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식일기] 통큰왕손만두찐빵, 강릉

고소함과 육즙 입안 가득, 터지는 왕손만두

by 김고로

이쁜 여자와 나의 신혼 시절, 우리는 돈이 넉넉해서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장에서 하하호호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는 제법 잘 살았다, 이쁜 여자가 결혼 전부터 살기 시작했던 강릉 시내와 택지라는 동네 중간에 자리 잡은 어느 건물 2층의 원룸도, 투룸도 아닌 1.5룸에 나는 거의 몸만 들어가서 함께 살고 출퇴근은 당연히 버스로 다니는 생활. 설상가상 나는 당시에 막 자진 퇴사를 한 상태라 모아둔 돈이 많지도 않았다. 나는 그래도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집안일을 당연히 도맡아 하며 잉여인간을 간신히 면했고 아내가 직장일을 하면서 살았다. 그것이 신혼의 우리였다.


긴축 재정, 허리띠를 졸라맨 상태에서 근검절약, 검소한 정신과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경조사나 기념일, 생일 등이 찾아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 기념일이나 경조사가 서로의 최측근에게 발생하는 일이라면 더더욱.


"곧 있으면 네 생일이구나."


책상의자에 앉아서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의 뒤, 바닥 탁자에 앉아서 역시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쁜 여자가 말을 꺼냈다. 이미 가을에 접어든 강릉, 추운 공기 때문에 우리가 애용하는 코타츠에 이불을 덮어놓고, 이쁜 여자는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게."


".........."


그리고 정적, 누군가의 생일이라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이라면 선물과 케이크, 근사한 외식 등 무언가 좋은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심과 정이 넘치는 부부지간의 도리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통장 잔고는 그럴 여유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을 꺼낸다,


"걱정하지 마, 나 케이크 안 좋아하는 것 알잖아 대충 집에서 미역국 끓여서 저녁 먹자."


"그건 아는데, 그래도....."


이쁜 여자가 그 뒤에 이어서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네 생일이잖아'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지 않으냐며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우리 그러면 조금 다른 케이크 먹을까?"


이쁜 여자의 정적을 꿰뚫는 목소리에 내 머릿속에서도 갑작스레 전구가 빠르게 껐다 켜지기를 반복한다. 그렇다, 군대에서도 생일에는 케이크를 구하기 어렵다면 PX에서 온갖 케이크 비슷한 과자를 사서 생일 케이크처럼 쌓아서 초를 꽂지 않는가.


참고로 comma는 GOP(PX도 없던 최전선)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필하는 군의관님의 생신을 위해 병사들과 함께 건빵을 빻아서 우유와 (취사장의) 달걀을 섞어 반죽을 만든 후 취사장의 도움을 받아 건빵케이크를 만들어 먹은 전적이 있을 만큼 생일 축하하는 음식에 진심이다.


"그래, 그러자. 우리 왕만두 잔뜩 사서 쌓아 먹자!"


"한 10개 이상 사면 산처럼, 케이크처럼 높게 쌓아서 먹을 수 있겠지?"


"그리고 거기에 초를 꽂으면 케이크이지!"


우리는 생일에 어마어마하게 맛있고 특이한 케이크를 만들어 먹을 상상에 서로 깔깔 웃으면서 생일케이크는 단골 왕만두 집의 만두로 쌓아서 먹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의 생일이 되자 나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집 앞에 있는, 용강동으로 넘어가는, 서부시장으로 내려가는 커다란 고개를 건너서 강릉초등학교를 지나 홍제동으로 내리 걸어 만두 집에 도착했다, 나와 이쁜 여자의 단골 만두집, '통큰왕손만두찐빵'. 직관적이고 정확한 음식과 가게 이름 '통큰왕손만두찐빵'. 커다란 왕만두와 널찍하고 둥근 찐빵과 튀긴 꽈배기를 파는 곳인데 나는 아직 왕만두와 찐빵 밖에는 먹어보지 않았다. 왕만두는 고기와 김치, 찐빵은 쑥, 단호박 등 여러 반죽에 직접 만드신 단팥소를 넣어서 널찍하고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서 파시는 곳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가격은 모두 개당 1천 원이었고 지금은 밀가루 값이 많이 오르는 것을 막으실 수 없었는지 개당 1300원이 되었다. 그래도 4개를 사면 5천 원에 해주셔서 나와 이쁜 여자에게는 딱 좋은 가격.


당시의 나는 신이 나서 왕만두를 고기와 김치를 섞어 큰 봉투가 살짝 터질 정도로 만두를 많이 사서 집에 돌아왔다. 가을이라서 만두를 사서 고개를 넘어서 돌아오는 길은 덥지 않고 선선하니 좋았다, 더욱이나 집에 이쁜 여자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함께 만두를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도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보금자리인 우리의 거실 겸 침실에 앉아 나의 생일축하를 시작했다, 만두를 쌓아서 성처럼 만들어 우리는 이 커다란 만두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왕만두를 질릴 때까지 먹었다.


당시 사진촬영을 위해 이쁘게 쌓은 만두케잌, 옆으로 어느 분식집에서 사온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이 보인다.


그렇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는 통큰왕손만두찐빵의 만두에 대해서 좋은 추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곳은 왕만두를 잘 사다가 먹는다. 배달도 안되고 홀에서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아닌, 오직 포장으로만 장사를 하는 왕만두집이지만 이곳은 홍제동에서 장사를 시작한 지 생각보다 꽤 오래된 집으로서 만두와 찐빵만으로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그만큼이나 만두와 찐빵의 맛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나는 주로 음식사진만을 찍는다, 식당의 사진은 잘 찍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식당은 음식사진만 찍기에는 허전한 글이 될 것 같아 굳이 식당의 모습을 첨부하는 바이다.

날이 좋은 어느 오후, 내가 출근하기 전에 마침 우리에게 생겨난 현금 5천 원. 현금을 다시 은행 통장에 넣어놓을까 생각하다가,


"우리 이 돈으로 만두 사 먹자!"라고 이쁜 여자가 외친다.


나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이쁜 여자에게 동의했다, 그리고 12시가 되기 전에 나의 애마 '벨로'를 내달려 용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와 강릉초등학교를 지나 홍제동의 통큰왕손만두찐빵 집에 도착한다.


먼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큰왕손만두찐빵집의 외관은 변하지 않았다, 커다란 압력솥과 만두, 찐빵 반죽들이 담긴 커다란 스테인리스 선반들. 만두와 찐빵은 대형 찜통 속에 넣어두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고, 다시 찌는 형식이다. 그 찜통 속에 성인의 주먹만큼이나 큰 왕만두와, 손바닥보다 더 널찍한 형형색색의 찐빵들이 잠들어있는 것이다. 가격표는 만두든 찐빵이든 개당 1천3백 원이지만 4개는 5천 원, 8개는 만원이라는 친절한 안내가 되어있다. 마침 딱 5천 원이 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 김치 2개 고기 2개 주세요!"


통큰왕손만두집의 사장님께서 큰 찜통을 열어 구름과도 같은 김이 모락모락 열기와 함께 피어오르고 만두의 고기소와 김칫소 냄새가 고소한 꿈틀거림과 함께 승천한다. 그 모습과 향기만 맡아도 군침이 돈다. 이미 좋은 왕만두의 맛이 상상이 되는 것이다. 만두 4개를 받아서는 뜨끈뜨끈한 그 열기가 식기 전에 자전거를 내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식지도 않은, 육수가 찰랑거릴 정도의 따뜻함을 유지한 채로 먹는 만두는 최고다.


통큰왕손만두찐빵의 김치왕만두 (좌), 고기왕만두 (우) 주먹만한 만두 위로 물결 혹은 나뭇잎 무늬가 인상적이다.

조심스럽게 하나씩 포장지에 곱게 쌓인 왕만두를 한 장씩 벗겨낸다, 수줍게 하얗고 반질거리는 얼굴을 내놓는 왕만두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설렌다. 나는 먼저 집어든 김치만두부터 눈을 맞추고, 긴장하지 말고 입으로 들어오게끔 살짝 어루만진 후에 입으로 밀어 넣는다.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렴, 살포시 먹어주마.


들깨, 당면, 부추, 김치, 대파, 돼지고기, 완벽한 김치왕만두

김치왕만두를 깊게 베어 물어보자. 통큰왕손찐만두의 특징은 소에 들깨가루를 잔뜩 넣는다는 것이다. 까끌거리면서도 들깨만의 독특한 향과 고소함이 돼지고기의 육즙, 기름과 함께 맞물려 식감을 다양하게, 고소함과 진득한 맛을 다채롭게 뿜어낸다. 거기에 김치는 적당히 매콤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마늘이나 고추맛이 강하지 않고 겉절이도 아니고 신김치도 아닌 적당한 숙성도를 가진 김치는 만두에 잘 어울리는 재료이다. 다른 재료들과 맛과 향이 균형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그 점은 중요하다. 어떠한 맛이든 만두소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처음 고소한 들깨와 돼지고기의 육즙이 쭈욱 입안에 퍼지면서 매콤하고 감칠맛 넘치는 김치의 맛이, 치아 사이에서 아삭아삭 씹히고 그 이후에 대파와 부추가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 그리고 대파와 부추의 풍미는 김치의 풍미와 함께 코로 올라온다. 고소함과 진득하고 농후한 고기의 맛, 거기에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김치와 채소들의 연속.


"아, 여기 김치만두는 전보다 더 맛있네. 오래간만에 먹어서 그런가."


순식간에 김치왕만두는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는 고기만두를 집어 들었다. 나는 김치만두보다는 고기만두를 더 좋아한다, 진득한 고기맛을 김치의 그 고유의 맛보다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들깨, 참깨, 돼지고기, 당면, 대파, 부추. 고소한 고기왕만두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통큰왕손만두는 만두피와 찐빵을 직접 만드시는데, 정말 잘 만드신다. 왕만두의 만두피는 얇으며 쫄깃하고 부드럽다, 찐빵은 만두보다는 조금 더 두텁지만 푹신푹신한 느낌이다. 왕만두의 만두피가 얇고 쫄깃하다는 것은 그 안에 더 많은 소를 담을 수 있고 밀가루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적당히 만두소와 작용하면서 만두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기왕만두에는 들깨가루와 통참깨가 함께 들어있어서 입안에서 깨가 톡톡 터지는 식감이 좋으며 거기에 돼지고기와 그 육수가 과즙처럼 흘러내리는 맛이다, 실제로 먹다 보면 입에서 육수가 조금 흘러서 입술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향긋함의 부추와 대파. 부드러운 만두피로 처음 닿는 왕만두의 식감으로 시작해서 깨들과 돼지고기가 만나 입안에서 폭발하는 고소함과 진득한 육즙의 조화, 사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다. 나는 왕만두뿐 아니라 교자만두도 참 좋아하는데, 왕만두는 이렇게 가득 찬 만두소에서 폭발하는 즙이 있기에 가끔 교자만두가 이 엄청난 즙을 따라오지 못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이 맛있는 왕만두들을 근처에 사시는 주민들과 강릉초등학교를 다니는 직원분들과 아이들은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겠지, 천 원을 조금 넘는 가격이고 현금만 받는다고 해도 계좌이체로도 사 먹을 수 있는 요즘 세상이니 나는 이 통큰왕손만두집 근처에 살았다면 일주일에 2, 3번은 먹었지 않았을까 싶다. 한동안 식단을 하느라 많이 못 먹는 손해를 봤으니 앞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자주 사 먹어야겠다. 육즙 가득한 왕만두는 누구도 참을 수 없지. 앞으로도 이 자리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만두를 팔아주시기를 바라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