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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05. 2023

돈키호테의 런던 생존기

무식하면 용감하다

이스라엘에서 6개월의 비자 기간이 끝났다. 한국으로 바로 귀국하는 대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가기로 했다. 자원 봉사자들 사이 오고 간 고급정보에 의하면, 영국에선 여행자들이 비자 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했다. 워낙 물가나 임금이 비싸다 보니 서로의 필요에 의해, 암암리에 묵인해 준다고 했다. 계획에 없던 유럽 방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팔 티셔츠 달랑 한 벌 입고 이스라엘 공을 출발했, 도한 런던은 9 월 중순치곤 더 차게 느껴졌다. 공을 나서기 전, 가방에서 긴 팔을 아 두어 겹 었다. 수이 아 놓은 낙엽 위로 가을가 내리고 있었다. 어한 과, 물에 어 선명한 낙엽, 영에서 시작한 첫날의 기은 색 랜 세피의 사진 같다. 


일을 아야 런던에서 체류할 비용을 마할 수 있었다. 서둘러야 다. 가, 상점마다 들어가 vacancy가 있고 물으면 될 라고 다. 그 을 고, 상점 즐비한 거리로 나다. 서툰 영어지만, 선하게 던지는 vacancy 의미를 아차다는 듯, 은 이미 내가 구인지 기라도 한 듯, 점주들은 고개를 었다. 그런문에 VACANCY라고 대문자로 게 써 붙인 을 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금발의 여자가 데스크 뒤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배운 사람답게 vacancy 있냐고 물었다. 여자는 있다고 했다.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못 알아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동유럽 악센트로 미루어 내 악센트가 어려웠나 싶어, 사인 보고 들어왔다고 창문을 가리켰다. 여자는 다시 웃으며 얼마나 묵을 예정이냐고 했다. 오 마이 갓. Vacancy가 다 똑같은 vacancy가 아니었다. 호텔에 빈 방 있다는 사인을 보고 무식하게 들어가서 ‘일자리 어디 있소. 내가 하겠소’ 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아는 동생 Y가 이 얘기를 듣고는 “언닌 참 그러고도 잘 산다.”라고 했다. 그렇지? 그러고도 참 잘 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이면 감천이라고 다. 장에서 구직을 심히 더니, 지나가던 이 RegenStreet 000 가죽 킷 샵에서 직원 구다는 기 들었다며 이력서 고 가보라고 다. 집 느린 컴퓨터로 이력서를 보려 으나, 무언가 게 진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일단 킷 샵으로 다. 


일자리가 있다는 걸 고 려온 마음이 정으로 드러났었나 보다. 는, 가 게 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눈길이 다고 다. 검은 머리, 한 눈빛의 는 매 경험이 있고 물었다. 그다 하니, 이력서가 필요하다면서 A한 장을 건다. 지은 어떤 력을 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이력서를 그 자리에서 일필지 하고, 마지에 심히 일하다는 의지로 동그란 스마일 이티콘도 그려 넣었다. 다만, 매 SALE 란 단어를 SAIL로 다는 것은,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았다. 가 무정하게 말했다. 어디 배 러 가는 가 잘 못 온 줄 알았다고. 그의 농담에 깔깔리는 나를 보며 그의 가 부드워졌다. 


는 카슈미르 신으로 영업 기술이 신의 다. 그는 손님이 가게를 들어서는 간부터 상대를 하는 듯다. 두를 상대하지는 않는다. 그나 그가 나서면 아서려던 사람도 어인가 드를 내고 있었다. 에 쏙 드는 물건을 게 해 주어서 히려 그에게 고다고 다. 사이가 안 아 아서려는 사람에게도 같은 사이즈 같은 을 팔았는손님은 다른 재으로 고 만족해할 정도다. 돈을 무척 아하는 영인 할아버지 사장이 총애할 만하다. 


이력서를 즉석에서 썼다고는 해도, vacancy나 sail 사건에서 보듯, 난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영어보단 수학이 편했다. 그렇다고 수학을 썩 잘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영어는 체질이 아니라고 고등학교 내내 생각했었다. 독일어는 더 심해서, 외국어라면 진저리를 쳤었다. 


한국인의 악센트가 알짜배기로 들어있는 서툰 영어를, 아니 나를, 의 사장은 아주 못 마땅해했다. 그의 정과 빛이 려주었다. 샵 입구에 서 있던 나를 지나치며 의도적으로 고개를 려 마주한 얼굴에선 나 너 싫어’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대 에 기대 서서 나를 적으로 볼 소보다 위축되어 수가 더 았다. 치 른 는, 늘 J가 여러 벌 팔았다며 지도 않은 문에 너스레를 었지만, 사장의 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 주말 근무를 일까지 려주다고 을 때 거절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장의 리 때문이기도 다. 


근이 두어 시간 았던 어느 는 자기 내게 지하 고로 내려가 을 정리하라고 다. 워낙 은 물건들이 뒤죽죽 엉켜 있어 하루 종일 정리해도 을 댄 가 나지 않을 그으로 가라니, 생게 무슨 일인가 다. 내려가면서 흘끗 려다본 가게 구로 사장 할아버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가이 철렁 내려았다. 나보다 의 으로 사장의 방문을 한 는, 그게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는 사장이 가고 나서야 정리 다 했으면 라고 다. 마치, 이제 안전하다는 처럼 다. 


는 일부터 집을 나 고생을 이 다고 다. 지나가던 인이 그의 을 보더니 이 아다닐 운명”이라고 한 것이 딱 들어을 만큼 많은 을 지나왔다고. 외국에 서 일을 구해보려는 이들에게 너그울 수 있었던 건, 그도 수이 었을 타살이의 서러운 억 덕이었을지도 다. 단 한 번 큰 소리 내는 일 이 여러 나라에서 온 직원들을 아울다. 수해서 당황하는 직원에겐 여게 농담으로 장을 어주고, 할 은 고 간단히 전달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동안, 내내 든든다. 


몇 년 후 RegenStreet를 방문을 때 가죽 재킷 은 사을 접었는지 장소를 옮겼는지 을 수가 었다. 를 다시 볼 수 어 아쉬운 맘에 자리를 쉽게 지 하고 서성거렸었다. 여행비음에도 세금까지 낸 명세서를 으며 주중엔 에서, 


주말엔 런던 시내 한 복판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귀국했던 그때. 매니저는 나의 한 계절을 무사히 넘겨준 또 한 명의 고마운 수호천사였다. 




Photo: visitlondon.com, Regent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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