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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안 Jul 04. 2024

O

서울과 달 사이

    밤은 마치 음흉한 비밀을 하나 깊숙이 품고 있는 듯 아주 조용했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잘 지켜온 그 비밀이 어느샌가 살짝 삐져나와 있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어둠은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애써 침착한 척하며 어쩔 수 없는 어색한 분위기를 공기 중에 흘리고 있었다. 그 낯선 혼야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유정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약간은 과격하게 덜컹거리는 하루의 마지막 버스에 올라타 버스의 딱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창에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기대고 여느 때처럼 오래된 윤상의 노래를 들으며 잠실대로를 지나 동네로 접어드는 바깥을 구경했다. 버스는 내는 굉음에 비해 속도가 많이 느린 감이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진흙같이 질척이는 밤을 아마 버스도 버거워하고 있는 거다. 막차를 탔으니,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걸로 된 거다. 버스가 느리면 그만큼 윤상의 노래를 한 곡 정도 더 들으면 되는 것일 뿐이다. 앞에서 바뀌는 주황색 불에 버스가 체념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버스가 빨리 달리지 못하는 건 기사 아저씨의 잘못이 아니다. 이 밤이 오늘따라 어둡고 조용한 것이 이유다. 유정은 이 노선을 운행하는 모든 기사의 얼굴을 외우고 있다. 그중에 이 아저씨만큼 성격이 급한 사람도 없을뿐더러, 방금 그 신호를 넘어갔다고 해도 채 3분이 다르지 않은 차이일 것이다. 3분 더 일찍 집에 가서 뭐 하겠는가. 어차피 유정이 잠에 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사실 그녀는 항상 그래왔다. 길고 암울했던 학창 시절도, 두 달 만에 그만두었던 회사 생활도, 그녀가 살아오는 동안의 그 어떤 인간관계도, 그저 딱 적당했다. 그리고 그것에 만족했다. 순간들을 지내 보냈고 인연들을 지나쳐버렸을 뿐, 그 누구나 무엇도 그녀에게서 호기심 이상의 간절함을 끌어내지 못했다. 인연이란 단어도, 운명이란 말조차도 유정에겐 편리한 표현이었다. 그녀는 끝에 가서 항상 ‘인연은 여기까지’였던 걸로, ‘운명이 아니었던’ 걸로 정리를 해버렸으니까.

    

    한 가지, 딱 한 가지 그녀가 비로소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열일곱 살 때 그녀의 동급생이었던 첫사랑이 그림을 좋아했었다. 그 아이가 좋아했던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라는 화가가 있었고, 그래서 찾아봤던 그의 그림 중에 <녹턴>이라는 연작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뒤 유정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사랑은 첫사랑다운 아련함으로 남았지만, 유정은 이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 소년도 화가가 되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금 유정의 밤은 <녹턴>의 연작 속 농도 짙은 밤들과 딱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느샌가 그녀는 휘슬러의 그림들 하나하나를 머릿속에서 훑고 있었다. 그녀는 자주 그랬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 보여도 그녀의 머릿속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고,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휙휙 전환했다. 의식의 흐름이 참으로 유연한 사람이었다. 버스를 타고 밤을 음미하다가 순식간에 학생이었던 때로 돌아가 첫사랑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때 알게 되었던 미국 국적의 한 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기억해 봤다. <녹턴> 연작 중 그녀의 첫사랑이 가장 좋아했던 그림의 이름은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이었다. 지금 유정의 창밖에 불꽃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검정과 금빛의 밤이라고 충분히 칭할 수 있었다. 그림만큼이나 추상적인 밤이 창밖에 짙게 깔려 있었다. 배경이 런던의 첼시 지역이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곳이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을듯한 그 그림처럼, 창밖의 풍경도 오늘따라 낯설고 모든 것이 모호한 느낌의 도시였다. 어두운 검정과, 무거운 공기와, 짙은 시간과, 정적인 금색의 가로등이 밤이라는 시간에 어지럽게 칠해져 있었다.

    

    송파구의 조용한 동네로 이사를 한 뒤 3년 동안 날마다 같은 시각, 같은 막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계절이 일 년에 네 번씩 어느 계절은 조금 늘어지게, 어느 계절은 조금은 아쉽게 지나가는 것을 열두 번이나 지켜봤다. 그 3년 내내 그녀는 윤상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슬펐다. 아니, 우울함에 더 가까웠다. 감정적이고,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여린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조금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그의 노래는 대부분 신나지 않았다. 그건 확실했다. 아무리 긍정적인 멜로디에도 가사 어딘가엔 그리움이 묻어있었다. 그렇게 유정은 그녀의 배경음악을 항상 약간은 ‘우울함’으로 재생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의 음악 때문에 이 초가을 밤이 실제보다 조금 더 건조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공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아직도 듣는 윤상의 노래 중에는 심지어 카세트테이프로 발매되었던 앨범들도 있었다. 기껏해야 스물아홉일 뿐인 그녀가 윤상이라는 가수의 십여 년도 더 된 음악을 아직도 듣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그녀 또래들과는 남다른 점이었다. 유정은 십 년도 더 전에, 그녀가 기껏해야 열세 살 쯤이었을 때부터, 윤상을 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확실히 유연한 표현을 하자면 “독특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은 유정을 특이한 애늙은이쯤으로 묘사했다.

    

    “너의 꿈은 아직도 어른이 되는 걸까.” 유정의 귀에 윤상이 노래하고 있었다. 유정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았다. 화가가 되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래 희망”이었을 뿐, “꿈”이었던 적은 없었다. 애초에 꿈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거창하게 정의한 적도 없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유정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시피 버스는 역시나 그녀의 정거장에 도착했다. ‘그걸로 된 거다.’ 가녀린 하얀 손목에 시계는 12시 8분을 가리켰다. 버스에서 내리자, 그녀의 살색과 대조되는 까만 긴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한껏 서늘한 공기를 맞으니 마침 올해 들어 처음 꺼낸 겨자색 스웨터를 입고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밤 때문인지 자주 가는 아파트 단지 앞 초록색 간판의 편의점 안 불빛이 오늘따라 한층 더 밝게 비쳤다. 집에 와인도 다 떨어진 참에 맥주나 몇 캔 사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관두었다. 안 그래도 자기 전에 꼭 한 잔씩 하던 술이 습관이 되지 않을지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몇 주 전, 고민이 많았던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와인을 반 잔 마셨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게 한잔, 두 잔씩 늘어가던 중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의 한 병을 비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고, 어처구니없게도 술이 없이는 더 이상 잠에 들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한 번도 자신이 알코올중독이 될 거란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술은 어지간히 좋아하지만, 중독이 되긴 싫었다. 위기의식이 깊어지기 전에 스스로 한번 끊어주는 게 좋을 것이다. 편의점을 지나며 안을 쓱 들여다보았지만 이 시간의 담당인 아르바이트생도 때마침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인 것 같았다. 오늘 밤은 술을 먹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술이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겐 고민이 있었지만, 무엇을 고민 중인지를 아직 명쾌히 밝혀내지 못했다. 우선 문제는 요즘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자. 어차피 ‘내가 언제는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묻는다면 유진은 딱히 반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근래에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었다. 무엇인가가 고민이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못한 것인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 자체가 고민인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렇게 진전 없는 생각이 새벽 내내 끊임없이 무한루프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해보자.

    

    ‘요즘 내 맘속에 왜 이렇게 여유가 없을까.’ 그녀의 기분이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인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지나간 탓은 있겠지만 그게 문제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기분”의 문제가 아닌 “상태”의 문제다. 예로, 보통 유정이 가을에 느껴왔던 공허함은 그래도 일 년 뒤의 여름을 기약하면서 어느 정도 중화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여름이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으로 가을,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가을은 그녀에게 “겨울 선고”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유정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다시는 설레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그녀가 가으내 고민했던 자신의 고민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실마리를 찾은 순간, 그녀의 마음은 ‘쿵’ 하고 덜컥 내려앉았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일에도 그 무엇에도 설렜던 적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설렘을 기대할 만한 일 따위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작년에 그녀가 혼자 영화관에서 봤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이런 말을 했었다.

    “때때로 나는, 내가 앞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이미 다 경험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그래서 이제부터 나는 평생을 새로운 것은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앞으로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이미 언젠가 느껴봤던 것보다 조금 더 얕은 감정들일뿐…“

    

    그녀의 머릿속엔 그 대사가 한참 뇌리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그녀 머릿속에서 내레이션이 되어 재생되고 있다. 새로워질 게 남아있지 않은 삶에는 어떠한 희망이 있을까. 전 세계 인류의 모두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마도 단 한 가지일 것이라고 유정은 생각했다. 그것은 ‘행복’이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은’ 본인의 행복‘이다. 누구나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지만 그마저도 결국 그것이 본인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 행복의 기준과 의미가 서로 다를 수는 있어도, 어쨌든 누구나 행복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마냥 행복하진 못하다 하여도 그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해 주는 수단은 아마도 “희망”이라는 매개체인데, 지금 유정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이미 느껴본 지도, 생각해 보았는지도 오래된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기대조차 하지 않는데 무슨 희망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스물아홉 살의 여자가 중학생들이나 할법한 고민을 새삼스레 하고 있다. 꼴사납다. 꼴사납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하다. 이런 꼴사나운 얘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는 자신이라서 다행이다. 일단 무엇이 그렇게 자신을 잠 못 들게 하였는지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으니,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내일 화실에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한번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추위도 잘 타면서 왠지 살짝 열려있는 창문을 애써 닫지 않았다. 바람에 나무가 으스스 떨었다. 그녀는 가을이 싫었다. 단지 겨울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서울의 길어야 한 달 남짓한 가을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 선고’ 일뿐이었다. 여름의 찬란한 태양과 뜨거운 바람, 파아란 하늘과 하얀 구름, 겹겹이 진한 초록색의 나무와 그 위로 갑자기 쏟아 내리는 소나기까지…… 여름은 어느 것 하나도 로맨틱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지금 시간의 편의점이라도 여름이었다면 반바지에 쪼리를 신은 남녀가 밖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과자 몇 개를 펼쳐 놓고 시원한 캔맥주를 마시고 있거나, 혹은 퇴근 후 술을 거나하게 한잔한 아저씨가 반소매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녹아내리고 있는 아이스바를 쥐고 있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늦가을도 이미 이 모양이 아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스스로가 문득 굉장히… 뭐랄까, 한심하게도 느껴졌고, 가엾게도 느껴졌다. 특별히 어떠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자기 연민은 더더욱이나 아녔다. 어쩌면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시간에 바래고 세월에 무뎌졌을 수도 있다. 누구든지 반복되는 일상에 아무런 이유 없이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마치 어느 날 아침 조용히 일어나서 칫솔을 입에 물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을 때 이마에 천연덕스럽게 나 있는 뾰루지처럼 슬럼프란 그렇게 예고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들이닥치는 것이다. 괜히 짜서 덧내지 말자. 그저 반창고로 덮어두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 며칠 뒤 반창고를 떼어보면 말끔히 사라졌을 수도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의 나날들이 나중엔 기억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엇이 그렇게나 고민이었는지,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멋쩍을 수도 있다.

    

    이곳은 원래도 시끄럽지 않은 동네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유정은 이 시간에 편의점 주변을 맴도는 파란색 눈을 한 고양이를 자주 보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나무가 으스스 떨었다. 어느새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 위를 밟으며 유정은 다시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쌓인 낙엽의 겹이 이미 여름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말해준다. 귓속의 가수는 24년 전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별들이여 대답하라, 이 불빛이 보인다면

캄캄한 하늘을 떠다니는 작은 빛 하나

한참을 난 떠다녔지, 숨 막히는 어둠 속을

낯 설은 거리에 버려진 아이처럼


난 누굴 찾고 있는지

여기는 또 어딘지

터무니없는 풍경에 익숙해 갈 쯤에

갑자기 깨달았지 네가 옆에 없는 걸


괜찮아, 걱정 없어

이건 아마도 꿈일 테니까

용기를 내


들어 봐

어딘가에서 부르는 소리

너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지’


    웬일인지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노래가 이 부분에서 끊기고 곡의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듣는 노래만 듣는 유정은 음악 파일을 스마트폰에 직접 저장해 놓고 들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파일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너무나 낡아버린 그녀의 폰이 문제일 수도 있다. 아파트의 현관 앞에 도착하자 이어폰을 귀에서 빼어 가방 속에 대충 던져 넣었다. 바람에 나무가 또 한 번 으스스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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