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달 사이 6
길라는 옥탑방의 현관문에 귀를 바짝 대어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풀밭이나 나무 위에서 울던 새와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하나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고양이 길라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청각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두 귀에 들어오는 세상의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의 부재는 곧 존재의 부재를 뜻했다.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나뭇가지가 서로 부대끼는 소리, 바람이 휑한 골목 사이를 훑고 지나는 소리, 가로등의 미세한 전류가 흐르는 소리, 그리고 자신의 심장소리였다. 콩닥콩닥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길라의 유난히 큰 두 귀 밖으로 새어 나오는 듯했다. 아니 확신했다. 주변이 너무나 조용한 탓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어둠이 너무나 무거운 탓이었다. 소리가 야음에 뒤섞여 멀리 퍼져나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래에 펼쳐진 동네를 커진 동공으로 구석구석 응시했다. 아파트 단지들이 여전히 숲을 이루고 있었다. 겉으로 언뜻 보기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가로등에도 여전히 불은 켜져 있었고, 주차장에도 차들은 빽빽이 세워져 있었다. 편의점과 옆에 시계탑이 보였다. 방금 자신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질감이 드는 것은 그중에서 움직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시가 정적으로 되자 소음도 사라졌다. 그야말로 정적이 흘렀다. 철재로 된 가게의 셔터가 내려가는 소리, 자동차가 맨홀 뚜껑을 밟고 지나가는 둔탁한 소리, 밤에 우는 새가 우는 소리, 불 꺼진 방 안의 누군가가 마른기침을 하는 소리, 귀가를 재촉하는 발걸음 소리, 그것이 평소의 새벽 도시의 소리였다. 지금은 고양이 길라가 내는 소리가 도시의 소리 그 자체가 되고 있었다.
사라진 것들은 왜 사라졌으며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리고 길라 자신은 왜 그들과 함께 같이 사라지지 않았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이유가 단순히 자신이 고양이라서가 아니라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자신의 어머니는 진작부터 예언처럼 하지 않았는가. 이것엔 필시 「유전적」인 무언가가 얽혀있다.
세상에는 땅에 박혀있는 것들만이 것만이 남아있었다. 울타리, 시든 장미, 깜빡이는 신호등, 고목나무, 아파트, 시계탑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그 위를 걸어 다니거나, 기어 다니거나, 굴러다니거나, 날아다니거나 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인간들, 거미, 오토바이, 부엉이 같은 것들 말이다. 부엉이, 그래, 부엉이 곤도 사라졌을까. 고양이 길라는 왔던 길을 우선 되돌아 내려가보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에 자신이 언젠가 이름도 지어주었던 민들레를 발견했다. 꽃잎 하나 남아있지 않은 꽃받침에 코를 대고 뇸뇸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별다른 점은 없었다.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조차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느라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새에 길라는 아까 부엉이 곤을 만났던 자리까지 와있었다. 그게 불과 몇 분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곤이 앉아 있던 나무 밑에 죽은 쥐가 두 마리 놓여있었다. 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도 끼니를 거른 길라를 위해 곤이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물론 길라는 지금 배가 고프지도, 배를 채울 정신도 없었다.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 와중에 갑자기 밥을 먹는다는 게.
‘고마워, 곤. 조금 이따 가지러 올게.’ 고양이 길라가 “이따”라고 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 길라는 이미 이 사건의 끝을 말해주었다.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되돌아온단다.”
그것을 길라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더더욱. 그럼에도 왠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는 고양이 길라였다. 세상의 모든 게 사라졌다가 되돌아온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런 일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란 말인가. 믿어야만 하겠지. 하지만 어찌 그리 쉽게 그럴 수 있겠는가. 받아들이고 덮어두고 살면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의 모두가 사라지고 본인만 남았다면, 누가 봐도 고양이 길라 자신이 그것의 이유, 최소한 연관이 있지 않겠는가. 어머니 길라는 그런 것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물어볼 걸 그랬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어차피 그땐 이런 일이 「말 그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믿지도 않았었으니까. 세상이 되돌아온다 하더라도 길라가 과연 예전과 같은 삶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세상을 과연 예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달동네의 굽이굽이 진 골목골목엔 낡고 헌것들이 빽빽했다. 오래된 사다리나 썩어가는 창틀, 말라죽은 화분 같은 것들, 쓰임새를 잃은 것들, 그렇다고 버려진 것도 아닌 애매한 것들이 가만히 방치되어 있었다. 버린 것인지 버린 건 아닌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애매한 것들이 많았다. 오래된 집들엔 불이 켜져 있기도 꺼져있기도 했지만, 그 안에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런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깊숙한 골목의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히는 주황색 가로등 아래에도 벌레 한 마리 날지 않았다. 물론 그 밑에 바닥에 벌레 시체들만은 널부러져 있었다.
고양이 길라는 달동네라 불리는 이 산비탈의 좁고 높은 계단들을 어느새 다 내려와 있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니 옥탑방은 이제 까마득히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 너머로 떠 있는 동쪽 하늘의 가냘픈 달이었다. 왜 정작 달동네 꼭대기까지 올라가서는 그게 보이지 않았을까. 그 희미한 달빛 아래로 찢어진 모양의 구름이 사양 않고 지나가고 있었다. 길라는 홀리기라도 한 듯 그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구름은 순식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스르르 미끄러져간 게 아녔다. 오른쪽에 있던 것이 휙 하고 사라지면서 동시에 왼쪽에 휙 하고 나타났다. 그것은 어머니 길라가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순간, 밤이라는 것이 더 이상 그저 해가 지고 해가 뜨기 전의 어두운 시간을 일컫는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밤은 그보다 더 명확히, 엄연하게 「실체」하고 있는 무언가라는 것이 고양이 길라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마치 짙은 회색 털을 하고 파란색 눈을 한 고양이가 단순히 <길라>라는 명칭이 아니고 길라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듯이 말이다. 길라는 밤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밤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금 중요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길라가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어찌 달리 생각할 수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는 무거운 비밀이 적어도 한 가지 꽁꽁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곳 서울, 저 위 달, 그리고 그 사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