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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안 Sep 05. 2024

O

불이 켜져 있는 방 6

    고양이 길라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그 여자 사람을 쫓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어느 하얀색 세단의 뒷 범퍼 밑에 쭈그리고 숨은 채로 여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길라 자신이 왜 그녀를 ‘지켜보기만 하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것 역시 선택이라기 보단 본능적인 행동이었을 뿐이다. 막상 그 인간에게 다가가 스스로를 보인다 해도 둘이 이 상황에 대해서 토론이라던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아파트 현관문을 나온 그녀는 뒤돌아서서 자신의 건물 구석구석을 살폈다. 무언가가 석연치 않은 눈치였다. 그리고선 마음이 급한 듯이 아파트 단지 안의 이곳저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었다. 멀리서 여자의 얼굴 표정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만으로도 그것을 길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세상의 모두가 사라진 이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운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다른 인간들을 찾고 있는 중이렸다.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사람이라고 길라는 생각했다. 자신 외에도 사라지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는 게 단지 반가워서 드는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여자의 냄새가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냄새를 기억해 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밤이 세상을 거의 다 채울 시점에, 그러니까, 편의점 앞의 시계탑에 짧은바늘과 긴 바늘이 둘 다 하늘 쪽을 향하는 시간에, 매일밤 항상 그곳을 지나는 여자였다. 그 여자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녀에게선 남들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약간 달콤하기도 하고, 이내 기름진 휘발유의 잔향이 남는 그런 종류의 향이었다. 맞다. 저 사람은 그 여자가 확실했다.


왜일까. 모든 것이 사라진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왜 하필 고양이 길라와 저 사람일까. 길라 자신은 이 상황에 대하여 어머니 길라에게 이미 「예언」을 들어본 바가 있다. 그렇다면 저 사람 역시 본인의 부모에게서 미리 들은 바가 있는 걸까. 여자가 하는 행동만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여자는 주차장의 정중앙에 있는 어떤 건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번엔 단지의 입구에 있는 방금 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고양이 길라가 알기로, 그곳엔 이 단지라고 불리는 영역의 파수꾼 같은 존재가 살고 있었다. 네 명 정도가 교대를 하며 그곳을 지켰는데, 한 명을 빼고 나머지 셋은 고양이 길라와 다른 고양이들에게 굉장히 적대적인 인간들이었다. 필사적인 정도 까지는 아니었지만, 먼치에서도 그들의 눈에 띄면 그들은 언제나 양팔을 좌우로 휘두르며 “훠이 훠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불쾌하고도 짜증스러운 제스처였다. 고양이 길라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싫어하는 쥐도 잡아주었다. 여차하면 바퀴벌레도 먹어주었다. 물론 억지로 먹은 것은 아니고 너무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을 때가 있었다. 심지어 고양이들의 아지트가 있는 그 산책길에 볼 일을 보더라도 항상 모래로 정성스럽게 덮었단 말이다.


좌우지간, 그 재수 없는 놈들 세명 역시 지금은 없었다. 이제 온 세상에 다리로 걷는 것은 이 여자와 고양이 길라, 둘이 되었다. 아니지, 어쩌면 여기서 좀 더 먼 곳에도 몇이나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으로 길라의 머리는 약간 더 복잡해졌고, 마음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여자는 어느새 다시 체념을 한 얼굴로 자신의 아파트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길라의 기준으로는 포기가 아주 빠른 사람이었다. 여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밝혀야 할지 길라는 고민했지만, 역시나 아까와 같은 이유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그냥 보여줘도 될 것을 굳이 그러지 않는 것은, 아마도 길라가 개가 아닌 고양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양이는 그런 것이니까.


여자는 건물 앞에 서서 건물 위를 올려다 보며 무언가를 세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웬일인지 엘리베이터라는 것을 타지 않고 계단을 직접 올라가면서 아까처럼 계단의 센서등들을 하나하나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집들마다 다급한 박자로 쾅쾅쾅 큰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것 역시 평소였다면 다른 많은 소리들과 섞여 길라에게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그것은 마치 광활한 광야의 바싹 마른하늘에 울려 퍼지는 천둥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를 발견해 줘요’라는 듯이. 그래,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여자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고양이로서는 무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세상에 남겨진 게 자신 혼자라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그다지 큰 생각이나 감정의 전환은 없었다. 오히려, 어이가 없게도 슬슬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점점 순응이 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양이 길라는 아까 언덕길의 나무 밑에 부엉이 곤이 사냥해 놓았던 쥐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죽은 쥐 두 마리는 아까 봤던 자세와 형태 그대로 나무 밑에 놓여있었다. 텁텁하고 까칠한 쥐의 털가죽을 질겅질겅 씹으며 하늘에 떠있는 이제 막 차오르기 시작한, 혹은 직전인 위태로운 달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밑에 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그 위치가 자신의 심장박동수로 약 250번 정도 전의 위치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들은 보통 시간을 자신의 심장박동수로 세었다.) 이제 와서 놀라울 것도 없었다. 다만 저 구름의 움직임이 세상이 사라진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길라의 새파란 눈이 짙은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발광했다. 입맛이 떨어져 결국 나머지 쥐 한 마리는 먹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바로 그때, 그의 파란 두 눈앞에 부엉이 곤이 길라의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은 채로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너무나 많은 냄새와 소리가 고양이 길라의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길라는 너무나 놀라서 뒤로 뒷걸음질을 치며 점프를 했다. 부엉이 곤 역시 깜짝 놀랐는지 호로롱 크게 울며 두 날개를 양 옆으로 쫙 펼쳤다.


“아니 뭐야.”

“뭐가 뭐야.” 놀란 상태의 길라가 살짝 날카롭게 되받아 쳤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거야 말로 고양이 길라가 할 말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었던 거냐, 부엉이 곤.’

“난 그... 언덕 위 옥탑방에 갔다가 오는 길이지.”

“그새 벌써 갔다가 왔다고…?” 곤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게다가… 네 발자국 소리를 내가 전혀 못 들었단 말이지…? 아니, 쥐 한 마리는 또 어디로 간 거지? 내가 분명히 두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 한 마리는 이미 고양이 길라의 뱃속에 있었다.

“밤 눈이 어두워서 착각한 거 아냐?” 길라가 침착하게 말했다.

호옥호옥 하고 곤이 크게 웃었다. “진짜 웃기네.” 만족스러운 듯이 호옥 하고 한번 더 웃었다. “아주 괜찮은 농담이야.”


길라는 잠시 망설였다. 부엉이 곤은 믿을 만한 친구였다. 평소에 장난이나 농담을 좋아하긴 했지만 절대로 입이 가볍거나 경솔한 타입의 새는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을 믿을 만한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해야겠다.


“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지?”

“물론이지, 방금처럼 진지한 고양이니까 말이야.” 곤이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길라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부엉이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할머니 길라로부터 어머니 길라를 통해 자신까지 전해졌던 전설 같은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반쯤은 장난, 반쯤은 상징적인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던 그 이야기에 대해서 사뭇 진지하게, 최대한 디테일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오늘 보았던 그믐달에 대해서, 시계탑에 대해서, 무거운 밤에 대해서, 그 사건의 「징조」에 대해서. 그래서 올라갔던 달동네의 언덕과 그 위 옥탑방 옆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목격한 그 사건의 「순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누가 남겨져 있었는지에 대해서. 아파트의 주차장을 방황하던 한 여자에 대해서. 그리고 갑자기 부엉이 곤 본인과 함께 사라졌던 것들이 한꺼번에 돌아오면서 방금 서로가 놀랐던 것까지, 기승과 전결을 고양이 길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어휘력을 써서 설명했다. 그것을 말 많은 부엉이 곤은 중간에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고 그 큰 두 눈을 꿈뻑이며 고양이의 파란 두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래서 네가 다가오는 것을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구나.”

“그거야.” 길라가 대답했다.

“그래서 쥐 한 마리가 갑자기 사라져 있었던 것이고. 다시 보니까 여기 한마리 분 뼈는 남아있네.”

“그래.” 길라가 재차 대답했다.

“그렇군…….”

“어떻게 생각해?”

“일단은 말이야, 네가 이렇게나 정성껏 농담을 할 타입의 고양이는 아니라고 생각해.” 곤이 말했다.

“그건 확실히 그렇지.”

부엉이 곤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네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그 생각대로야.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네가 혹시 숲 속에서 이상한 버섯을 먹었거나 해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가능성은?”

“없어.” 길라가 단호히 말했다. “제발, 내 이야기를 믿는다고 말해줘.”

부엉이 곤이 눈을 한 번 꿈뻑이며 말했다. “너를 난 믿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너를 믿어. 그게 「믿는다」는 거 아니겠어.”


그것은 고양이 길라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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