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져 있는 방 5
사라져 버린 것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음에도 숨이 막힐 것 같이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였을까. 짙은 농도의 밤에 뒤엉켜 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혼자서 남겨졌다는 사실이 길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기 때문이었을까. 둘 다였을 것이다. 길라는 콩닥콩닥 뛰는 자신의 조그만 심장의 진동을 느끼며 자신의 영역을 꼼꼼히 한 바퀴, 어느새 두 바퀴째 돌고 있었다. 「실체」하고 있는 밤 속에서 그가 무언가를 정해놓고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깜빡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많은 방들 중에서 불이 꺼졌다 켜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 사람이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그 방 안에는 반드시 길라와 마찬가지로 사라지지 않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올 거야.” 어머니 길라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그것은 퍽이나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돌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당장부터 흙이나 파 먹으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길라가 자신의 영역을 몇 번 돌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죽은 것은 그대로 죽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아까 곤이 남겨놓고 간 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쥐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쥐들의 냄새가 공기 중에 없다. 생기를 읽고 차갑게 식어 말라버린 귀뚜라미나 잠자리 등의 시체들이 그대로 길바닥에 낙엽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것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개미떼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길라는 죽어있는 것인가. 그런 걸까. 이것은 사후세계인가. 아니다. 고목나무와 민들레는 죽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그 무엇만큼이나 살아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곳에 우뚝 서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엄연히 살아있는 존재인데 어째서 다른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그들과 함께 사라지지 못했는가. 길라는 식물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버림받은 것일까.’
이런 주제는 부엉이 곤이 옆에 있었다면 아주 좋아했을 종류의 대화였을 것이다. 원래 말이 잘 없는 편인 고양이 길라는 곤과 마주칠 때만큼은 자신도 말이 많아지는 게 신기했다. 확실히 그것은 부엉이 곤의 친화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와의 다양한 대화가 길라는 싫지 않았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곤은 길라에게 하늘에서만 알 수 있는 세상의 정보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옥탑방에 대해서였다. 아파트와 대로가 정갈하게 나있는 도시에서는 길의 바닥을 전전하는 동물들에게 물을 찾기란 꽤나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장마가 내리는 여름보다 더 심했다. 두 지독한 계절 중 무엇이 더 싫은가를 고르는 것은 길고양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무엇이 더 위험한가를 따지자면 쉬이 겨울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혹독한 겨울을 조금이나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언덕 위의 옥탑방의 존재였다. 부엉이 곤은 하루종일 집 안에서 이런저런 악기를 뚱땅거리는 그 언덕의 꼭대기에서 사는 청년에 대해서 길라에게 얘기해 주었다.
“사람이 괜찮아.” 언젠가 곤이 나무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괜찮다는 게 뭘 기준으로 하는 소리야?” 길라가 물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건물 안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높은 계급으로 친단 말이야. 근데 언덕이나 산 위에서는 높이 올라갈수록 낮은 계급 취급을 받는단 말이지. 그 언덕 위에서는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동네가 다 「내려다」 보이는데도 말이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어진 걸」 좋아하니까.”
“「만들어진 거?」”
“그래- 건물이든, 자동차든, 시계든, 그런 것들 말이야. 인간들은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만들어진 것도 참 좋아해.” 길라가 덤덤히 말했다.
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동의했다. “확실히 그렇구나. 자연의 날 것은 별로 안 좋아하지, 인간들은.”
“확실히, 건물 안에서 사는 건 따뜻하니까.” 길라가 덧붙였다.
“집고양이가 되어볼 생각은 안 해봤어? 나 같은 부엉이야 건물 안은 감옥 같겠지만.”
“이번엔 안 할 거야.”
‘이번엔……?’ 부엉이 곤은 그 말의 뜻을, 혹은 의미를 잠시 고민해 봤지만 길라에게 그 이상을 물어보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언덕 위의 옥탑방에게는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다. 그가 길라를 자신의 집 안에 들이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마주칠 때마다 물이나 참치캔 등을 고양이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하지만 그 역시 지금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길라는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사라졌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길라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을 한 것일까. 그들과 길라가 분리된 이유는 무엇일까. 길라는 주관이 뚜렷한 고양이었지만, 언제나 자신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신만이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은 길라에게 꽤나 섭섭하고도 서운한 일이었다. 어머니 길라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모든 사라진 것들이 다시 나타난다 하여도 더 이상 길라가 그들과 단절된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지 그는 자신이 없었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런 깜빡임 없이 텅 비어있었다. 깜빡이는 것 없이 모든 불은 켜져 있는 채로, 아니면 꺼져 있는 채로였다. 꿈뻑이는 것은 오로지 고양이 길라 자신의 두 눈밖에 없었다.
길라는 한 아파트 단지 안의 산책로에 수풀이 살짝 가려져있는 한 뜰에 가보았다. 그곳엔 키가 크게 자란 늙은 나무들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특히 여름에 낮잠을 청하기가 수월한 그의 아지트였다. 자신보다 큰 짐승의 위협을 받게 될 경우 여차하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버리면 됐기에 안전적인 측면으로도 꽤 쓸만한 곳이었다. 거기에 난 길을 산책하는 아파트의 주민들도 그 수가 적지는 않았는데, 대부분이 걸음이 느린 노인들이라 길라의 심기를 크게 건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그새 나무들의 잎이 모두 색이 바래어 낙엽이 되어 많이도 떨어져 있었다.
길라가 자신의 아지트에 온 이유는 딱 한 가지, 자신의 고양이 벗들이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길라는 어디서 욕먹을 짓을 하고 다니는 고양이는 아니었기에 딱히 그들과 같이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음에도 고양이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괜찮은 편이었다. 아지트에 큰 기대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를 봤으려면 진작에 봤을 것이고, 냄새라도 저 멀리서 진작에 맡았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나 그곳에 다른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고양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고양이 길라, 자신만이 특별한 것이다. 글쎄, 특별이라는 게 과연 올바른 표현일까. 이 넓은 세상에 길라 자신만이 남겨져있다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었다. 과연 자신이 「특별」 하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것일까? 남겨졌다는 것은 어쩌면 소외받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뒤쳐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자신은 어쩌면 고양이가 아닌 게 아닐까.
바람에 아파트 뒤뜰의 나무들이 으스스 떨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둠의 짙은 농도에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파트의 몇몇 열린 베란다 창문들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가 겹쳐 들렸지만 사람들의 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어색한 정적인지 길라는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당최 말이 많으니까 말이다. 길라는 인간들만큼이나 말이 많은 존재들은 알지 못한다. 수다스러운 부엉이 곤 마저도 그들만큼 말이 많지는 않다.
바로 그때, 아지트를 등 지고 있는 아파트의 복도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면서 복도의 센서등이 같이 켜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여기 있소’라고 외치는 듯이. ‘나 말고도 사라지지 않은 이가 있다.’ 길라는 이 위에서 그 사람의 움직임을 두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흡사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한 밤중의 어둡고 고요한 들판 위에 휏불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