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가 넘어서 책을 읽고 역사를 궁금해 한다.
4월 엄마의 칠순이었다.
전라도 시골에서 상경해 결혼을 하고 쭈욱 경기도에서 살아왔던 엄마
경복궁을 가보고 싶어
경복궁? 서울? 경복궁?
이내 정신이 들었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던 아침,
약속시간보다 일찍 집에 온 엄마와 함께 3호선을 타고 경복궁역에 도착했다.
도슨트를 듣는 내내, 진지한 표정에 흠칫 놀랐다.
나에게 좋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더 나아가 넓은 세상을 펼쳐보여 준 적이 없다는 사실에 원망이 깊다.
21살, 대학생 대표로 뽑혀 호주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여권도 없던 내가 호주에 가게되었다고 하니,
“위험하다. 난 네가 안 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호주행을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은 경험을 포기한 것인지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자격지심, 자신이 가장 착하고 매사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분
가난했던 가정형편상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영어 알파벳도 읽지 못하고, 코스트코 발음도 어려워했던 엄마.
매번 코스트코를 콧스트라고 발음하는 엄마를 부끄러워했다.
집안이 좀 살만해지고, 엄마는 알파벳 공부도 하시고,
여전히 단순노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쓰임을 계속 찾으셨다.
타인에게 받는 돈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는 항상 일을 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한 개당 5원 하는 전자부품을 꽂는 알바를 하셨고,
일하고 받은 만 원짜리 몇 장으로 우리 입에 들어갈 고기를 사 오곤 했다.
(아빠는 집안 꼴이 엉망이라며 화를 냈지만, 그런 아빠 몰래 지독하게도 일을 했다.)
10년 넘게 꾸준하게 저녁 8시마다 집 근처 목욕탕에서 목욕탕 청소를 일도 하셨다.
오랫동안 주말마다 예식장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하셨다.
몸이 골병이 들만 한데, 본인이 받는 돈 이상의 일을 하셨다. 참 열심히 사셨다.
요즘은 건물 청소일을 하신다. 버젓하게 4대 보험이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이다.
새벽 4시에 나가서 오후 2시까지 건물을 청소하시는데
얼마나 자신 몸 아끼지 않고 일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가끔은 왜 저렇게 아등바등 대면서 살까? 그모습이 지긋지긋한데
그렇게 엄마의 쓰임을 한 달에 한 번씩 받는 월급으로 생각했다.
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지만, 절대 닮고 싶지 않은 나의 엄마
그런 엄마가 경복궁을 다녀와서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니…
“나 요즘 한 달에 한 권씩 책 읽어.
얼마 전에 김미경 책도 읽었어.
회사 사무실에 책이 많더라고.
가져도 읽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소장님이 그러래.
그래서 청소 마치고 쉬는 시간에 책을 읽어.
부모가 인생을 살면서 혜안을 주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에
속았다는 착각에 엄마를 잔잔하게 원망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엄마도 주변에 혜안을 주는 좋은 어른이 없어서 방법을 몰랐구나…’ 알 것 같다.
어디서 자랐는지,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는지
성장과정에서 좋은 스승이 있었는지 좋은 어른이 있었는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역사 문화 예술을 보면서 자랐는지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아비투스가 정말 싫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도 모르게 쌓여온 아비투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긴 엄마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경복궁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런 엄마를 마냥 원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그 안 깊숙한 앎에 대한 본능이 70세가 넘어서 나올 만큼
삶이 고단했구나.
엄마에게 책 선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