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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안 Jun 18. 2024

O

서울과 달 사이 1

    서울과 달 사이를 시월의 밤이 빽빽이 메운 채 깊어가고 있었다. 아예 눈을 감아버릴 듯이 가늘어진 그믐달은 자신이 무얼 어쩌겠느냐는 듯이, 밤에게 뒤덮여 가는 도시를 그저 실눈을 뜨고 방관했다. 걷잡을 새도 없이 갑자기 짙어진 농도의 어둠 속에서 시간은 힘겹게 허우적대고 있었다. 갓 새벽의 서울시는 언제나처럼 네온사인을 열심히 지피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부쩍 차가워진 가을 공기에 이 도시의 밤은 어제들의 밤보다 너무나 무기력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본디 도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스스로를 내던지고 불사르며 돌아가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은 것이다. 특히 서울은 그중에서도 절대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유명하지만, 지금만큼은 가로등에 밝혀진 전등의 미세한 진동마저도 공기 중에 들릴 듯이 고요한 밤이었다. 도시는 마치 동력을 잃고 멈춰버린 듯했다.


창백해진 지상의 피부 아래에는 도시의 이곳저곳을 혈관처럼 연결하는 지하의 터널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 <2호선>이라 불리는 길 하나를 그날의 마지막 지하철이 자신 앞의 어둠을 확인하며 달리고 있었다. 열차는 덜컹덜컹 교대역을 지나 강남역을 향하고 있었고, 주원은 그것의 <4-4> 칸에 타고 있었다. 흔들리는 열차 속 좌석 위에 일렬로 나란히 매달린 손잡이들은 작당 모의라도 한 듯 다 같이 숨을 죽인 채 스르륵 잠이 든 주원을 주시하며 넘실넘실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고 있는 그를 깨우지 않은 채 기어이 끝까지 데려갈 셈이었다. 종착역의 안내원에게 깨워져 비로소 일어났을 때 짓게 될 그의 난처한 얼굴을 꼭 봐야겠다는 짓궂은 심산이었다.


주원은 꿈을 꾸고 있었다. 오랜만에 꾸는,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꿔본 꿈이었다. 대게의 꿈과 마찬가지로, 이 꿈 역시 시작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일까.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던가? 꿈속의 주원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리게 되고, 이내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런 중력이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원은 마치 망망대해 위 조각배처럼 우주에 떠 있는 것이다. 저 멀리 가늠도 되지 않는 거리에 별빛이 띄엄띄엄 시야에 들어온다. 주원은 손발이 너무나 차가워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모아 비비려 했지만, 곧 그에겐 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손이 없다기보다, 그에겐 아예 몸이랄 것이 없다. 그러니 손발이 차갑게 느껴진다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몸이 없으니, 당연히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목이라는 것이 없으니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목이 있는 마냥 자신의 위와 아래, 양옆을 볼 수 있는 것은 왜일까. 몸이 없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와 양옆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그저 자신의 몸의 부재일 뿐이다. 그 꿈속에서 그는 마치 형태가 없는 의식 그 자체, 혹은 영혼 같은 존재였다. 숨을 쉬는 행위는 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숨을 쉬는 행위가 필요하지 않은 어떠한 상태였을 뿐.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것은 그다지 이상하거나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원은 칠흑같이 어두운 그 공간에서 허우적댔다. 「공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공간이라기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아래가 정해져 있지 않은 깊고 무한한 어둠 속에서 주원은 「온몸」으로 발버둥 쳤다. 발이 어딘가를 딛고 서있지 않은 채로 무한한 공간의 가운데에서 느끼는 처절한 무기력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의 좌절감과 공포감이었다. 광활한 암흑에 갇힌 「의식」이 느끼는 공포감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채로 코에 천장이 닿을 듯이 비좁은 관짝에 갇혀버린 산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거나 더 할 것이다.


여기까지의 인식은 그 순서까지도 이 꿈을 꿀 때마다 신기하리만치 똑같았다. 매번 이 과정을 순서대로 겪었고, 그 사실 또한 인식하게 되는 순간, 주원은 과거로부터 이 꿈의 마지막을 기억해 낸다. 고개가 없음에도 고개를 비틀 수 있는 그는 문득 자신의 오른쪽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기억해 낸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오른쪽을 보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몸서리치고 발버둥 친다. 그럼에도 그의 의식은 서서히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게 되고 결국 그것을 마주하게 된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미세한 추세라도 그것은 곧 흐름이 되어 쉬이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주변 시야 옆으로 점점 보이게 되고 있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눈이 없어도 마치 눈이 있는 것처럼 그것이 보인다. 그리고 눈이 없어서 눈을 감을 수도 없다.


그가 온 힘을 다해 목격하지 않으려 한 것은 바로 목성이었다. 그때 주원이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목성 공포증>이리라. 목성 공포증이란 인간이 자신의 일상적인, 평소의 범주를 벗어난 목성같이 초월적이고 압도적인 크기의 존재를 눈앞에서 봤을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인데, 이 경우엔 그 존재가 다름 아닌 목성 그 자체인 경우였다. 지구 부피의 약 1300배 정도라고 알려진 그것은 쉬지 않고 꿈틀거리고 있다. 기체로 이루어진 구름들이 수천, 수만 마리의 거대한 지네들처럼 불규칙적으로 서로 얽히고설키며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고, 그 사이엔 거대한 홍색 타원형의 반점 하나가 자리를 잡고 영원히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주원에게 너무나 무섭고 끔찍한 광경이다.


주원은 겁에 질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머리로 한 선택이 아닌 순수한 반응이다. 그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어둠이 집어삼킨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그 어둠은 무서울 만큼 고요했고 무거웠다. 가슴속의 무언가가 마치 납덩이에 묶인 채로 끝도 모를 심해의 바닥으로 영영 추락하고 있는 듯한 절망감이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꿈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소리 없는 비명을 몇 번 지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쯤이 그 꿈의 처음부터 정해진 완료 시간인 것인지, 혹은 그가 비명을 몇 번 지르는 것이 비로소 그 꿈에게서 해방이 되는 일종의 주문인 것인지 그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꿈속에서 주원이 매번 느껴야 하는 공포와 절망감은 어떤 식으로도 회피할 수 없는 종류였다. 마치 몇 번이고 바퀴벌레를 목격하게 된다 하여도 그 순간에는 화들짝 놀라는 것 외에는 딱히 별다른 생각도 행동도 취할 수 없는 것처럼.


목덜미에 식은땀이 살짝 난 채로 꿈에서 깨자마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차내 안내 스크린을 확인했다. 렌즈를 낀 채로 잠에 든 탓에 주원의 눈이 뻑뻑하여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어폰을 빼고 잠시 기다리자 다행히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주원에게 다음이 <선릉역>이라 알려주었다. 열차 안 전등이 잠시 깜빡였다. 운이 좋게도 다음 역에서 내리면 되는 주원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막차인데 큰일 날 뻔했군.’


열심히 몸을 들썩이며 단체로 주원을 향해 고약한 주문을 외던 지하철의 손잡이들은 그가 깨어나자 풀이 죽은 듯이 얌전해졌다. 주원은 잘 뜨이지 않는 뻑뻑한 눈을 꾹 감고 양 손바닥으로 과격하게 비볐다. 때마침 나온 하품에 눈이 조금이나마 촉촉해지며 그의 시야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자는 내내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던 핸드폰을 보니 12시 7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침 이어폰에서 나오고 있는 노래는 윤상의 <악몽>이었다. 주원은 이어폰을 귀에서 뺐다. 월요일부터 밤이 늦기까지의 외출이라니, 집돌이인 주원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친구 민재에게 불려 나갔던 것이다. 숙취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거기서 소주 한 병을 더 시키는 게 아녔어......’라고 후회를 하며 비로소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자, 지하철 안엔 자신 외에 아무도 없었다. 열차가 몇 번에 걸쳐 브레이크를 단계적으로 밟았고, 바퀴와 철로의 카랑카랑한 쇠 마찰음이 끼익 하는 브레이크의 단호한 소리와 함께 멎자 열차 칸의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끌어안고 있던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내리려는 주원의 눈에 <역삼역>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들어왔다.


‘어… 뭐지?’ 잠시 어리둥절했던 주원은 벽에 쓰인 역삼역을 눈으로 다시금 확인한 뒤 지하철 칸으로 되돌아왔다. 주원은 분명 이번이 선릉역이라고 들었다고 생각했다. ‘술이 덜 깼나......’ 그는 그저 빨리 집에 들어가 그의 좁지만 아늑한 오피스텔 침대에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스크린도어가 닫히고 지하철이 속도를 서서히 올리며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주원은 손잡이를 두 손으로 꽈악 쥐어 잡고 자신의 무게를 그것에 온전히 매달았다. 지하철의 손잡이라는 것은 새삼 참 튼튼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단 1그램의 의심 없이 자신의 7,500 그램 모두를 다 맡길 수 있다. 그것이 절대 갑자기 끊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세상엔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것들이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왜 역삼역에서 아무도 타지 않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왜 내리는 사람도 하나 없는 것인가. 아니지, '왜 지금 이 지하철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것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뒷칸을 봐도, 왼쪽으로 돌려 앞 칸을 봐도 이 열차 안은 역시나 텅텅 비어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문래역에서 그가 탔을 땐 분명 탑승객들이 꽤 많이 있었다. 가까스로 자리에 앉을 수는 있었지만. '그새 다들 어디서 내려버린 걸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랄 것까진 아니었지만 참 이상한 일이긴 했다. 역삼역을 지나는 막차는 언제나 승객들이 붐볐다. 게다가 막차가 아닌가. 주원같이 술이 거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발개진 얼굴을 하고선 비틀비틀 탑승하는 게 보통이었다. 어쩌면 이 열차는 이미 운행을 종료하여 차고로 퇴근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뇌세포들이 알코올 속을 헤엄치는듯한 불쾌한 지끈거림을 느끼며 주원은 입을 꾹 다문 채 일단 다음 역을 기다렸다. 방금 꿨던 그 낯설지 않은 꿈이 문득 떠올랐다. 매번 기분 나쁜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아, 또 이 꿈이구나’ 라기보단 ‘또 이곳에 갇혔구나’라는 절망을 느꼈다. 인간은 좁은 곳에 갇힌 갑갑함보다는 끝을 모를 정도로 넓은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때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더 힘든 것일까. 계속되는 약간의 메스꺼움을 느끼는 중 안내방송이 다시 나왔다.


“이번 역은 선릉, 선릉역입니다. 다음 역은 삼성역입니다. 내리시는 문은 오른쪽입니다.”


주원은 안도하며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다시 오른쪽 어깨 위에 끌어올렸다. 운행을 종료한 지하철에서 안내방송이 나올 리 없다. ‘자, 어서 집에 가자.’


지하철 전등이 잠시 깜빡였다. 지하철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다시 단계적으로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긴 끼이익 소리와 함께 정차했다. 문이 열렸다. 깊어가는 밤에 주원의 사고는 풍덩 빠져버렸고 그의 숨은 턱 막혀왔다. 눈을 꾹 감고 다시 크게 떠봤지만 지금 이 상황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아니 우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 본인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다. 텅 비어있는 지하철역의 벽엔 이번에도 <역삼역>이라고 쓰여있었다. 그의 지하철은 또다시 제자리였다.


서울과 달 사이를 시월의 밤이 빽빽이 메운 채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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