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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반대편 3

by 안지안

기껏해야 열 며칠이 지나는 틈에 건조한 공기가 세상을 덮어 버렸고, 여름이라며 울부짖던 나무 위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찍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귀뚜라미들이 수풀 속에 숨어 겨울이 온다며 찌르르 곡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벌써부터 뚱뚱한 옷을 입고선 호들갑을 떨었고, 위이잉- 날갯짓을 하며 돌아가던 집집마다의 선풍기라 불리는 기계의 소리도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길라의 계절은 이제 여름을 지나 가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길라의 세상에는, 계절에 반대편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 길라였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미련 때문에 <올림픽공원> 주변을 며칠째 서성이고 있었다. 거리엔 노란색 낙엽들이 바닥에 수북이 깔렸고, 그 조금 위를 은행나무 냄새가 진하게 덮었다. 그 위를 걷는 고양이의 분홍색 패드에 전해지는 폭신폭신함은 아스팔트나 벽돌에 비해 아주 기분이 좋았다. 바람이 스르르 불면 아직도 낙엽이 사사사 떨어졌다. 정말 낙엽은 끝이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떨어졌다. 길라는 그 모습이 너무도 이뻐서, 이렇게 낙엽을 펑펑 내리려고 나무가 여름을 견디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수많은 낙엽과 고양이를 한 번 휑하고 휩쓸고 지나갔다.


길라는 「그날 밤」 있었던 기이한 일들과 자신이 혼자 세상에 남겨졌던 사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길을 나섰다. 아, 혼자가 아녔지- 그 처음엔 달콤한 향이 나다가 나중엔 기름진 휘발유 잔향이 나던 여자 사람도 있었지. 아무튼 그것까지 포함한 그날 있었던 일은 고양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길라는 자신이 이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면 그 일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두 가지였다: 1. 물고기는 하품을 하지 않는다. 2. 장미에게 가시가 있는 것은 장미에겐 가시가 나기 때문이다. 두 개 모두 길라에게 큰 깨달음을 주지는 못한 정보였다. 하지만 그는 벌써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 세상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오늘은 무지개에 대해서 조금 더 파헤쳐볼 계획이다.


공원 안에는 생각보다 꽤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개구리, 다람쥐, 토끼, 너구리, 참새와 오리, 심지어 공작새도 있었다. 개구리나 다람쥐, 그리고 토끼 같은 애들은 자신의 냄새만으로도 저만치 도망가버렸다. 너구리는 원래 좀 재수가 없는 애들이라 말을 섞기가 싫었고, 참새는 겁이 많고 새침해서 좀처럼 말을 걸어볼 수가 없었다. 오리들은 유유자적한 애들이라 물 위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높고 길게 날지 못하는 공작새에게 무지개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공작새의 그 화려하게 펼쳐진 꼬리 깃털은 그야말로 장관이긴 했다. 공작새만큼 기품 있고 우아한 자태를 가진 동물은 아마도 몇 안될 것이라고 길라는 생각했다.


그렇게 다들 길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을 때, 멀리서 그를 포착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성큼성큼 날아와 그의 옆에 착지했다. 길라가 깜짝 놀라서 무게중심을 잔뜩 뒤로 빼고 자신의 발톱과 털을 바짝 세우며 하악질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놀라지 말게. 나는 고양이 고기엔 관심이 없다네.”

그 이름 모를 새가 차분한 톤으로 말했다. 새는 전체적으로 아주 날씬한 몸매와 긴 목, 그리고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부리는 길고 뾰족했으며 주황빛을 띠고 있었는데, 몸통이 전체적으로 회색과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부리의 색이 더 쨍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왜가리라는 새일세. 이름은 현. 자네가 무지개에 대해서 묻고 다닌다지?”


“뭐라고?” 고양이가 깜짝 놀라서 새에게 되물었다.


“아, 그것도 너무 놀라지 말게. 바람에게서 전해 들었거든, 가까운 공원에서 왠 푸른 눈을 한 고양이가 무지개에 대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왔네.”


“바람이 말을 한다고? 너는 바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야?”


“난 세상 대부분의 것들과 대화를 할 수 있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지?”


“난 네가 무지개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 외에도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친구로구만.” 왜가리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말을 하지. 그것을 믿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고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의 목소리가 곧 들리기 시작할 걸세.”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하는 왜가리의 당당함에 고양이는 그게 진짜냐는 말도 차마 묻지 못했다.


“아무튼 난 무지개에 대해서 알려주러 왔어. 괜한 오지랖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아니야, 무지개에 대해서 알려줘. 난 무지개 속으로 들어가 본 누군가를 찾고 있었어. 그 속에서 바깥을 보면 온 세상이 무지개 색으로 보이는지가 궁금해 난.”


“아 그렇지, 누구나 어렸을 때 그런 생각 한 번쯤은 해봤을 거야.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얼마 전에 여기 사거리에 여우비가 내리고 무지개가 이쁘게 떴길래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고. 그게 말이야, 나도 그날 웬일인지 그게 문득 궁금해져서 하염없이 날아가 보았네, 무지개를 향해서. 그런데 무지개에 다가가던 중에 그냥 어느 순간에 눈앞에서 싹 사라져 버리더라고. 그래서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도 수소문을 해봤지. 그랬더니 글쎄, 사실 무지개라는 건 실체 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말하자면 무더운 여름날의 아지랑이 같은 거지.”


“실체 하지 않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분명히 무지개는 보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실체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길라의 목소리는 거의 화가 나있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자신의 무언가가 부정이라도 당한 듯이.


“그래 그래, 확실히… 실체 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좀 극단적일지도 모르겠군.” 왜가리는 고양이가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현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와닿을 걸세. 남들은 자네의 눈을 파란색으로 보지.”


길라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자네의 눈이 파랗다고 해서 자네에게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걸세.”


길라는 여전히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게 그리 정확한 비유는 아닐 거야. 하지만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무지개는 보이는 것이야. 만져지는 게 아니지. 자네 눈 속의 파란색도 그저 파랗게 보이는 것일 뿐이야. 동물들에 따라서 자네의 눈은 회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네. <파랑>이라는 게 실체 하는 게 아니라고. 사실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지. 세상의 모든 것은 원래 다 주관적인 현상일세.”


도대체 이 왜가리라는 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겨우 진정했던 길라는 다시금 화가 치미는 것 같았다. 이 새는 왜 자꾸 뻔히 있는 무지개를 없는 거라고 하는 걸까.


왜가리 현이 가만 보아하니 자신에겐 이 고양이에게 제대로 설득할 만한 방법이 없는 듯했다. 이 고양이는 너무 순진하다. 그리고 너무나 순수하다. 마치 자신이 그에게서 동심을 빼앗아 버린 듯한 죄책감 마저 들었다. 아직 어리고 젊은 아이에게 괜한 짓을 했다.


“이보게…….” 현이 침묵하고 있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길라.”


“길라, 아주 좋은 이름이구만. 고양이들의 이름은 조상 대대로 어머니 쪽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온다지?”


“아는 게 많아서 아주 좋겠어.”

단단히 삐진 길라가 비꼬았다.


“하지만 <길라>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군 그래. 어쩌면 자네가 잘생겼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도대체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말들만 하네.”

길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 이건 내가 자세히 말해줌세. 나도 다른 고양이들한테 들은 건데 말이야, 길고양이들은 말이야, 특히 새끼들은 인간들에게 곧잘 선택되어서 집고양이가 되지. 특히나 자네같이 잘생긴 고양이들이 말이야. 그래서 <길라>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게 이해가 간단 말이었네. 아마도 길라들은 대부분 잘생겼을 거고, 그러니 집고양이가 되어있을 테니까. 그렇게 잘생긴 고양이들은 인간들의 집으로 들어가면 중성화 수술을 받게 된다지. 그런 식으로 잘생긴 고양이들의 대가 하나씩 끊기고 있다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길에 남게 된 고양이들의 외모 평균은 점점 내려가는 것이고. 못생긴 고양이들끼리 만나서 못생긴 고양이들을 낳는 거지. 그리고 그 못생긴 고양이들은 아무리 새끼라도 인간들에게 선택받지…”


“아 그쯤 하면 됐어. 알아들었다고.” 길라에겐 고양이로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얘기였다.


왜가리는 자신이 괜히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다가 또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자기 딴에는 자신이 평소 고양이들과 친하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주제가 너무 안 좋았다. 현은 길라가 보기 드물게 잘생긴 길고양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 결론에 도달하기 전에 길라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미안하네. 내가 주책이었네.” 현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길라가 한숨을 푹 쉰 뒤 말했다.

“괜찮아. 우린 아는 사이가 아니잖아. 개인적인 이유로 일부러 내 감정을 상하려 한 건 아니었겠지. 누구든 실수는 해.”


“그것보다-” 길라가 말을 이었다.

“아까 했던 그 바람에 대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바람?”


“그래, 바람. 너는 아까 분명 바람이 말을 한다고 했지? 바람에게서 내가 무지개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아, 그렇지.”

왜가리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부리를 꾹 닫고 길라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네는 아직 식물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가?”


길라는 바로 며칠 전의 그 장미를 떠올렸다.

“있지. 며칠 전에 이곳의 장미랑도 이야기를 했는걸.”


“오오 그래, 그게 시작이네. 자네는 자네가 장미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 그래서 하나의 의심 없이 말을 걸으니 장미가 대답을 한 걸세.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런 식이야.”


“하지만 장미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건, 장미가 말을 할 줄 안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알았던 사실인걸? 딱히 장미가 말을 할 수 있다고 의식하고 믿은 적은 없어. 어렸을 때부터 우리 어머니 길라는 장미뿐만 아니라 다른 식물과 나무들과도 대화를 했어.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내 형제 길라들도 다 식물들이랑 대화를 할 줄 아는데?” 길라가 말했다.


“그건 말이야,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뿐이야. 의식하고 믿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믿었다는 거야.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자네의 머릿속엔, ‘장미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심이 전혀 있을 수가 없는 거지. 그것이 바로 장미는 말을 한다고 완전히 믿는 것이고. 그 믿음이 서로 통할 때 양쪽은 대화할 수 있는 거야. 모든 고양이들이 장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냐. 장미들 역시 모두가 고양이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심지어 어떤 고양이들은 나의 말도 듣지 못해. 왜냐면 들을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야. 그들에겐 내 말이 그저 꽥꽥-처럼 들리겠지.”


왜가리가 한 박자 쉬고 말했다.


“믿음엔 힘이 있다네. 실체 하는 힘이. 그리고 그 실체 하는 힘이 그 믿음의 대상을 실체 하게 해. 그것이 믿음의 힘이야.”




붉은색 빛바랜 담벼락 위에 고양이와 부엉이가 나란히 앉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덮쳐오는 먹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올 것이다. 세상에 대한 답을 찾으러 다녀온 며칠 사이 고양이는 꽤 말라있었다. 풀이 많이 죽어 보였다. 그런 그에게 부엉이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서쪽 동네로의 방문에 어떤 소득이 있었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도 없었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단 건 그의 실망 가득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약간은 화도 나 보였다. 상심이 꽤 큰 모양이었다. 이럴 때의 길라는 일단 가만히 둬야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자신이 내킬 때 털어놓을 것이다.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그날 밤」의 진실에 닿을 수 있을 거란 허무맹랑한 말을 길라가 처음 했을 때 자신이 말렸어야 했을까. 어쩌면 자신은 그의 젊음을 너무 과신한 게 아닐까. 아직 젊으니까 직접 부딪쳐봐도 된다는 과신. 젊음은 절대로 영원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자기가 길라를 가지 못하게 말렸다 해도, 혹은 그런 방식으로는 안된다고 했다 해도, 그가 그것을 고분고분 들었을 리가 없다.


곤은 그리 감상적이거나 감성적인 부엉이가 아녔다. 그에겐 논리와 효율이 중요했다. 확실히 그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었다. 길라와 그가 잘 통하는 것은 그래서였다. 길라는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쓸데없거나 시시한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물론 그와의 모든 대화가 교양 있거나 철학적인 건 아니었지만, 길라의 말들은 언제나 의미심장했다. 둘이서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서로 실없는 농담도 자주 하긴 했는데, 그것에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자꾸만 그것의 본질에 대해서 되새김질해보게 되고 또 달리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알맹이가 있었다. 그렇다, 길라의 생각과 말엔 「알맹이」가 있었다.


“두더지 먹어본 적 있어?” 부엉이 곤이 화두를 던졌다.


“두더지? 두더지는 갑자기 왜?”


“저쪽에, 여기서 남쪽으로 조금 가면 버려진 논밭 하나 있잖아, 늙은 허수아비 하나 서있는. 오랜만에 그 부근에서 먹을 거 없나 하다가 두더지를 한 마리 잡았어. 네가 이번에 서쪽 마을에 갔을 때 말야.”


길라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두더지를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내 기억엔 없는데. 두더지는 그냥 쥐랑 다른 맛인가?”


“정말 다르지. 두더지는, 뭐랄까, 쥐보다 훨씬 더 고기가 연하고 단맛이 나.”


“오호… 네 부리로 씹기엔 훨씬 낫겠구나.”


“그래 맞아. 땅속 깊은 곳에서 숙성된 맛이 나지. 처음엔 고소한 흙내음이 강하고 계속 씹다 보면 비에 젖은 버섯이랑 비슷한 듯한 풍미가 느껴져.”


부엉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고양이는 슬슬 배가 고파왔다. 둘은 남쪽의 그 논밭으로 가보기로 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이곳은 전혀 농지「였던」 모양새를 하고 있지 않았다. 흙은 찰기가 없었고 생명의 흔적은커녕 풀잎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그 생명력 강한 잡초도 쉽사리 뿌리내리길 꺼려하는 그런 삭막한 토양이었다.


“이런 곳에 정말 두더지가 산다고?” 길라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곤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여기가 땅 위에서 보기엔 이래 보여도 아래에서는 두더지들에겐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지렁이나 벌레 같은 것들이 많아서 그래.”


둘은 사냥을 시작했다. 설마 하니 아무리 둘 사이가 좋다한들 고양이와 새가 협동 사냥을 하거나 그런 그림은 아녔다. 부엉이 곤은 근처의 가깝게 자란 나무 위로 올라가 밝은 밤눈으로 밭을 주시하다가 땅에서 뒤뚱뒤뚱 꿈틀거리는 것이 있으면 은밀하게 접근해서 빠른 속도로 강하하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챘다. 반면 고양이 길라는 자세를 낮추고 파란 눈을 시퍼렇게 부라리며 주변의 흙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흙의 표면이 어둠 속에서 미세하게나마 들썩이는 것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때 잽싸게 달려 그곳을 거칠게 파헤쳐보면, 그 흙막 아래에 두더지가 있었다. 앞발에 붙들린 두더지는 바둥바둥 몸부림쳤지만 이내 고양이의 작지만 야무진 두 앞이빨에 물린 채 축 늘어졌다.


“예전에 황새라는 새랑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어. 동네에서는 처음 보는 새라서 내가 가서 말을 걸어본 거야. 무려 남아프리카에서 왔다더군.”


“남아프리카가 뭔데?” 길라가 벌써 두 번째 두더지의 가죽을 뜯기 시작하며 물었다. 곤의 말대로 아주 맛있는 고기였다.


“아주 먼 곳.”


“그래서?”


“그곳엔 <사막황금두더지>라고 하는 두더지가 있대. 그런데 그 두더지들은 눈이 피부와 털로 덮여서 앞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눈이 없는 게 아니고, 눈이 있어도 자신의 털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는 소리야. 대신 그들은 귓속의 뼈로 모래 속의 아주 미세한 진동까지 감지하여 개미의 모래 위 발소리까지도 듣고 위치를 파악하여 사냥을 한다지.”


길라는 자신의 파란 두 눈을 감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밤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광활한 하늘. 삭막하고도 건조한 날씨.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모래의 광야. 그런 곳에서도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부엉이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흥미롭지 않아? 눈이 애초에 없었던 게 아닌데, 자신의 털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 자신의 청력에만 의존하여 살아간다는 게. 그럼 이 두더지는 눈을 뜨고 있긴 할까? 아니면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거 그냥 계속 감고 있을까?”


고양이는 고기를 잘근잘근 씹으며 부엉이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하지만 봐봐, 두더지라는 것은 원래 다 지하에서 사는 거 아냐? 내가 알기로 두더지과들은 원래 시력이 안 좋아. 어차피 땅속에서 흙을 파는데 눈을 뜨고 있을 이유가 있겠어? 그런 식으론 흙먼지만 잔뜩 들어갈 텐데. 자신의 털이 눈앞을 가리는 건 두더지의 운명상 하등 상관이 없단 말이지.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사막황금두더지들의 눈이 가려졌다고 해서 이곳의 두더지들보다 더 불행한 게 아니란 말이야. 오히려 좋은 거지, 뜨고 있던, 감고 있던, 눈에 흙이 들어갈 일은 없을 테니까.”


이것이 바로 평소 곤이 알고 있는 고양이 길라의 그 「알맹이」였다.


“원흉을 따져보자면 애초에 두더지의 조상들이 땅밑에서 살기로 했던 것이 불행의 본질인 거겠지. 그들의 행동이 너무 굼떴고, 시력도 안 좋았으며, 자신을 지킬만한 변변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 하나 없었던 거야. 땅 위에서의 자신들은 너무나 쉽게 표적이 됐겠지. 그러니까 땅을 파고 들어가 지하세계에서 살게 된 거고. 어차피 앞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까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거야. 처음엔, 아주 처음엔 눈이 좋은 두더지들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들은 눈이 좋으니까 땅 위에서 버티다가 다 죽어나간 거야. 좋은 시력이 오히려 저주가 되어버린 거지. 마치 <길라>들이 이쁘게 생긴 죄로 다들 집고양이가 되어 고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뭐라고…? 고자…? 길라들이?” 부엉이 곤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런 게 있어.” 길라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부엉이가 큰 두 눈을 꿈뻑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눈이 좋지 않아서 땅속으로 숨어 들어갔던 두더지들이 결국 살아남았다는 거군. 그들의 좋지 않은 눈과 살아남는 방식을 물려받은 게 지금의 후손들인 거고. 그렇다면 시력이 좋지 못했던 건 오히려 그들에게 살아남는 방식을 반 강요한 축복이었을지도 모르겠네. “


“글쎄, 그걸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눈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땅밑에서 겨우 살아남는 삶이 축하해 줄 만한 삶일까? 그런 눈으로는 무지개가 백 개가 뜬다 한들 하나도 볼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들을 봐. 우린 빠르지. 우리에겐 엄청난 청력도, 지능도 있어. 심지어 너에겐 좋은 시력과 날개도 있고. 어쨌든 우린 그들보다 주어진 게 훨씬 많단 말이야. 만에 하나 나중에 우리가 늙어서 눈이 침침해지더라도 그때는 두더지와 마찬가지로 청력을 쓰면 되는 거야. 불공평하지만, 인생은 그런 거야.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로 어떻게든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두더지가 나에게 잡혀서 이것은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고 아무리 불평을 해봤자 나로서도 딱히 뭘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서쪽 동네를 다녀온 뒤 새삼 현실적이고 시니컬해진 고양이 길라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무엇이 그 잠깐 사이에 그를 이렇게나 화나게 만든 것일까.


식사를 마치고 쭈욱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새삼 두리번 살펴보니, 밭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늙은 허수아비 하나가 길라의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떡하니 서있었다. 그것이 입고 있는 빨간색과 검은색 체크무늬 패턴의 셔츠는 지난 세월을 증명하듯 넝마가 되어있었다. 눈썹을 치켜세우고 화난 표정을 그려놓았던 얼굴이 다 지워져 가는 볼품없는 허수아비였다.


허수아비는 정확히 딱 이곳에 꽂혀, 정확히 이곳에서 평생을, 한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긴 세월 동안 맞았던 부러질 정도로 거센 바람에 그간 많이 휘고 기울긴 했어도,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같은 곳에, 바로 여기에 우뚝 선채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이 밭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허수아비의 운명이거늘, 오늘 처음 본 허수아비에게 과몰입해서 뭘 그리 유난을 떠느냐 묻는다면, 길라도 딱히 그가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허수아비는 그저, 자신이 평생토록 지독히 외로웠음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지 않았을까. 그래, 어차피 허수아비의 일생이라는 게, 최대한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두 팔을 벌리고 서서 사람인 척을 하며 하루종일 밭을 이것저것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대부분 새다.) 하지만 새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부엉이 곤처럼 그가 그저 사람의 옷만 걸치고 있는 가짜라는 것을 알아채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쩌면 형식적인 존재일 뿐이라도, 그게 그의 삶 자체라 할지라도, 그는 나름 진지하게, 열심히 외로움을 버텨왔을 것이다. 과연 그것만큼 고고하고 우직한 삶이 또 있을까.


누군들 땅 속에 살고 싶어서 살겠는가. 두더지들의 삶은 불행하다며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낸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다. 각자가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거다. 그것을 보고 남이 함부로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공원에서 만났던 왜가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나 허수아비의 말이 들릴까 해서 그의 찡그린 두 눈을 보며 집중해 보았지만, 그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아마도 믿음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게 아닌가 보다.


비가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은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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