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운명적 만남을 믿게 되지요
함께 근무하던 런던 초등학교 행정 직원 체시가 오페어를 찾고 있다고 했다. 오페어(au pair)란, 프랑스어로 '동등하게'의 뜻을 담은 일종의 문화교류프로그램이다. 만 열여덟에서 스물여섯 사이 젊은이들이 어학 공부를 하면서 오페어 소개 기관을 통해 연결된 가정의 아이들을 일정시간 돌봐주고 적절한 보수를 받는다. 체시는 당장, 둘째 아들 등원 시켜줄 사람이 없어 걱정이 많았다. 나 역시, 여러 가지로 조금 지친 상태에서 일을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사정을 들은 그녀는, 블랙베리 과실수가 있는 뒷마당을 자랑하며, 근사한 부엌과 세월의 나뭇결이 느껴지는 분위기 있는 집으로 초대했다.
이전 오페어가 머물던 방도 예뻤다. 옥탑방이었지만 허리를 펼 수 없는 낮은 천정의 방이 아니었다. 제대로 개조해서 만든, 지붕에 창문도 달려 침대에 누우면 하늘이 보이는 널찍한 방이었다. 벽면의 반이 널찍한 창이라 앞에 책상을 놓으면 글쓰기에도 안성맞춤인 구조였다. 창 밖으로, 네 가구의 뒷마당이 나란히 보이는 푸른빛의 평화로움도 좋았다.
아이들은 이탈리아인 엄마와 유태인 아빠의 DNA를 받아, 잘 생긴 10살 13살의 소년들이었다. 런던에서 숙식이 일단 해결되니 뒷 일은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사직서를 낸 뒤 바로 이사를 했다.
오페어 기관을 통해서 들어간 것도 아니고, 나이가 이미 스물여섯을 넘어 학생 오페어도 아니었다. 하지만 친분이 있을 때 했던 구두 계약은, 둘째 아이의 등원과 방과 후 아들 둘의 저녁 챙겨주기, 간단한 가사 돕기 정도로 딱 오페어 개념의 직장이었다.
학교에서 체시는, 우아한 미소로 학부모들과 상담을 했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서일까 그녀는 상대의 말에 공감하는 정도가 더 강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녀는 학부모들과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생기 넘치던 표정을 잃곤 했다. 그녀의 내면이 밖에서 볼 때와는 달리 마치 요동치는 밤바다 같았다. 불행해 보였다. 옥탑방에서 지내게 된 내 입장에서, 그녀는 현재 상태보다 조금 더 행복해도, 아니 조금 덜 불행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녀에겐 런던에 안정된 집과 직장이 있다. 가끔 속은 태우지만 사랑스러운 두 아들도 잘 자라고 있다. 비록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남편과 이혼은 했지만 격주로 아이들과 자신이 채워주지 못하는 격한 스포츠나 야외 활동 등 교류가 원만하다. 아이들은 에너지를 받아 주말에 돌아오면 화색이 돌았다. 속내를 다 알 순 없겠지만, 새엄마와도 잘 지내는 편이고, 체시 또한 남자 친구가 있어 내 앞에서 새로운 네 식구의 정다운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우울감은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인 한편 지극히 주관적이기도 해서 남들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체시는 점점 선을 넘었다. 자신의 가장 편한 공간, 집에서 마주하는 나를 '막' 대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 행동, 표정은 밖에서 만나는 직장동료가 아니라 주종관계에서나 볼 듯한 것이었다. 이 말은, 오페어의 원뜻, '동등하게'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의미다.
먼저, 일의 강도가 점점 세졌다. 본인의 우울감으로 늘어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요구하는 영역의 가사도움이 넓어졌고, 때론, 내가 쉬는 일요일 밤 자신들이 파티하고 난 뒤처리를 그대로 두어, 월요일 내가 해야 할 일로 넘기기도 했다. 내가 해주는 생선요리가 맛있다고, 어른들의 저녁까지 은근히 떠넘기는가 하면, 내가 해 놓은 일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불평도 했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자신의 침대정리를 부탁해서 보니 동전을 떨어뜨려 놓고 나의 정직함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한 지붕 아래에서의 삶이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처럼 내내 아름답고 평화로울 거라 기대한 것은 실수였다.
그리고. 급기야, 내게 "너 행복하지 않지?"라고 거의 매일 묻기 시작했다. 일도 일이지만 정신적으로 더 지쳐갔다. 심신의 피로를 줄여보고자 학교 일을 그만두고 가정집으로 들어온 것인데, 이런 복병이 등장할 줄은 몰랐다.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매일 나의 불행을 확인하고 싶은 당신의 목소리 때문입니다.라고 답하고 싶었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를 생각하며 위안이라도 얻으라고 직접적으로 여러 차례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다시 물었다.
"너 행복하지 않지?"
'아, 떠나고 싶다. 이 옥탑방.'
어느 날 아침, 체시의 둘째, 열 살의 리오를 등교시켜 주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다가, 뜬금없이 치아 교정치료를 받고 있는 치과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기방문일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무슨 의도였는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전화했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평소 같으면, 안내데스크 직원이 응대하는데, 그날따라 담당 간호사가 받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방글라데시 억양이 귀엽게 들어있는 낭랑한 목소리로 잘 지내느냐 나의 안부를 물었다. 친한 사이가 아닌 관계에서 How are you? 물어보면, 설령 팔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있어도, 잘 지낸다고 괜찮다고 물어줘서 고맙다고 너는 잘 지내냐고 답을 한다. 그런데 나는 굳이 나의 상태를 그녀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OH, I AM NOT FINE."
놀란 그녀는 무슨 일이냐고,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상황을 아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환자분 중에 교장 선생님이 계신데 내일이 마지막 교정 치료 날이라며 지금 당장 이력서를 보내보라고 했다.
난데없이 치과에 전화를 걸어, 치과와는 전혀 관련 없는 얘기만 하다가 들은 꿀정보에 빛의 속도로 그녀에게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 후면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터였다. 게다가 치과에서 건네받은 이력서를 챙겨볼 이가 누가 있을까. 그러나 의심 한 방울 더할 틈도 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보냈다. 할 수만 있다면 온 우주에, 내가 여길 떠나고 싶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일주일이 지나갈 즈음까지 그녀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궁금해서 다시 전화해 보았을 때, 일단 이력서는 잘 전달되었다는 정도였다. 때가 때인 만큼, 학교 관련 구인광고엔 내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루가 일 년처럼 긴 긴 그때, 나를 이 옥탑방에서 구원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당시 나는, 할 수 있다면 최대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췄다. 그날은, 중국인 친구 켈리에게 전화해서 푸념을 하니, 자기 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친구의 조용한 차에 혼자 앉아 있으니, 널찍하고 예뻤던 옥탑방보다 마음이 편하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몸을 뒤로 젖혀 눈을 감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Hello?"
"Oh Hello..."
마치, 이렇게 전화를 거는 것이 낯선 듯.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수화기 건너편 남자가 먼저 웃었다. 순간. 옥탑방을 탈출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강하게 왔다.
"Well, I am Max, the Deputy Teacher at 000 Primary School.
I received your CV from the headteacher yesterday. Are you still looking for a job?"
(000 초등학교 교감인데, 어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당신의 이력서를 건네받았어요. 아직 구직 중인가요?)
"Yeahhhhhhh." (그런데요오오느낌)
나는 들뜬 감정을 추스르며 대답했다. Max 교감 선생님은, 여름방학 직전이라 개학 후 필요한 인원들을 이미 다 충원했는데, 그중 한 명이 어제 갑자기, 개학 후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내일이 방학식이라, 급하게 연락해서 미안하지만, 학교에 와서 아이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간단히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했다.
'미안하다는 게 웬 말이십니까.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데요.'
Of Course!!! I am coming!!!
내겐 너무도 감사하게, 누군가 방학 하루 직전에 못하겠다고 통보한 '그 일’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다섯 살 아이의 일대일 서포트였다.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고, 성장을 잘할 수 있도록 여러 기관 치료사들과 협업하여 운동을 돕고 학습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이는 귀여웠다. 나는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스며들었고 교감 선생님도 편안한 마음으로 여름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런던의 외곽지역인 Zone 4에서 시작해 Zone 2를 거쳐 Zone 1로 입성. 런던의 중심부로 직장을 옮기며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석사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던 학교이고, 힘든 시절 내게 기회를 준 고마운 학교였다.
학교에서 일하는 체시는 누구보다도 그 시기에 학교에서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을 얻은 듯 즐거운 표정으로 이별을 통보하자, 이런 일이 어떻게 저 불행해야 할 옥탑방 오페어에게 일어났는지 믿기 어렵다는 듯한 표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사실, 나의 교정치료 치과를 추천해 준 사람은 체시였다. 큰 아들의 교정치료도 그곳에서 받고 있기에 믿고 시작했다. 그래서, 다 체시 덕분이라고 그녀가 다 이해하지 못할 감사를 전했다.
나의 또 하나 수호천사, 치과 간호사님 덕에 런던 한 복판에서 일주일 만에 일을 구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기막힌 소식에, 친구들은 인복 대단한 사람이라며 축하해 주었다. 인복이라. 체시와의 인연을 어떤 복으로 설명해야 할는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녀의 옥탑방과 우울함이 아니었다면, 나의 수호천사 간호사님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인연의 타이밍을 위해, 체시와 동고(同苦)하며 견딘 시간이 없었다면, Zone 1로 뛰어넘는 징검다리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