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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Apr 06. 2023

'빛으로 쓴 편지'

아들이 스페인을 가야 하는 이유

티격태격 사소한 실랑이 끝이었다. 약이 바싹 오른 다섯 살 아들. 녀석이 스페인에서 사 온 기념품 액자를 손에 들고 나와 씩씩 거렸다. 바로 던지지 않고, '던지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아직 기회는 있기에 그러지 않는 것이 신변에 이로울 것을 알렸지만, 아들에겐, 신변의 이로움 따윈 안중에 없었다. 오히려, 엄마가 아끼는 것을 볼모로 잡고 의기양양했다. 그리고 결국, 들고 있던 액자에서 손을 놓았다. 살릴 수 있거든 몸을 던져 받아보란 듯이. 오, 그 순간의 아들 표정이란. 내 새끼가 이렇게 얄밉게 보일줄이야.


바르셀로나, 파크 구엘에 갔다가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사 온, 값으로만 치자면 그리 비쌀 것 없는 타일로 만들어진 액자였다. 그러나, 가난한 배낭여행길에, 경비를 아껴가며 골라온 소중한 아이템이었다. 그걸 다시 사러 가려면,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반 토막 난 액자를 집어 말없이 선반 위에 올리고, 아들에게 침묵시위를 했다.


얼마 후, 고습도치처럼 가시 돋았던 녀석이 아기 고양이 소리를 내며 품으로 안겨든다. 화해를 시도하는 아들과 반 토막 난 액자를 함께 바라보았다.


“아들아. 화가 났을 때는, 어떤 행동도 어떤 결정도 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렴.”


너의 수많은 장점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일 수 있기에. 그 순간을 참지 못해 손해를 여러 번 보았던 엄마의 간절함을 담아, 아들을 꼭 안고 당부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참, 깨진 액자는 가우디 아저씨가 설계한 파크 구엘 옆 기념품점에 가야 다시 살 수 있단다. 꼭 다시 새 걸로 사다 줘. 더 크거나 비싸지 않아도 돼. 딱 그 정도만 받을게.’ 아들이, 파크 구엘이 어디에 있냐고 묻거든, 바르셀로나에 있다고. 비행기 타고 스페인으로 날아가야 한다고 알려줘야지. 녀석은 틀림없이, ‘너무 먼 거 아니야. 00 이 다리 아플 거 같은데.’ 라며 투덜대겠지. 그러면, ‘다른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망가뜨린 값. 그것을 치른다는 것이 쉬울 줄 알았느냐.’고 답해 줄 거다. 그리고 이왕 간 김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Expiatori de la Sagrada Família)을 꼭 다녀오라는 숙제와 함께.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어딜 간 김에 둘러볼 곳은 아니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겠지. 현재 140년째 공사 중인 성당. 가우디는 200년은 걸릴 거라 이미 예상을 하고 시작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혈통의 친구가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가우디. 그의 건축물에 대한 소개가 아침 방송에 나왔다. 어느 작가의 손끝을 거친 자막이었을까. 가우디 건축의 정점, 사그라다 파밀리아. 스테인드 글라스 가득한 내부에서 바라보는 찬란한 빛, 시간에 따라 푸르게 붉게 타오르는 빛을 보며, 가우디가 보내는 '빛으로 쓴 편지'라고 묘사했다. 순간, 내부공사 한창이었던 성당이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무지개 쏟아지는 마법의 편지를 다시 펴보는 느낌이었다.


가우디는 전차에 치이고도 낭인으로 오해받아, 뺑소니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역시 낭인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거부당했다. 뒤늦게 그가 가우디임을 알고, 부랴부랴 치료를 서두르는 이들에게, 가우디는 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이 우선되지 못한 것에 경종을 울리고자, 치료를 거부하고 사고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140년 넘게 기록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에 잠들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곳 사람들은 여기는 공사를 끝낼 생각이 아예 없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자체가 그냥 역사이고 관광 수입원이라며. 아침 방송에선 2026 년 정도에는 완공을 한다고 하니, 빛의 편지도 이제 마무리 단계로 가고 있나 보다. 공사가 끝나도, 관광 수입원이 줄어들진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가우디와 그의 작품을 보러 가야 하는 이유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반 토막 난 액자를 핑계 삼아, 아들이 '빛으로 쓴 편지'를 정성껏 읽고 오기를 바란다. 아들이 그곳에서, 가우디가 보낸 편지를 가슴으로 읽기를 바란다. 그 편지를 쓴 분의 철학과 진심도 만나기를 바란다.


‘아 맞다, 아들아. 잠깐 잊고 있었다. 갈 데가 한 군 데 더 있구나. 네가 깨뜨린 또 하나의 작품. 새가 알을 깨고 나오던 조각. 그건 밀라노에서 왔어. 어린 네 손끝에 그것을 닿게 했던 나의 잘못이 팔할이지만, 그래도 사다 줘. 네 힘으로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서 다녀왔으면 해. 그곳에 가면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마켓을 먼저 찾아보렴. 그리고 새든 알이든 그냥 비슷한 거라도 사다 줘. 어디서 샀는지도 모를, '알 깨고 나오는 새' 조각을 다시 찾아오라는 마음. 네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드라운 고양이 인형을 안고 아이는 그새 잠이 들었다. 요렇던 녀석이 금세 또 훌쩍 자라겠지. 껑충 커버린 아들이 액자 사들고 올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늦은 나이에 선물처럼 찾아온 너. 그렇게 내 삶, 내 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들아. 바르셀로나로 밀라노로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숙제를 하는 동안, 네가 채워가는 면 또한 옹골지게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마.


곤히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속삭여 본다.




www.ohmynews.com (2022년)


photo: https://twitter.com/sagradafam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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