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옆자리 승객은 반값에 탑승한다
하늘을 나는 로망을 항공업이라는 특수산업에 근무하며 이루고, 더 많은 사람이 접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로 눈을 돌려 다양한 영역을 살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운송수단을 주축으로 하는 커리어 여정을 만들어 가고 있네요.
제 글은 총 3가지 주제로 이뤄집니다. 항공업 경험에서 파생된 '[FLY] 비행기를 삽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겪은 이야기를 '[DRIVE] 자동차를 팝니다', 그리고 찬찬히 걸으며 머릿속에 정제했던 생각을 담은 '[WALK] 생각을 씁니다'를 통해 다양한 소재를 소소하게 풀어 내려 합니다.
7말 8초, 많은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기간이다. 주변 지인들이 휴가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이 있다.
"아니 왜 같은 비행 편에 같은 이코노미인데 가격이 다 달라?"
해외로 여행을 가는 분들 중 누구나 항공권 검색을 하며 의아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전 세계 항공사들이 좌석 가격을 운영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숨겨져 있다.
항공 좌석은 보관이 불가능한, 그리니까 재고가 있을 수 없는 상품이다. 한 번 항공편이 뜨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항공편은 항공기 운용/항공유 등을 비롯한 어마어마하게 높은 고정비용과 낮은 변동 비용을 가졌을 뿐 아니라 상품 공급량이 제한적이라 단기간 공급 증대로 어려운 특수한 상품이다. 그러니 매 항공편마다 어떻게든 최대 수익을 내기 위한 Revenue management가 필수적이다. 출발 전까지 최대한 많은 좌석을 얼마나 비싼 가격으로 채울 수 있는가가 그 핵심이다.
각 노선별 담당자는 자신의 비행기 예약을 어떻게 꽉꽉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우리 모두 익숙히 알고 있듯이 수요는 가격이 낮을수록 높고 가격이 높을수록 낮다. 사실 저렴한 가격으로만 판매한다면 좌석은 만석이 되겠지만 수익은 창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선담당자들은 크게는 두 가지를 고려하게 되는데 1.소비자들의 지불용의 2. 판매가 포트폴리오 수립이다.
같은 목적지를 가더라도 소비자마다 지불하고자 하는 금액이 다르다. 마치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는 만원 정도 지불 의향이 있지만, 옆사람은 2만 원도 낼 수 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항공사는 세분화된 시장과 고객을 고려하여 같은 이코노미 클래스이더라도 항공권 규정(환불 페널티, 변경 수수료, 마일리지 적립율 등)을 차등화하여 운영한다. 그리고 주중/주말, 성수기/비수기 등을 통해 가격을 유연하게 운영하여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부터 낮은 가격의 다양한 항공티켓을 제공한다.
이로써 한 항공기에 다양한 티켓(일명 'Booking class')이 운영된다. 아래 그래프처럼 단일 가격으로 전체를 판매하는 것보다 다양한 가격의 티겟을 운영하는 것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전체 수익도 증대시킨다.
가령 이코노미 좌석이 200석이라면, 이 중 80만 원의 티겟을 몇 좌석, 60만 원의 티켓을 몇 좌석, 40만 원의 티겟을 몇 좌석 판매할 것인지, 한 항공기마다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내 최대 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선담당자의 업무이다. 200석의 좌석을 채울 수 있도록 주중/주말, 성수기/비수기 등 시점에 맞는 티켓 비중을 조절한다. 높은 가격의 티겟이 차지하는 좌석 수가 줄어들기도, 낮은 가격의 티겟이 차지하는 좌석 수가 늘기도 한다. 고정된 좌석 수 안에서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결괏값은 천차만별이다. 매 항공편의 예약율과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담당자의 눈 밑에 점점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내 노선 포트폴리오 챙기느라 내 인생 포트폴리오는 뒷전이다."
웃음 섞인 동기의 푸념을 듣노라면 마냥 같이 웃을 수가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매일 뜨고 내리는 항공편처럼 각 시점에 맞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어떤 시기에는 연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내 세상을 가득 채우고, 또 어떤 시기에는 연애의 비중이 사라지고 나의 커리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여 하루 24시간을 꽉꽉 매우기도 하고, 커리어 욕심이 잦아들고 가족이 가득 차 삶을 충만하게도 한다. 시기별로 다양한 관심사와 목표가 바쁘게 변화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 포트폴리오의 변화가 인생의 각 전환점을 만들어 내었다. 친구, 학업, 입사, 여행, 연애, 저축, 결혼, 이직, 가족 등등. 꼭 그 시기별로 필요한 것들이 있다.
당연히 적기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못할 때도 있다. 갑자기 생각지 못한 것에 꽂혀 한동안 헤매기도 한다. 나 또한 엉뚱한 무언가에 매몰되었던 때가 있다. 항공편으로 치자면 100만 원짜리 좌석만 200석을 팔려다가 텅텅 비어버린 항공기가 이륙해 버리는, 적자가 나는 포트폴리오였던 셈이다. 잠깐은 괜찮다. 인생의 좋은 비료이자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는 안된다. 다음 비행기를 띄울 여력도 남지 못해 장기적으로는 노선을 중단해야 버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