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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Oct 19. 2023

스탠 바이 유

너를 위한 콘서트, 너를 위한 징검다리

"J, 베란다에  있으면  아래 바닥이 나를 부르는  같아."

 

표정 없는 얼굴로 하늘  ,    번갈아 보고 있을 그녀를 상상하니, 뒷목이 서늘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햇살 좋은 교정에서 밝게 웃던 그녀 얼굴이 스쳐갔다. 코가 예뻐  살거라 했는데. 그래서 너의 복스런 코를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이냐. '미쳤다. 정신 차리라.'라고 해야 할지. '조금만  견뎌보자.' 해야 할지. 런던에서 캐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붙잡을 수도 없는 상황, 친구의 날벼락같은 한 마디에 애가 탔다.

 

선우는 신학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아이와 함께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모태신앙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목사 준비하는 남편을 만나, 살기 좋다는 나라에서  아이를 키울  있어 막연히 '좋을 '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그녀는 지친 영혼을 내려놓고 싶어 했다. 

 

둘째 아이가 백혈병이라고 했다. 건강한 아이가  혼자  놀아도 힘든 것이 육아인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 어린  아이를 키우며 병원 치료까지. 지금껏 말로 다하지 못한 사연이 어디 하나 둘이었을까. 게다가 경제적 궁핍은 오랜 기도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 우리  말고 반찬 같은 거  먹으면 안 돼?"

 

아이들이 밥상을 보고 실망한 표정으로 물을 때마다 목이 메었을 친구. 신학공부에 바쁜 남편은 아내가 감당하는 무게를 헤아릴 여유가 많지 않았나 보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아픈 아이를 두고,  발로 걸어 신을 만나러 가고자 했을까. 대체 누구를 위한 신이길래, 처자식 고생은 뒤로 하고 신학을 공부한다 하는지 화가 치밀었다.

 

넉넉한  막내딸로 어려움 모르고 살던 그녀였지만, 가세가 기울어 친정에 손 벌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위로보다 빵이라도   있는 현금이리라. 그러나  역시 대학원 등록금과 비싼 물가를 감당하는 생활비로  빠듯한 터였다. 호기롭게 계좌번호 불러보라 할 처지가 못되었다. 그러면서도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했던 말을 금방이라도 행동으로 옮길까 쉽게 끊을 수가 없었다. 너도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맛난 것 실컷 먹자는 약속을 여러  하고 나서야 겨우 종료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든 돈을 보내주리라 다짐했지만, 막상 '어떻게' 돈을 모을까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사실 내게도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저녁 공연에 올 거지?"

 

학교 리셉션에서 일하는 쉐인이 물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키에 풍성한 곱슬머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멋진 그인데, 4인조 밴드에서 기타까지 치는 보컬이라니. 당연히  거라는 오케이 사인과 함께 웃어 주었다. 하루종일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끝내고 동료들과 함께 모였다. 일터와 도서관으로 매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일상을 반복하던 시기였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한  해도 괜찮을 '이유' 있는 외출에 더욱 신나는 금요일 저녁이었다.

 

목소리가 굵고 부드러운 데다, 느긋한 쉐인. 그가 그토록 리드미컬하고 알아들을  없을 만큼 빠른 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기타를 연주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꺼운 뿔테 안경 쓰고 서류 넘기던 그가 숨겨 두었던 열정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동료들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들의 경쾌한 음악에 휘파람을 연신 불며 환호했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의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 4인조 밴드에 밤새도록 빠져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도 흥겨움의 여운이 오래갔다. 주말 내내 쉐인과 그의 밴드 연주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네 명의 하모니와 에너지, 그리고 그들이 사로잡은 관중들. 그들이 선우에게 힘이 되어줄  같은 예감은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던  다짐 실마리를 신은 그렇게 풀어주려는 것이었을까.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를 받아 든 느낌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월요일 아침. 점잖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쉐인에게 다가갔다. 선한 인상의 그가, 나의 아니 선우 그녀의 아이들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주길 소망하며 운을 뗐다. 공연과 음악 얘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웃음이 더해졌다. 그러다 자선공연 얘기가 나오니 자못 진지해졌다.

 

"친구 둘째 아이가 백혈병인데, 친구도 아이도 많이 힘들어."

 

쉐인은 다른 멤버들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 쉐인의 밴드가 오케이를 하면서 자선공연 준비는 시작되었다.

 

'STAND BY YOO'

 

선우의 둘째 이름 끝 자 '' 따서 만들었다. 그의 곁을 지켜주고 어서 낫기를 바라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작지만 그렇게라도 힘이 되어, 선우가 단단히 땅을 딛고  이유를 알려주고 싶었다. 중력을 거스를  없는 우리는, 몸을 던지는 순간 후회해도 소용없는 상황을 맞이해야 하기에.

 

공연 장소는 학교 동료도, 대학원 동기들도 손쉽게 방문할  있도록 가까운 곳이어야 했다. 장소를 물색하던 , 학교  선술집 이층에서 공간을 대여해 준다고 동료 매튜가 알려주었다.  반에서 일하는 그는 평소 말수가 적고 쌀쌀맞아 소통이 적었다. 그래서 먼저 다가온 그가 의외였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팸플릿은 예전에 일하던 학교 동료이자 친구인 엘리가 디자인을 했다. 하늘색 바탕에 적힌 공연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STAND BY YOO. 인쇄는 인도 친구 아니따의 남편 인쇄소에서 맡아 주었다. 선우에게 공연 소식을 알리자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고맙다는 말만 되뇌었다.


동료들은 공연 전에 와서 테이블 배치를 도와주었다. 학교에서 일대일 서포트 해주는 아이 펠리페도 왔다. 그의 누나들을 비롯, 온 가족이 저녁 마실 나오듯 들렀다 공연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었다. 펠리페 아빠는 칠레에서 판사셨다고 하는데 같은 대학원에서 유학 중이었다, 세 아이 돌보며, 논문 쓰기에도 바쁜 와중에 보여 준 관심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아이도 아파 봤기에, 아픈 아이 둔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는지도. 친구들, 학교동료, 대학원 동기, 그리고 쉐인의 공연을 지원사격 해주러 온 그들의 친구들로 이층은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엘리의 오랜 친구인 마이크도 가수로 섭외되어, 공연은 더욱 풍성해졌다. 나는 공연 전, 근처에 있는 샵을 일일이 방문해 팸플릿을 전달했다. 그러면서 자선공연에 경품으로 기부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받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음 넉넉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장님은 식사권을 주었고, 종업원만 있던 샵에서는 뒤늦게 들었다며 공연 중, 와인 한 병을 보내왔다. 경품추첨 테이블은, 와인, 식사권, 문구류, 컵케잌 쿠폰, 책 등으로 가득 채워졌다.

 

공연 티켓은 2파운드로 정했다. 1파운드가 1700 -1800원 정도였으니, 4천 원 정도 기부할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었다. 공연  판매된 음식과 경품추첨 티켓 수익 또한 기금으로 보태졌다. BBC 라디오 피디를 하다가 컵케잌에 인생을  친구 케이트에게 부탁하니, 그녀는 흔쾌히 달려와 주었다. 그녀의 케이크 맛을 본 대학원 동기는, '영혼이 담긴 '이라며 감탄했다. 달달한 크림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도 케이트의 것 누구와 나눠 먹고 싶지 않았다. 개인 사업으로 바쁜 그녀가 수익을 모두 기부해야 하는 행사에 함께 해준다 할 때, 그녀를 끌어안고 'Thank you'를 연발했다. 나는 김밥을 말고 부침개를 부쳤다. 대단한 손맛은 아니었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 유학  대학원 동기들은 고향의 맛을 떠올리며 지갑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음식들은 그렇게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쉐인과 그의 밴드, 엘리와 마이크를 위해 잡채와 불고기 그리고 물만두를 대접했다. 장정들이 배불리 먹을 만큼의 양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엄지를 세워 맛있다며 좋아했다.  역시 멋지게 수고해  그들에게 양손 엄지를 세워 화답했다. 쉐인은 오늘의 성공적 공연에는 'J의 ' 크다며 청중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그날 밤, 선우와 그녀의 아이들을 위해 함께 달린 우리는 서로에게 오래도록 박수 쳐주었다. 계획부터 마무리까지, 나 혼자 크게 힘들여한 것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진행된 공연이었다. 게다가 준비하는 내내 재미도 있어, 시도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국의 동전 1파운드는 두툼하니 묵직하다. 음식과 경품 티켓 가격이 3-4파운드 정도이다 보니 쌓인 동전의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영국에 살면서 아마 가장 많은 동전을 세어  날이었을 것이다.  사람  사람 모아준 동전은 캐나다로 송금되었다. 선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고 내가 그랬듯, 잠시  말을 찾지 못했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담기엔, 그녀 마음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을 듯싶다. 

 

캐나다 은행에 친구 이름의 계좌가 없어 남편 계좌로 보내며, 이 돈은  네가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애들 반찬도 해주고 너도 그토록 먹고 싶은 던 과일,  도착한 하루만이라도 실컷 먹으라고 했다.   가득한 위로가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보태주게 될 줄이야. 자선공연 이후 내 삶의 의욕도 새롭게 차오르는 듯했다. 선우를 돕는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충전한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렇기에, 친구 돕겠다는 말에 선뜻 보내주었던 도움의 손길들 또한 즐겁고 뿌듯하지 않았을까.





남편 공부가 끝나고 선우네 식구는 귀국했다. 둘째도 무사히 치료가 끝나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한국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학교에선 회장으로 뽑히기까지 했다며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우린 약속한 데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꽃과 차를 함께 파는, 꽃 향기 가득한 찻집에 들러 차를 마셨다.


친구야. 살아줘서 고맙다. '지긋지긋했던 고생' 이야기일망정 마주 앉아 나눌 수 있는 것이 나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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