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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켜져 있는 방 3

by 안지안

사라져 버린 것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음에도 숨이 막힐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짙은 농도의 밤에 뒤엉켜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혼자서 남겨졌다는 사실이 길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었을까. 둘 다였을 것이다. 길라는 콩닥콩닥 뛰는 자신의 조그만 심장의 진동을 느끼며 자신의 영역을 꼼꼼히 한 바퀴, 어느새 두 바퀴째 돌고 있었다. 「실체」하고 있는 밤 속에서 그가 무언가를 정해놓고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깜빡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많은 방들 중에서 불이 꺼졌다 켜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그 방 안에는 반드시 길라와 마찬가지로 사라지지 않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어머니 길라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것은 퍽이나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당장부터 흙이나 파 먹으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길라가 자신의 영역을 몇 번 돌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죽은 것은 그대로 죽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아까 곤이 남겨놓고 간 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쥐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쥐들의 냄새가 공기 중에 없다. 생기를 읽고 차갑게 식어 말라버린 귀뚜라미나 잠자리 등의 시체들이 그대로 길바닥에 낙엽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것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개미떼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길라는 죽어있는 것인가. 그런 걸까. 이것은 사후세계인가. 아니다. 고목나무와 민들레는 죽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만큼이나 살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곳에 우뚝 서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인데 어째서 다른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그들과 함께 사라지지 못했는가. 길라는 식물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버림받은 것일까.’


이런 주제는 부엉이 곤이 옆에 있었다면 아주 좋아했을 종류의 대화였을 것이다. 원래 말이 잘 없는 편인 고양이 길라는 곤과 마주칠 때만큼은 자신도 말이 많아지는 게 신기했다. 확실히 그것은 부엉이 곤의 친화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다양한 대화가 길라는 싫지 않았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곤은 길라에게 하늘에서만 알 수 있는 세상의 정보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옥탑방에 대해서였다. 아파트와 대로가 정갈하게 나있는 도시에서는 길의 바닥을 전전하는 동물들에게 물을 찾기란 꽤나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장마가 내리는 여름보다 더 심했다. 두 지독한 계절 중 무엇이 더 싫은가를 고르는 것은 길고양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무엇이 더 위험한가를 따지자면 쉬이 겨울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혹독한 겨울을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언덕 위의 옥탑방의 존재였다. 부엉이 곤은 하루종일 집 안에서 이런저런 악기를 뚱땅거리는 그 언덕의 꼭대기에서 사는 청년에 대해서 길라에게 얘기해 주었다.


“사람이 괜찮아.” 언젠가 곤이 나무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괜찮다는 게 뭘 기준으로 하는 소리야?” 길라가 물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건물 안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높은 계급으로 친단 말이야. 근데 언덕이나 산 위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낮은 계급 취급을 받는단 말이지. 그 언덕 위에서는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는데도 말이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어진 걸」 좋아하니까.”

“「만들어진 거?」”

“그래- 건물이든, 자동차든, 시계든, 그런 것들 말이야. 인간들은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만들어진 것도 참 좋아해.” 길라가 덤덤히 말했다.

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동의했다. “확실히 그렇구나. 자연의 날 것은 별로 안 좋아하지, 인간들은.”

“확실히, 건물 안에서 사는 건 따뜻하니까.” 길라가 덧붙였다.

“집고양이가 되어볼 생각은 안 해봤어? 나 같은 부엉이야 건물 안은 감옥 같겠지만.”

“이번엔 안 할 거야.”

‘이번엔……?’ 부엉이 곤은 그 말의 뜻을, 혹은 의미를 잠시 고민해 봤지만 길라에게 그 이상을 물어보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언덕 위의 옥탑방에게는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다. 그가 길라를 자신의 집 안에 들이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마주칠 때마다 물이나 참치캔 등을 고양이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길라는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라졌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길라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을 한 것일까. 그들과 길라가 분리된 이유는 무엇일까. 길라는 주관이 뚜렷한 고양이었지만, 언제나 자신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신만이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은 길라에게 꽤나 섭섭하고도 서운한 일이었다. 어머니 길라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모든 사라진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하여도 더 이상 길라가 그들과 단절된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그는 자신이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런 깜빡임 없이 텅 비어있었다. 깜빡이는 것 없이 모든 불은 켜져 있는 채로, 아니면 꺼져 있는 채로였다. 꿈뻑이는 것은 오로지 고양이 길라 자신의 두 눈밖에 없었다.


길라는 한 아파트 단지 안의 산책로에 수풀이 살짝 가려져있는 한 뜰에 가보았다. 그곳엔 키가 크게 자란 늙은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특히 여름에 낮잠을 청하기가 수월한 그의 아지트였다. 자신보다 큰 짐승의 위협을 받게 될 경우 여차하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버리면 됐기에 안전적인 측면으로도 꽤 쓸만한 곳이었다. 거기에 난 길을 산책하는 아파트의 주민들도 그 수가 적지는 않았는데, 대부분이 걸음이 느린 노인들이라 길라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그새 나무들의 잎이 모두 색이 바래어 낙엽이 되어 많이도 떨어져 있었다.


길라가 자신의 아지트에 온 이유는 딱 한 가지, 자신의 고양이 벗들이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길라는 어디서 욕먹을 짓을 하고 다니는 고양이는 아니었기에 딱히 그들과 같이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음에도 고양이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괜찮은 편이었다. 아지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봤으려면 진작에 봤을 것이고, 냄새라도 저 멀리서 진작에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 다른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고양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고양이 길라, 자신만이 특별한 것이다. 글쎄, 특별이라는 게 과연 올바른 표현일까. 이 넓은 세상에 길라 자신만이 남겨져있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과연 자신이 「특별」 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남겨졌다는 것은 어쩌면 소외받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뒤쳐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자신은 어쩌면 고양이가 아닌 게 아닐까.


바람에 아파트 뒤뜰의 나무들이 으스스 떨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둠의 짙은 농도에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파트의 몇몇 열린 베란다 창문들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가 겹쳐 들렸지만 사람들의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어색한 정적인지 길라는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당최 말이 많으니까 말이다. 길라는 인간들만큼이나 말이 많은 존재들은 알지 못한다. 수다스러운 부엉이 곤 마저도 그들만큼 말이 많지는 않다.


바로 그때, 아지트를 등 지고 있는 아파트의 복도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면서 복도의 센서등이 같이 켜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여기 있소’라고 외치는 듯이. ‘나 말고도 사라지지 않은 이가 있다.’ 길라는 이 위에서 그 사람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흡사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한 밤중의 어둡고 고요한 들판 위에 휏불같은 것이었다.


고양이 길라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 여자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느 하얀색 세단의 뒷 범퍼 밑에 쭈그리고 숨은 채로 여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길라 자신이 왜 그녀를 ‘지켜보기만 하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것 역시 선택이라기 보단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다. 막상 그 인간에게 다가가 스스로를 보인다 해도 둘이 이 상황에 대해서 토론이라던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아파트 현관문을 나온 그녀는 뒤돌아서서 자신의 건물 구석구석을 살폈다. 무언가가 석연치 않은 눈치였다. 그리고선 마음이 급한 듯이 아파트 단지 안의 이곳저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여자의 얼굴 표정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그것을 길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세상의 모두가 사라진 이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운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다른 인간들을 찾고 있는 중이렸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사람이라고 길라는 생각했다. 자신 외에도 사라지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는 게 단지 반가워서 드는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여자의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냄새를 기억해 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밤이 세상을 거의 다 채울 시점에, 그러니까, 편의점 앞의 시계탑에 짧은바늘과 긴 바늘이 둘 다 하늘 쪽을 향하는 시간에, 매일밤 항상 그곳을 지나는 여자였다. 그 여자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녀에게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약간 달콤하기도 하고, 이내 기름진 휘발유의 잔향이 남는 그런 종류의 향이었다. 맞다. 저 사람은 그 여자가 확실했다.


왜일까. 모든 것이 사라진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왜 하필 고양이 길라와 저 사람일까. 길라 자신은 이 상황에 대하여 어머니 길라에게 이미 「예언」을 들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면 저 사람 역시 본인의 부모에게서 미리 들은 바가 있는 걸까. 여자가 하는 행동만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주차장의 정중앙에 있는 어떤 건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번엔 단지의 입구에 있는 방금 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고양이 길라가 알기로, 그곳엔 이 단지라고 불리는 영역의 파수꾼 같은 존재가 살고 있었다. 네 명 정도가 교대를 하며 그곳을 지켰는데, 한 명을 빼고 나머지 셋은 고양이 길라와 다른 고양이들에게 굉장히 적대적인 인간들이었다. 필사적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먼치에서도 그들의 눈에 띄면 그들은 언제나 양팔을 좌우로 휘두르며 “훠이 훠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불쾌하고도 짜증스러운 제스처였다. 고양이 길라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쥐도 잡아주었다. 여차하면 바퀴벌레도 먹어주었다. 물론 억지로 먹은 것은 아니고 너무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었다. 심지어 고양이들의 아지트가 있는 그 산책길에 볼 일을 보더라도 항상 모래로 정성스럽게 덮었단 말이다.


좌우지간, 그 재수 없는 놈들 세명 역시 지금은 없었다. 이제 온 세상에 다리로 걷는 것은 이 여자와 고양이 길라, 둘이 되었다. 아니지, 어쩌면 여기서 좀 더 먼 곳에도 몇이나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으로 길라의 머리는 약간 더 복잡해졌고, 마음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여자는 어느새 다시 체념을 한 얼굴로 자신의 아파트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길라의 기준으로는 포기가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 여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밝혀야 할지 길라는 고민했지만, 역시나 아까와 같은 이유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그냥 보여줘도 될 것을 굳이 그러지 않는 것은, 아마도 길라가 개가 아닌 고양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그런 것이니까.


여자는 건물 앞에 서서 건물 위를 올려다 보며 무언가를 세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웬일인지 엘리베이터라는 것을 타지 않고 계단을 직접 올라가면서 아까처럼 계단의 센서등들을 하나하나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집들마다 다급한 박자로 쾅쾅쾅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것 역시 평소였다면 다른 많은 소리들과 섞여 길라에게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그것은 마치 광활한 광야의 바싹 마른하늘에 울려 퍼지는 천둥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를 발견해 줘요’라는 듯이. 그래,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여자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고양이로서는 무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세상에 남겨진 게 자신 혼자라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다지 큰 생각이나 감정의 전환은 없었다. 오히려, 어이가 없게도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점점 순응이 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양이 길라는 아까 언덕길의 나무 밑에 부엉이 곤이 사냥해 놓았던 쥐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죽은 쥐 두 마리는 아까 봤던 자세와 형태 그대로 나무 밑에 놓여있었다. 텁텁하고 까칠한 쥐의 털가죽을 질겅질겅 씹으며 하늘에 떠있는 이제 막 차오르기 시작한, 혹은 직전인 위태로운 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 위치가 자신의 심장박동수로 약 250번 정도 전의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들은 보통 시간을 자신의 심장박동수로 세었다.) 이제 와서 놀라울 것도 없었다. 다만 저 구름의 움직임이 세상이 사라진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길라의 새파란 눈이 짙은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발광했다. 입맛이 떨어져 결국 나머지 쥐 한 마리는 먹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바로 그때, 그의 파란 두 눈앞에 부엉이 곤이 길라의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채로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너무나 많은 냄새와 소리가 고양이 길라의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길라는 너무나 놀라서 뒤로 뒷걸음질을 치며 점프를 했다. 부엉이 곤 역시 깜짝 놀랐는지 호로롱 크게 울며 두 날개를 양 옆으로 쫙 펼쳤다.


“아니 뭐야.”

“뭐가 뭐야.” 놀란 상태의 길라가 살짝 날카롭게 되받아 쳤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거야 말로 고양이 길라가 할 말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었던 거냐, 부엉이 곤.’

“난 그... 언덕 위 옥탑방에 갔다가 오는 길이지.”

“그새 벌써 갔다가 왔다고…?” 곤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게다가… 네 발자국 소리를 내가 전혀 못 들었단 말이지…? 아니, 쥐 한 마리는 또 어디로 간 거지? 내가 분명히 두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 한 마리는 이미 고양이 길라의 뱃속에 있었다.

“밤 눈이 어두워서 착각한 거 아냐?” 길라가 침착하게 말했다.

호옥호옥 하고 곤이 크게 웃었다. “진짜 웃기네.” 만족스러운 듯이 호옥 하고 한번 더 웃었다. “아주 괜찮은 농담이야.”


길라는 잠시 망설였다. 부엉이 곤은 믿을 만한 친구였다. 평소에 장난이나 농담을 좋아하긴 했지만 절대로 입이 가볍거나 경솔한 타입의 새는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을 믿을 만한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해야겠다.


“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지?”

“물론이지, 방금처럼 진지한 고양이니까 말이야.” 곤이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길라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부엉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할머니 길라로부터 어머니 길라를 통해 자신까지 전해졌던 전설 같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반쯤은 장난, 반쯤은 상징적인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던 그 이야기에 대해서 사뭇 진지하게, 최대한 디테일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오늘 보았던 그믐달에 대해서, 시계탑에 대해서, 무거운 밤에 대해서, 그 사건의 「징조」에 대해서. 그래서 올라갔던 달동네의 언덕과 그 위 옥탑방 옆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목격한 그 사건의 「순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누가 남겨져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파트의 주차장을 방황하던 한 여자에 대해서. 그리고 갑자기 부엉이 곤 본인과 함께 사라졌던 것들이 한꺼번에 돌아오면서 방금 서로가 놀랐던 것까지, 기승과 전결을 고양이 길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어휘력을 써서 설명했다. 그것을 말 많은 부엉이 곤은 중간에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그 큰 두 눈을 꿈뻑이며 고양이의 파란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네가 다가오는 것을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구나.”

“그거야.” 길라가 대답했다.

“그래서 쥐 한 마리가 갑자기 사라져 있었던 것이고. 다시 보니까 여기 한마리 분 뼈는 남아있네.”

“그래.” 길라가 재차 대답했다.

“그렇군…….”

“어떻게 생각해?”

“일단은 말이야, 네가 이렇게나 정성껏 농담을 할 타입의 고양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곤이 말했다.

“그건 확실히 그렇지.”

부엉이 곤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그 생각대로야.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네가 혹시 숲 속에서 이상한 버섯을 먹었거나 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가능성은?”

“없어.” 길라가 단호히 말했다. “제발, 내 이야기를 믿는다고 말해줘.”

부엉이 곤이 눈을 한 번 꿈뻑이며 말했다. “너를 난 믿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너를 믿어. 그게 「믿는다」는 거 아니겠어.”


그것은 고양이 길라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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