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Lee Sep 21. 2023

바르셀로나의 태양

강렬한 여름

런던에 방을 정하기 전부터, 여름살이는 바르셀로나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런던 중심부의 물가, 특히 방세는 외곽의 Zone 4에 비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학생 둘이 함께 쓰는, 침대와 책상만 있는 기숙사 비용이 860 파운드라고 했다. 1 파운드가 1700 원에서 1800 원을 하던 때였으니, 한 달에 최소 백사십여만 원의 고정비용이 나가는 것이었다. 외국학생들의 등록금은 현지인들보다 몇 배가 비쌀 텐데 생활비까지 이리 비싸니, 유학생들의 런던살이도 쉽지는 않겠다 싶었다. 나 역시 당장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어차피 드는 체류 비용이라면, 바르셀로나에서 여행 경비로 쓰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함께 랭귀지 코스를 들었던 마리아에게 연락을 했다. 지금은 바르셀로나로 돌아가 일을 하고 있는데, 한 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신실한 성품을 알기에 그녀의 말 한마디에도 든든했다. 그곳에 가면 만날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런던 Zone 4에서 일할 때 한 집에서 살며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던 누리아. 그래서일까. 바르셀로나로 가는 길은 오랜 지기가 있는 동네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하는 긍정의 근원은 리즈와 런던에서 맺은 두 친구와의 인연에서 왔다. 


여름은 바르셀로나에서 지낸다지만, 런던으로 돌아오면 살 곳은 여전히 필요했다. 비싼 방값에 혀를 내두르며 점차 외곽으로 알아보던 중, 학교 옆 건물 관리인 니샤와 연락이 되었다. 니샤는 학교 직원들에게 방을 우선해서 할인 임대한다고 했다. 다만, 지금은 모두 임대 중이라 임대 가능 기간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되든 안 되든 방 값을 묻자, 한 달에 500 파운드라고 했다. 둘이 셰어 하는 기숙사가 860 파운드인데, 혼자 쓰는 방이 500 파운드면 대단히 감사한 가격이었다. 꼭 다시 연락을 해주십사 당부하며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 후, 니샤에게서 연락이 왔다. 때마침, 학교 직원이 아닌 임차인이 곧 이사 예정이니,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냐고 물었다. 기다리는 것은 괜찮은데, 혹시 짐을 먼저 '입주' 시켜놓고 갈 수 있을지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물었다. 그녀는 거실 한편에 놔두면 어떨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하우스메이트는 털털한 성격이라 그런지, 산더미 같은 나의 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짐이 들어갈 때, 특이하게 생긴 물건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던 J는,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무엇을 하더라도 서비스 비용이 들어가는 런던에서, 내 짐을 한 달간 무료로 보관할 수 있다니. 게다가 방은 학교 바로 옆이라, 출퇴근이 도보 이 분 거리였다. 이뿐이랴. 런던 한 복판에서 대영박물관 등 관광지를 걸어서 갈 수 있으니, 퇴근하면 여기저기 놀러 갈 곳도 천지였다. 신이시여. 진정 이것이 내 것이란 말입니까. 땡큐를 연발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하늘에서 던져 준 선물 보따리를 받아 든 기분이었다. 




바르셀로나 하늘에 뜬 태양은 밝았다.  하나의 태양. 그러나 런던의 태양보다 더 눈부시고 더 뜨겁게 느껴졌다. 화창한 날, 런던 잔디밭엔 앉을 틈이 없다. 언제 또 태양을 볼 세라, 웃통을 벗어젖히고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방금까지 쨍쨍하던 태양도 금세 먹구름이 가려버리기 일쑤인 런던. 그러나 바르셀로나에는 햇빛을 놓칠세라 조바심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씨에스타라고 불리는 낮잠 시간을 즐겼다. 한낮에 문을 닫고 쉬어야 할 만큼 강렬한 태양. 씨에스타는 생존의 방법이기도 했고, 밤늦도록 일해야 하는 그들에게 약잠 같은 선물이 아니었을까. 


마리아가 소개해 준 친구의 아파트. 거실 선반에 놓인 오스카 와일드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을 자다 깨다 했는지 모른다. 나른한 오후, 사각으로 지어져 둘레둘레 이웃이 마주 보이는 아파트에서, 때가 되면 간간이 접시 부딪히는 식사 준비 소리가 들려왔다. 지루할 만큼 평화로운 날들에 가끔 웃음이 났다. 이스라엘 키부츠 시절, 낮잠을 자다 목이 마르면 침대맡에 잘라 놓은 멜론을 실컷 퍼먹다 다시 잠든 이후, 그렇게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파트를 함께 쓰게 된 마리아의 친구. 그녀의 사촌 K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이였다. 가끔 있는 레슨 스케줄이 끝나면 시간이 자유로웠다.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며, 자신의 도시를 소개해 주겠다고 앞장섰다. 


바르셀로나는 다른 볼거리도 많지만, 그와 함께 갔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백 평 남짓, 대단히 정적인 공간이었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blurred space)'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은, 어릴 적 시골 할아버지 댁 툇마루 끝을 연상시켰다. 기와지붕으로 가려진 그늘과 지붕을 벗어난 네모난 마당 가득한 햇살. 안에 있어도 밖에 있는 듯, 밖에 있지만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안. 


'Less is more'. 


일반적으로, '적을수록 많다 또는 좋다' 하여 미니멀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진 말이다. 그러나 건축가 미스 반데어 로에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건축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했던 의미로 전해진다. 그의 철학에 공감하며 관람객 하나 없는 그곳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유년시절 느낀 한낮의 평화로움 속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화려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밤이면, 사촌 K의 친구들을 만나 스페인의 야식을 즐기고 함께 어울려 놀았다. 닭발은 먹으면서도 돼지 귀는 못 먹겠다고 하는 것이 내숭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웬만한 음식을 다 소화하는 내게도 돼지 귀는 낯설었다. 그들은 그런 나를 보고 재미있어했고 보란 듯이 냠냠 맛있게 먹었다. 음식은, 낯익음도 크게 한몫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가 다닌다는 맥주 회사. 익숙한 별표 딱지 붙은 맥주를 거듭 마시며 하얀 거품과 바르셀로나의 여름을 함께 마셨다. 


K는 자신의 본가가 있는 곳으로도 데려갔다. 작은 시골이라 인구가 백 여 명 정도 될 거라고 했다. 가는 데마다 아는 사람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총인구의 1/3에 달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눈 것 같았다. 작은 시골 동네. 여유롭고 구릿빛 건강한 웃음 가득한 그들의 삶이 행복해 보였다. 


K의 부모님은 처음 본 나를 귀한 손님처럼 환대해 주며, 멋진 음식을 내어 주셨다. 그 무엇보다, 지하 창고에 걸려 있던 햄 덩어리와 와인들, 그리고 직접 만들어 놓은 토마토소스 병들은 할 수만 있다면 런던으로 몽땅 공수해 오고 싶었다. 특히, 그들의 토마토는 런던 슈퍼마켓에서 파는 토마토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깊은 풍미가 있었다. 태양 빛 한가득 품은 토마토 수제 소스를 먹으며 얻는 삶의 동력은, 슈퍼마켓 통조림으로 때우는 한 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토마토의 감칠맛, 사람들의 여유 이 모두가 태양이 주는 기운을 넉넉히 받은 덕분 아닐까 싶었다. 넘치는 태양열을 세포마다 저장해 놓고 런던에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았다. 




누리아 집에 갔을 때, 현관을 들어서자 커다란 거울이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바로 그녀의 집 2 층으로 연결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현관은 공동 현관인가 했는데, 그냥 그 한 채가 그녀 아빠가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너 부잣집 딸이었구나 했더니 허스키한 목소리로 유쾌하게 웃는다. 이런 집을 두고, 런던의 방 한 칸에서 어찌 살았느냐 했다. 물론, 그때도 거실을 개조한 가장 큰 방이 그녀의 방이긴 했지만. 사교성 좋고 털털한 그녀는, 그래도 런던에 살 때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하긴, 런던에는 런던의 맛이 또 있긴 하지. 


누리아의 동네에선 축제가 한창이었다. 열정의 나라답게 밤을 꼬박 새워 축제를 이어갔다. 지치지도 않고 새벽 내내 활보하며 마치, 파티의 여주인처럼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잔을 높이 들어 챈트를 외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 농담을 하며 웃었다. 그녀를 따라, 반쯤 감긴 눈으로 좀비처럼 따라다닌 기억이, 기념품으로 받아온 파란 팀 컵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K는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내가 타려던 비행기가 취소되는 덕분에 항공사 측에서 업그레이드 해준 좌석과 항공편으로 더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귀국했다. 바르셀로나의 태양이, 런던에 가서도 자기를 기억하고, 다시 또 힘내 달려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타지에서 고생한다고 걱정하는 엄마의 기도 덕분이었을까, 막내는 길목마다 지켜주는 수호천사들의 도움으로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음을 알려 드렸다. 혼자만 누리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만큼. 


Photo from South Europe Travel https://southeuropetravel.com/barcelona-pavilion-mies-van-der-rohe/








이전 09화 수호천사가 점지해 준 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