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져 있는 방 1
주원은 달 밑에서 제자리를 왔다 갔다 하는 구름을 몇 번이고 보았다. 봐도 봐도, 보면 볼수록,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이 속해있는 이 세상 자체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볼을 수차례 꼬집어봤고 분명히 아픔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결국 꿈일 수도 있다는 전재를 논외로 할 수는 없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자신의 오피스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수많은 아파트와 건물에서 불빛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그 빛들이 마치 숨죽이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방에 불을 켜는 것이라고 주원은 언젠가 생각했었다. 저 창에 비치는 불빛마다 각자의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으렸다 생각했다. 방에 불을 켠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며 불이 켜져 있는 방은 인간의 존재의 상징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인생이 지나가며 방을 채우고, 또 그 방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전구를 바꿔 껴가면서 세월이 지나는 것이다. 방의 불을 켰다 껐다 하면서. 건물이 낡아 허물어질 그 언젠가까지.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 있는 저 수많은 불빛들에는, 그 방들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마침내 자신의 오피스텔까지 돌아왔을 때 술은 이미 다 깨어 있었다. 오히려 머릿속은 심하게 맑은 느낌이었고, 그의 모든 오감은 마치 방금 간 칼날처럼 곤두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의 너무 맑은 머리에서도 아무런 쓸만한 생각은 살아남지 못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뒷목이 뻣뻣해져 연신 목을 앞뒤로, 좌우로 스트레칭 하는 동작을 했다. 머리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주원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가족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꼭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 주원은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이었고, 인생이 외로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자신이 남들보다 조금 더 외롭긴 하겠지만, 그것에 대해서 크게 고뇌하며 살지 않아 왔다고 그는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이 외로움은 전혀 차원이 다른 종류였다. 아무리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인생이라지만, 이 세상에 자신이 아예 혼자 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좁은 원룸에 간신히 놓은 1인용 소파에 털썩 앉아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인터넷에 그 어떤 기사도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이 상황에 관한 것은 없었다. 집값이 어떠니, 환율이 어떠니 하는 평범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자신만 빼고 세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자신 외의 모두가 사라졌다는 사실만 빼고. 아마도 이 상황에 대해서 기사를 쓸 사람들 자체가 모두 사라졌기 때문인가 보다. 스마트폰의 시계는 여전히 12시 8분을 넘지 못한 채 6과 7을 반복해서 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거실의 벽시계 한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확실히, 단순히 시간의 「표기」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텔레비전을 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집에 도착한 뒤에도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방송에서도 역시 별다른 소식을 전하고 있진 않았다. 주원은 평소에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이 시간쯤에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뉴스의 붉은색의 원피스를 입은 기상 캐스터의 얼굴에서는 얼핏 봐도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채로 태연하게 내일의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도 쌀쌀하겠습니다.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예상되므로 교통안전에 유의하셔야겠습니다. 낮에는 기온이 살짝 오르겠는데요. 서울은 20도까지 올라가는 곳 있겠습니다. 일교차에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체온 조절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날이 점점 건조해지면서 건조주의보가 발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남해안과 제주도는 비 소식 있습니다. 남해안에 5에서 30, 제주도에 5에서 20 밀리미터가 예상됩니다. 지금까지 날씨 전해드렸습니다.”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시계 분침이 7에서 6으로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맞춰 텔레비전의 화면도 그에 따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도 쌀쌀하겠습니다.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이것은 아마도 달 아래의 구름이 왔다 갔다 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원리」는 주원이 타고 있던 지하철이 제자리걸음을 했었던 것 과도 같을 것이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인지, 무엇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본인의 입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이 어렴풋이 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지만. 이 세상은 마치 시간에 결속되어 있는듯, 속박되어 있는 듯했고,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이 「고장」이 난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엄청난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세상이 사라진 마당에 태평하게 집에서 잠이나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불가항력적인 묵직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육체적인 피로라기보단, 머리에 과부하가 온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머릿속에 파도가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파도에 뇌가 휩쓸려 저 멀리 바닷속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이대로 잠에 들었다가 일어나면 모든 게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까. 아까 붉은색의 원피스를 입은 기상 캐스터가 말한 것처럼, 아침에는 짙은 안개가 껴있을까. 제주도에 비가 올까. 아침이 올까. 내가 잠에 들면 세상은 알아서 다시 시간을 고쳐놓을까. 침대에서 일어나 보면 밖에선 새소리가 들리고, 해도 다시 떠있고, 도로엔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아니지, 과연 정말 다행일까? 이 세상의 비밀을 영영 밝히지 못한 채로, 그냥 덮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주원의 양심과 의식이 그것을 허락할까. 고민과 근심 없는 안연의 밤이 그에게 허락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주원은 소파 위에서 그대로 잠에 들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