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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Oct 21. 2023

프롤로그

선택지를 바꾸니 보인 행복

지난 열 달 동안 매일 글을 썼다. 돌아보니, 그것은 그냥 글쓰기가 아니었다. 지하로만 떠돌던 마음의 눈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구원의 작업이었다.


쓰다 보니, 이십여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슬쩍 들춰보니, 먼지 한가득 덮어쓰고 있던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었다. 혼자 여행하고 타국에서 일을 해보며, 여러 나라 사람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작가의 서랍 속에 담기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 배우고 익힌 언어와 문화는 즐거움 자체였다. 화장실을 공유해야 하는, 방 한 칸에 백만 원 넘는 월세에 살면서도 런던에서의 생활은 전반적으로 재미있고 활기에 넘쳤다. 그 원동력은 젊음과, 자유롭게 꾸던 꿈과, 런던에서 함께 했던 이들의 응원이었다.


돌아보면 아찔하고 위험했던 순간들. 어렵고 힘든 고비. 그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게 삶이려니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때, 이제 와서 돌아보니 곳곳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수호천사들이 보인다. 그들이 놓아준 징검다리를 건너며 만들어 낸 점과 선으로, 내면(內面)이 이루어졌음에 감사한다.


젊은 날, 당돌하면서도 패기 넘치던 모습의 나를 마주하니 새로운 에너지가 하루를 밝힌다. 과거를 보듬다 보니, 마음도 따뜻해졌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생기니, 심적 여유도 생겼다. 바쁜 일상 속, 매일 마주하는 '비교'를 내려놓으니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이 노는 것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이 백억 부자가 느끼는 즐거움보다 덜할 수 없고, 백억 부자라 할지라도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다 가진 것처럼 보이던 이들이 우울증에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희로애락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빈부격차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오래전부터 들어와서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진리가 나를 자유롭게 하기까지는 수많은 점과 선을 거쳐야 했나보다. 




은하수는 수억 개의 별, 가스, 먼지 등이 나선형으로 길게 이어진 별 무리다. 별들이 가진 에너지는 빛으로 발한다. 때론 가스와 먼지가 빛을 가려 어두워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크기의 별이, 제각각의 거리에서 빛과 어둠의 조화를 이루어 밤하늘엔 축제가 열린다. 우주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황홀경이다.


물 맑은 섬진강 오지마을로 다니며 은하수를 카메라에 담는 이가 있다. '하늘의 시간'을 기다린다고 하는 이원규 시인. 그는 "들꽃이 진짜 별이요, 집 마당에서 뛰노는 동물들이 별이요,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도 제빛을 가진 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관계가 모여 장엄한 은하수를 이룬다."라고 한다. 팔 년 동안 은하수를 만나러 다니며 얻은 깨달음이라 했다.


은하수엔 별도 있고, 먼지도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별들이라도, 별빛을 가리는 티끌이라도 그들이 없다면 밤하늘의 장관은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수많은 점과 선이 어울려 면이 이루어지는 삶. 색색의 면들이 만나 세워지는 입체적인 삶은, 마음속에 하나씩 간직한 우주 속 은하수일 것이다.


photo from san.chosun.com, 이원규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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