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대하여, 그리고 나의 본성에 대하여

본성대로 산다.


매달 1번, 을지로 작업실에서 3명이 만나 클로드를 공부한다.

이 모임에 내가 들어간 것, 나를 껴준 것에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른다.



2000년 초반 스마트폰 혁명을 전혀 몰랐고,

2010년 중반 핀테크 금융시장에 시작한 간편 결제 페이에 대해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AI만큼은 의지를 가지고, 의식을 가지고, 선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변화의 시작에 적극적으로 파도를 타보고 싶다.


시작은 그러했으나, 모일 때마다 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고

정작 해보려고 해도 시간이 없다.. (핑계다.인정한다.)

그러다 엊그제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처음 들었다.


M는 개안했다는 표현을 쓰며, 미친 듯이 새로운 배움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것을 공부하며 일하지 않는 자신이 너무 행복했다고 한다. (회사에 매여있지 않으니, 아이가 어린이집 간사이에 맘껏 공부할 수 있다며… 좋아했다. )

S는 워낙 사업체에 자동화를 도입 중이고, 이 클로드 모임에 리더이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타고 신나게 항해 중이다.





그런데, 나는??

나는 그런 변화에 몸을 열려고 해도 부담스럽고

내 의식 수준에서 그려지는 결과물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자꾸 피하고 싶고 부정하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이걸 보며 내 본성과 타인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새로운 것, 변화를 무척 싫어한다. 안주하고 싶어 하고, 자꾸 내 상황, 내 나이 또래의 주변을 살펴보며

굳이, 저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잠식시킨다.


내 본성은 이렇다.

그냥 작은 것에 만족하고, 우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본래의 본성과 자꾸 싸우는 다른 본성이 있다.

‘너 이렇게 계속 살면, 그냥 딱 니 수준만큼만 아이들이 성장하게 된다.’

이 의식은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본래의 본성과 싸우는

새롭게 똬리 틀고 있는 이 의식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2012년에 맥북을 처음 샀다.

시동을 켜고,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윈도우 운영체계가 아니라는 걸 알고 거부감이 말도 못했다.

오죽했으면, 10만 원을 주고 윈도우를 설치해서 사용했겠는가...

다신 맥북은 쳐다도 안 보겠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며, 작은 변화도 용납하지 않던 흥선대원군이었다.



그리고 2025년 13년 만에 다시 맥북을 샀다.

이번엔 1달간 혹독한 적응기간을 가질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다.


아이들에게 좋은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딱 내 뒷모습만큼만 성장할 아이들 덕분에

변화하려고 하는 본성이 점점 힘을 얻는 것인가 싶다.


새로운 배움에 대해 신이난 친구 M을 보며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변화가 골치 아픈게 아니고, 저렇게 신나는 일인가...? 나랑 정말 다르구나...”

그런데, 나도 그 변화를 향해 몸을 열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본래의 본성을 누르고 새로운 본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보자.


이러나 저러나 본성대로 살고 있다.

본성이 본디 하나뿐이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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