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있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무도 익숙한 이 시의 작가는 러시아의 ‘국민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1837)입니다. 그는 청년 고골의 영웅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비록 열 살 위였지만, 푸시킨은 이미 차르마저 무서워하는 당대의 위대한 시인이었죠. 1829년, 젊은 고골은 자신이 쓴 시를 가지고 푸시킨을 찾아갑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만남은 불발되었는데, 그때 가지고 간 시에 대한 세간의 평이 형편없었거든요.
고골이 자신의 영웅과 첫 만남을 가진 건 그로부터 2년 후인 1831년이었습니다. 푸시킨은 젊은 작가에게 애정을 가졌고 그를 이끌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고골이 고향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담을 소재로 발표한 <디칸카 근교의 야화>에 대해 푸시킨은 “진정한 즐거움이 가득 차 있다”고 찬사를 보내며 신인 작가의 출발을 격려했습니다. 1836년에는 단편소설 <코>를 자신이 주간하는 잡지 <동시대인>에 실어주었고, 고골의 유명한 희곡 <감찰관>은 푸시킨이 제공한 에피소드를 소재로 취했고요.
고골은 우울증으로 마흔셋의 나이(185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서른여덟의 너무 이른 나이(1837년)에 생을 저버린 자신의 영웅이 그린 궤적마저 따르고 싶었던 걸까요. 그건 저의 지나친 추측으로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데, 저로서는 너무도 좋아하는 두 작가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워 뱉은 말일 뿐입니다.
<외투>는 푸시킨의 격려에 힘입어 소설가와 희곡작가로서 10년을 왕성하게 활동하고 세간의 인정을 받은 1842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단편들을 모은 선집에 실렸지요. 고골은 이 선집 이후로 생을 마감한 1852년까지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습니다. 고골이 쓴 열아홉 편의 단편소설 중 최고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외투>는 ‘작은 인간’이라는 전형적인 인물을 창조해 내었습니다.
소설 초입에 나오는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관청에서 한 관리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 관리는 … 키는 작고, 얼굴은 약간 곰보에다, … 이마는 조금 벗어졌고, 안색은 치질 환자처럼 보였다.”(75)
외모만으로도 몹시 작고 추레해 보이는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아니,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관심을 받는다 해도 그것은 괄시와 홀대 이상이 아니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관청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런 경의도 표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그가 지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현관으로 파리 한 마리가 날아 들어온 양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과장들은 냉정한 폭군처럼 그를 대했다.”(77)
그는 서류를 정서하는 일을 맡고 있는 9등 문관입니다. 그는 정서하는 자신의 일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그의 성실함과 탁월한 능력을 높이 사, 관청에서는 그에게 더 높고 쉬운 보직을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자신이 그 일을 못하겠다며 정서하는 일을 달라 청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히 정서 업무만을 맡는 9등 문관”으로 남았습니다.
“정서를 하면서 다채롭고 즐거운 자신만의 세계에 접하여 만면에 화색을 띠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자모를 쓰는 순간이면,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버렸다. 웃음을 짓기도 하고, 눈을 찡긋거리기도 했으며, 마치 펜으로 써 내려가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는 듯이 입술을 움찔거리기도 했다.”(79)
‘그 일’이 없었다면 관청에서도 집에서도 정서하는 일과 종일 사랑을 나누며 하루하루 평온함을 이어가는 쉰 살의 삶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사는 곳은 겨울이면 혹한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페테르부르크이고,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는 혹한 앞에 선 구멍 난 부채와 같았습니다.
“북방의 혹한은 … 관리들의 코를 사정없이 강력하고 매섭게 후려치기 시작한다. 고위 관리들마저 혹한으로 이마가 아프고 눈물이 질금거리는 그 시각, 가엾은 9등 문관들은 의지할 데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마는 것이다. … 외투 등허리와 어깨 부분 몇 군데가 무명처럼 닳아 있음 … 천은 속이 비칠 정도로 해졌고 안감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81~82)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재봉사를 찾아갑니다. 덧대어 달라고 말하죠. 하지만 재봉사는 바느질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새 외투를 지으라고 합니다. 연봉 400루블의 9등관에게 80루블의 새 외투라니, 그건 너무도 두려운 말이었습니다. 수선조차 할 수 없는 ‘덮개’이고 보니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큰맘 먹고 1년 동안 80루블을 모으기로 합니다.
“저녁마다 차 마시는 일을 그만두고, 초를 켜지 않으며, 길을 가면서도 종종걸음으로 걷다시피하여 신발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하며,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 대신 미래의 외투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늘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양식을 섭취하였다.”(90~91)
그 노력은 정신적인 쾌감에 이를 만큼 신성한 경지에 이릅니다.
“그는 생기 넘쳤고, 삶의 목표를 세운 사람처럼 성품이 강고해졌다. 표정과 행동에서는 의혹과 우유부단함, 망설이고 주저하던 모든 성향이 저절로 사라졌다. 때로는 눈에서 불꽃이 튀었으며, 심지어 대담무쌍하고 용맹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기도 했다.”(91)
마침내 그가 새 외투를 입은 그날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일생 중에 가장 찬란한 날이었습니다.
관청에서도 새 외투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고, 부계장은 새 외투를 축하한다는 뜻의 자신의 명명일 파티에 직원들을 초대했으며,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도 초대에 응했습니다.
외투의 주인공이 부계장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더니 곧바로 그와 새 외투에 대해 잊었습니다. 집주인의 만류로 샴페인 두 잔과 만찬을 모두 먹은 새 외투의 주인공은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강도를 만나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죠.
아, 그의 이데아가 사라지다니, 단 하루를 함께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그는 외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죠. 그러다 ‘중요한 인사’에게 찾아가게 되었는데, 중요한 인사는 외투를 찾는 걸 도와달라는 그의 청에 “어느 안전이라고 그런 행동을 하는가?”라며 버럭 언성을 높여 그를 내쫓습니다. 혼비백산해서 집에 도착한 가엾은 주인공은 그만 앓다가 죽고 말았지요. 그의 죽음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차에 실어내 매장했다. 예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이제 페테르부르크를 떠났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소중한 존재인 적이 없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심지어 흔해 빠진 파리도 … 소홀히 하지 않는 자연과학자의 주의조차도 끌 수 없었던 존재로 사라져버린 것이다.”(107)
이렇게 작은 인간의 삶은 아주 보잘것없이 끝나고 마는 걸까요?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비운의 주인공이 죽은 이후 페테르부르크에는 외투를 강탈하는 유령이 출몰합니다. 사람들은 그 유령이 9등 문관이라고들 합니다. 특히 버럭 화를 냈던 ‘중요한 인사’는 파티가 끝나고 애인에게 가는 길에 유령을 만났고, 그 유령이 바로 자신이 쫓아낸 사람임을 알아봅니다. 그는 얼른 자신의 외투를 벗어놓고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작은 인간의 복수가 마음에 드시나요. 요즘 유행하는 복수극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이지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와 닮았지만 유령은 중요한 점에서 그와 달랐습니다. “훨씬 키가 커지고 매우 커다란 콧수염을 기른 유령”(113)이었습니다.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이 큰 주먹을 들이대며 ‘뭘 원하는 거야?’라고 물어”(113)보았습니다. 몸집과 목소리가 커진 존재. 죽어서라도 작은 인간에서 탈피하여 큰 인간, 아니 큰 유령이 된 존재. 이 복수극의 결말이 하도 소박해서 애잔함까지 더 커지는 듯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건 작은 인간은 존재합니다. 걸리적거리는 파리 한 마리보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작은 인간. 대체 ‘작음’은 어디에서 연유할까요? 고골은 그 문제를 당시의 관료사회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사람의 작고 크고를 결정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영혼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아무 문제가 없고 더없이 행복한 존재지만, 그의 낡은 외투는 ‘누더기’ 취급을 받지요. 하찮은 신분은 그러합니다. 중요한 인사는 그 누더기 앞에서 버럭 화를 내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요.
고골의 이 과장된 이야기가 과연 과장일까요. 이야기를 읽을 때 마음속에서 생기는 혹한의 바람이 과장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유령이 되어서 벌이는 복수가 아니라 조금 더 살벌한 그 무엇이라면 물론 이 작은 인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보내는 애잔함이 반감될까요? 모르겠습니다. 작은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게 상대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절대성도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목이 메입니다.
“관청의 조소를 말없이 견디고,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린 존재, 비록 그의 생애 마지막일지언정, 외투라는 빛나는 손님이 등장하여 짧은 순간 가련한 인생에 활기를”(108) 가질 수 있었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그를 기억합니다.
일러두기
<외투>는 니콜라이 고골 《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이기주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73~113쪽에 수록되어 있다. 괄호 속 숫자는 위 책에서 인용한 페이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