발표하고 공격적인 투자와 사업 전략을 추진해 나갔다. 전기차의 상승세는 파죽지세였다. 글로벌 강력한 탄소 규제와 더불어 정책적 지원이 뒤따르고, 신기술로 무장한 테슬라의 급격한 성장이 이어지며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세는 전기차 성장을 추동하던 얼리어답터들의 구매 이후 다수의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하였다. 일부 불편함이나 위험함을 감수하는 얼리어답터와는 다르게 충분히 검증이 된 뒤 구매를 하는 다수 소비자들에게 아직 전기차는 충전의 불편함, 인프라의 한계, 짧은 주행거리로 인한 불안감과 가격이 큰 저항으로 다가왔다. 다시 말해 소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심리적, 물질적 전환비용이 예상보다 컸다. 설상가상으로 전기차 화재 이슈가 터져 나오며 전기차는 더욱 다수 소비자의 구매의향리스트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게 전기차 캐즘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큰 일이다. 경쟁사들은 급하게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투자를 회수하고 전기차 전환 시점을 유예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신규 공장의 가동은 멈춰갔고 많은 노동인력이 해고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OEM들이 그러했듯이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미래 신규 라인업들은 전기차로 전환을 계획하고 있었고 회사의 모든 인력은 최상의 기술력을 가진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캐즘 속 사업전략 수정이 없다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시기에, 소비자에게 외면받는 전기차가 대량 출시되고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완벽하게 구축했다고 생각한 EV 전략을 고수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아무리 완벽한 전략이라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전략은 생물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작용과 반작용을 반복하며 교정해나가야 한다. 마치 필요시에 파일럿이 계기비행이 아닌 시계비행을 해야 하는 것처럼. 그리하여 신속한 전략 피보팅에 착수했다.
기존 전략 방향성에 대해 아래 질문을 반복하며 전사적 방향성을 빠르게 수정하였다.

1. 전략적 공백이 있는 것은 아닌가?
2. 담론 자체의 자생력이 상실된 것은 아닌가?
3. 외부의 공격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4. 정당성에 대한 안일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5. 그로 인해 성찰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닌가?

사회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프레임이 변화임을 설명한다. 각 정치 진영에서 생성해 내는 담론 형성 과정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봐야 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이 질문들은 인지언어학 창시자인 조지레이코프의 명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기반으로 추출해 냈던 질문들이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에서 쟁점의 프레임을 어떻게 짜고 공적 담론에 적용시키는지를 논술한 책으로, 짜임새 있는 전략을 짜고 운영하는 데에도 깊은 통찰력을 주었다. 기존 EV 전략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하나씩 분해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전략을 재구성하면서 위의 질문들을 통해 당위성을 확보해 나갔다.


급격한 전기차 전환 대신, 새로운 내연기관 엔진 개발과 내연기관의 신규 모델을 한 사이클 더 운영하면서 시장이 원할 때까지 소비자에게 실질적 선택지를 제공하는 유연한 대응이 결정되었다. 회사의 산업 방향성이 이렇게 크게 피보팅 되는 일은 전례가 없다.


저 다섯 가지 질문은 담론적 프레임, 전략적 방향성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나의 관점과 결정이 맞는지 고민될 때 종종 나 자신에게 던지는 물음이 되었다.


뻔한 답이 있을 때조차도, 기존의 결정을 부정하는 선택은 참 어렵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매몰비용 처리해야 할 때가 있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기회비용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

어려운 고민을 하고 있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라며, 나의 선택들도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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