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밤

철든 여자 철없는 남자 #13

by 이은호



- 철없는 남자 -


영화관에서 나온 지혜랑 오장석이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추적해보려다 참았다. 왜냐고? 내 옆엔 귀여운 주연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인연이 끊어진 지혜 씨가 왜 자꾸 맘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공부 못하는 애가 수업시간 내내 졸다가 수업을 마치면 눈이 초롱초롱해지듯이 나도 영화관을 나오니까 정신이 맑아지는 게 기운이 마구마구 넘친다. 오늘밤 주연이와 화끈한 시간을 보내며 이 힘을 좀 어찌해야겠다.


그녀에게 어디에 가고 싶냐니까 일단 배를 채우자고 한다. 옆자리에 그녀를 태우고 바닷가 길을 꼬불꼬불 달려 근사한 갈비집에 갔다. 힘깨나 쓰려면 먼저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하니까!


그녀는 보기완 달리 식성이 엄청 좋았다. 아무리 양이 얼마 안 되는 연한 암소갈비라지만 5인분이나 먹어 치우다니! 하지만 괜찮다. 식성이 좋으면, 흐흐.. 나중에 힘도 좀 쓰겠지? 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날보고 미소를 짓는다. 나도 그녀를 보고 씩 웃어주었다.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갈비집에서 나온 우리는 요즘 한창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엘 갔다. 평소에 안면을 터 둔 웨이터가 잽싸게 달려 나와 꾸벅 인사를 했다. 웨이터의 안내로 아담한 룸에 자리를 잡고 양주를 주문하였다. 호주머니에 한 장 찔러주자 녀석은 입이 귀밑에 걸려 90도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녀와 양주를 몇 잔 홀짝이다가 취기가 오른 후끈한 기분으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플로어로 갔다. 그녀의 손을 잡고 복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밴드에 맞춰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마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내 춤 실력에 놀랐는지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 후 숨이 가빠질 무렵 블루스 타임이 시작되고 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땀으로 착 달라붙은 셔츠를 통해 그녀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고, 술기운과 함께 달짝지근한 그녀의 숨결이 내 코를 자극하였다. 난 그녀를 안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그녀 역시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더욱 달라붙었다.



룸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서로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였다. 불타는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오늘밤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그녀는 술도 잘 마시고 노래도 잘 불렀다. 물론 춤 실력도 대단하였다. 다년간 닦아온 실력이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었다.


질질 빼는 여자보다는 잘 노는 여자가 난 좋다. 내 수준에 맞다. 둘만 있어도 전혀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이렇게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다.


술잔을 계속 비우면서 그녀와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블루스 곡을 틀어놓고 그녀와 블루스를 추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단둘이서 끌어안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많이 있는 플로어에서와는 또 다른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의 땀과 향수가 섞인 야릇한 냄새와 술기운이 섞인 그녀의 숨결.


아아.. 이상했다! 저 밑바닥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솟구쳐 올랐다. 나도 모르게 난 그녀와 함께 소파 위로 무너져 내렸다. 우리의 광란의 밤은 그렇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 잘난 여자 -


모두 별칭을 갖고 있듯이 나도 내 별칭을 정했다. '잘난 여자'로. 다들 지 잘난 맛에 산다고 하지만 나도 내 잘난 맛에 산다. 사실 외모로 보나 자질로 보나 어느 누구에게도 뒤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난 '잘난 여자'이다.



그는 영화관에서 내내 날 끌어안고 꼬박꼬박 졸더니 밖에 나오니까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정말 이상한 체질이다. 난 영화 보면서 조는 사람은 딱 질색인데. 하지만 까짓 거 용서해준다. 돈 많은 남자는 용서가 된다. 어쨌든 오늘 밤은 왕창 벗겨먹어야 한다.


그가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묻기에 일단 배를 채우자고 했다. 그는 바닷가 길을 꼬불꼬불 달려 제법 괜찮은 갈비집으로 들어갔다. 점심 먹고 영화 보고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그의 돈을 써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으로 비싼 암소갈비를 양껏 먹었다. 하기야 고기 맛이 좀 괜찮더라! 내가 좀 많이 먹었는지 그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웃는다. 아이구 쫀쫀하기는! 나는 그를 보고 씩 웃어주었다.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갈비집에서 나와 요즘 한참 뜨고 있는 나이트클럽엘 갔다. 새벽 1시가 되면 천장이 열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가 평소에 단골이었는지 한 웨이터가 달려 나와 90°로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고 룸으로 안내를 했다. 그는 웨이터 호주머니에 10만 원짜리 수표를 찔러주었다. 정말 씀씀이가 괜찮은 남자다.


룸에 앉아 양주만 홀짝이는 그를 끌고 신나게 흔들어 보자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플로어로 나갔다. 그는 온몸을 흔들어대며 말 그대로 발광을 하였다. 남들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난 되게 쪽팔렸지만 참았다. 돈 있는 남자는 모든 게 용서되니까.


한참 발광을 떤 후 블루스 타임이 되자 그는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땀으로 착 달라붙은 셔츠를 통해 그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고, 술기운과 함께 느껴지는 들쩍지근한 그의 숨결이 내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손길에 더욱 힘을 주었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아픔에 내 손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룸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는 서로 술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하였다. 불타는 젊음이 어쩌구, 사랑이 어쩌구. 그는 술은 잘 마셨지만 노래나 춤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기야 다년간 놀아본,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는 나를 따라올 수야 없을 것이다. 내가 마이크를 잡고 Tears를 한곡 쫙 뽑으니까 그는 입을 쩍 벌리고 넋을 놓은 표정이다. 짜샤 봤지? 하지만 좋다. 내 수준에 맞다. 일단은 돈이 있으니까.


술잔을 몇 잔 비우고 그와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고래고래 악을 써대는 그의 모습이 불쌍하게 보여, 아니 내 귀가 아파 블루스 곡을 틀어 놓고 그와 블루스를 추었다. 춤을 춘다기보다는 그냥 끌어안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꼴이다. 아까 플로어에선 허리가 너무 아파 이번엔 내가 선수를 쳐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이렇게 단둘이 끌어안고 있으려니 약간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두려운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가 갑자기 나를 소파로 밀어 넘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술기운이 가득한 더운 숨결이 내 귀를 간지럽히고 천장이 노랗게 무너져 내렸다.


아.. 여기서.. 이러면 안... 요...



<계속>



*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를 향하면서 내용 전개 상 수위 조절을 조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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