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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May 28. 2024

카페 메뉴 정하기



카페설비를 알아보기 위해 딸과 함께 외곽에 있는 전문 업체 한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1층에 직영 카페도 운영하고 카페창업 컨설팅부터 재료판매까지 하는 제법 규모가 큰 곳이었습니다. 담당 매니저와 상담을 하였는데,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주셨습니다. 직영 카페에서 가져온 아메리카노 커피와 유자애플티를 마셔보라고 권하더군요. 맛이 꽤나 괜찮았습니다.


매니저분께서 저희가 하고자 하는 업종과 위치 그리고 규모 등을 물어보시고, 구체적인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책방을 하면서 커피를 팔 것이기 때문에, 커피 손님이 전문 카페처럼 많지는 않다는 가정하에 보급형 에스프레소 머신으로도 충분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물론 고급형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면 좋겠지만, 한 대에 이천만 원 정도 하는 고급형을 쓰기에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 선정이 중요한 이유는,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이 정해져야 거기에 밸런스를 맞추어 다른 설비들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보급형 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모델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선정하고, 자동그라인더, 자동템핑기, 온수공급기, 블렌더, 제빙기, 냉장고 등을 선택하였습니다. 자동그라인더는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를 위해 두 대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가게 도면을 보며 설비위치와 이동동선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해주시네요. 그리고 카페 메뉴 레시피도 알려주고, 실제 커피 내리는 교육까지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곳을 나와 이번에는 시내에 있는 다른 업체 한 곳을 더 들려보았습니다. 비슷한 상담을 하고 나서 역시 보급형 설비 기준으로 견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만 같고 다른 설비들은 달랐는데도 불구하고, 두 업체의 견적금액이 불과 십만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커피설비가 보편화되어있다 보니까 가격도 거의 표준화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디서 구매해도 바가지 쓰지는 않겠다 싶었죠. 딸은 상담도 성실하게 잘해주고 교육도 잘해줄 것 같은 첫 번째 업체를 선택하였습니다. 저도 그곳에 좀 더 마음이 가기는 했습니다.





날이 한창 무더웠던 지난주에 딸과 함께 카페설비 업체를 방문하여 이틀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십 년 넘게 근무하며 커피와 음료 개발을 해왔다는 분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남자분이었는데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시더군요. 처음 인사를 나누고 나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커피 네 잔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커피를 마셔보고 맛이 각각 어떤지 설명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커피가 다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혀는 참 정확했습니다. 한자리에서 네 잔을 각각 마시니 분명하게 맛의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다크초콜릿의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커피, 산미가 살짝 느껴지면서 부드러운데 마실수록 뒷맛이 좋은 커피, 너트류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며 부드러운 커피, 맛과 향이 부드럽고 괜찮은데 뭔가 살짝 아쉬운 커피. 그중에서 딸과 저는 첫 번째가 제일 맘에 들었습니다. 크게 호불호가 없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거든요. 강사님이 말하더군요.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스페셜 원두이고 네 번째는 디카페인이라고요. 그리고 네 가지 다 직영 카페에서 팔고 있는 메뉴라고요. 직영 매장답게 네 가지 커피를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일반커피 한 종류와 디카페인커피를 팔 예정이므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아마도 첫 번째 커피가 될 듯하네요. 물론 다른 곳에서도 찾아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에스프레소가 뭐죠?"


강사님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메뉴의 한 종류로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고압(9bar)으로 원두의 커피성분을 빠르게 추출하는 것입니다. 분쇄된 커피 18g을 넣고 25~30초 사이에 크레마 포함하여 1온스의 커피 투 샷을 내립니다. 커피 양은 16~20g 사이로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그게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라인더에서 커피 입자의 굵기를 맞춰야 하고, 템핑을 하여 커피가 고르게 추출되도록 합니다. 추출된 커피에 물을 섞으면 아메리카노가 되고, 우유를 섞으면 카페라테가 됩니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를 잘 내리는 게 기본입니다. 직접 에스프레소를 내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셔보았습니다. 구수하면서도 입안에 감도는 쌉쌀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에스프레소 내리는 것 외에 또 중요한 게, 라테를 만들기 위해 스티밍이라고 하는 우유를 데우는 일입니다. 단순히 우유를 데우는 게 아니고 적정량의 조밀한 거품을 함께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감으로 적정 온도(65° 내외)를 캐치해내야 합니다. 강사님께서 실패 없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습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더군요. 오래전 학원에서 실습했던 기억을 소환하며 몇 번 연습을 해보았습니다. 생각하는 머리와 손발이 따로 놀아서 힘들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폼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재밌기도 하였습니다. 딸과 함께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돌체라테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맛이 아주 훌륭하더군요.


다음은 말차라테. 250년 전통의 일본산 유명 말차라는데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지금껏 먹어본 어떤 말차라테에 비해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죠. 그리고 이어서 에이드 네 종류를 만들어 시음을 해보았습니다. 자몽, 청포도, 자두, 구아바. 저는 찬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더운 여름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플망고 스무디를 만들었습니다. 망고스무디는 제가 베트남에 있을 때 워낙 많이 먹어본 음료인데, 거기에 비해서도 크게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신선한 생과일을 사용한 것이었죠.




이틀에 걸쳐 실습을 하며 만들어 본 커피와 음료는 저희 매장에서 팔만한 것들 위주로 진행한 것이었습니다. 강사님께서 상담을 통해 저희 매장에 맞추어 메뉴를 선정해 주시네요. 당연히 레시피도 모두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3종, 말차. 초코라테, 에이드 3종, 스무디 2종, 허브티 3종 정도에서 메뉴를 정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서 매장에 기계가 설치되고 나면 열심히 만들어 봐야죠.


다음은 판매 가격 정하기입니다. 기준은 아메리카노입니다. 아메리카노 가격을 정하고 나서 거기에 500원 간격으로 차이를 두어 가격 책정을 합니다. 저희 매장이 대량 판매를 할만한 매장은 아니므로 고급 원두를 써서 괜찮은 커피를 팔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손님들에게 실망을 주어서는 안 되겠죠. 거기에 더불어 주변 상권 감안하여 가격을 책정할 예정입니다. 카페 메뉴와 가격 책정은 당연히 사장인 딸이 알아서 할 것입니다.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죠.




"아침에 매장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강사님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오픈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커피를 내려서 마셔보는 일입니다. 손님들에게 팔기 전에 맛이 어떤지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 기준은? 바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매장의 커피 맛입니다. 우리 집에서 쓰는 커피 본연의 맛과 내손과 커피머신을 거쳐 나오는 커피맛의 표준을 정립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커피는 맛보는 사람의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껴지고, 날씨 특히 습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제일 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물론 기계 세팅이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 커피의 맛은 어떻다'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레시피에 따라 커피나 음료를 제조하는 것은 숙달만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이라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잔의 커피에도 그 나름의 지켜야 하는 원칙과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딸과 함께한 이틀간의 교육시간이 단순히 카페 메뉴를 익히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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