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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신성춘, 강릉

불맛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by 김고로

강릉에 주거하는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노포로 손꼽히는 3대 식당이 있었으니 산수갑산, 원성식당 그리고 오늘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신성춘이다.


강릉에서 오래된 '노포'들이 모인 동네라고 하면 거의 누구나 포남동과 동부시장 쪽을 꼽고 그에 대해서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는 않겠지만, 오래되고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한 노포 '중화요리' 식당을 꼽자고 하면 위에서 얘기한 저 집들을 꼽겠다, 아마 개인차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바에서는 저 위의 3집에, 포남동에 있는 '동보성'을 추가하지 않으려나. 오직 맛 좋은 '노포'를 기준으로 했을 때이고, 이 기준은 입맛과 취향마다 개인차가 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산수갑산'은 주인장의 세월과 건강 등을 이유로 몇 년 전에 폐업을 하여 내가 맛을 볼 수도 있기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원성식당은 아직 잡채밥과 탕수육, 고기튀김을 필두로 명주동에서 왕성하게 영업 중이시며 본인이 이전에 브런치를 통해서 소개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전에 강릉시내에서 '로스푼티노'를 운영하시던 사장님으로부터 입소문을 듣고 알게 된 '신성춘'은 최근에서야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나만큼이나 식도락을 즐기시는 사장님께서 본인의 SNS를 통해 한번 소개를 해주시기도 했던 신성춘은, 강릉에서는 외지인인 나에게는 생소한 장소였다. 어느 날은 이쁜 여자와 함께 강릉초등학교 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신성춘'이라는 무언가 세월이 느껴지는 이름을 가진 오래된 하얀 건물에 들어와 있는 중화요릿집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느낌으로는 탕수육뿐 아니라 간짜장도 맛이 좋을 것 같고, '원성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던 고기튀김도 메뉴판에는 없지만 하실 것 같은 그런 중화요릿집이었다.


"여기 저번에 로스푼티노 사장님 통해서 봤던 곳 거기네."


"그러게, 그런데 오늘은 영업 안 한다."


가게 앞에 투박하게 써서 붙여놓은 간이 공지에는


'토요일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사장님의 필기체로 적어놓으신 종이가 투명테이프로 가게 외벽에 붙어 지나가는 차량과 바람에 의해서 나풀거리기도 하고, 팔랑이기도 하면서 움직였다.


"토요일이면 사람들이 많이 올 법 한데, 그 대신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신다니."


"낭만적인 분이시네, 토요일 저녁이면 중화요릿집으로서는 매출이 높을 시간인데."


안 쪽에 있는 메뉴를 살펴보니 '고기튀김'이나 '텐푸라'라고 적힌 음식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물어보면 해주지 않으시려나? 하고 생각하고서는 이쁜 여자와는 추후 방문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옮겼었다.


그리고 나의 식단 및 운동을 강하게 하는 기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식도락을 하기 위해 어떤 곳들을 방문할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신성춘'이 그 계획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릉에 사는 사람들이나 그 근처인 홍제동, 용강동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동네 오래된 중국집이겠지만 나처럼 강릉에 사는 외지인 식도락가에게는 귀한 맛을 볼 수 있는 중국집. 처음 방문 했을 때에는 목요일이었는데, 신성춘 사장님의 개인 사정으로 임시 휴무가 걸려있어서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었고, 두 번째 점심 식사를 위한 방문 때 겨우 우리는 신성춘에 입성할 수 있었다.


드르르륵


처음은 어떤 색의 건물이었을까, 90년대가 다 되어가는 1988년에 건물이 완공되었다는 대리석으로 된 시초석의 알림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짙은 갈색으로 된 작은 벽돌을 쌓아 올린 건물이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유지 보수를 위해 하얀색 페인트칠을 통해서 마감처리를 한 건물. 2층에는 가정집에 큰 백구 한 마리가 노닐고 있는 건물. 통유리로 된 미닫이 문에 붉은색의 강렬한 한글과 한자로 '신성춘(新成春)'이라는 이름을 크게 붙여 넣고 양옆에 짬뽕과 짜장면의 사진으로 장식을 한 입구.


가게에 들어가니 나이가 있으신 여 사장님께서 우리를 안쪽 방의 넓은 테이블로 안내하셨다, 안쪽 홀로 들어가는 문 옆에는 작은 텔레비전과 전화기,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고, 김치와 단무지, 양파 등을 직접 담아서 먹을 수 있는 셀프바가 작게 마련되었다.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 놓인 4인용 탁자에는 근처 건설현장에서 빠르게 점심을 먹으러 오신 노동자 한분이 큼지막한 볶음밥에 깍두기를 올려서 이미 식사를 하고 계신 모습.


"뭐 먹을까, 여기는 간짜장이 훌륭하다고 말씀하시던데."


우리는 메뉴를 보면서 얘기했다, 신기한 점은 신성춘에서는 간짜장을 1인분도 해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중화요릿집에서는 짜장을 새로 볶아내는 수고를 생각해서 간짜장은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데, 이곳은 간짜장에 대해서 그런 얘기가 없었다.


"맛이 궁금하니까, 탕수육에 간짜장에 짬뽕이 들어간 메뉴를 주문해 보자."


"그래, 다 먹어보자."


신성춘은 (나만 몰랐지) 다른 식도락가들에게는 어느 정도 이름이 있었는지, 간짜장과 탕수육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있었다. 다만, 음식을 주문하고 나면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는 점을 얘기했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사장님께서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그때부터 주방에서 웍질과 불향이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사장님께서 직접 탕수육을 가져오셨다.


"주문, 요리, 접객까지 혼자 다 하시는구나."


"손님이 몰리는 시간이 되면 매우 힘드시겠는데."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배꼽시계가 크게 울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춘의 탕수육을 향하여 젓가락을 꽂아 내리기 시작했다. 신성춘의 탕수육 소스는 케첩을 첨가하기 이전의 그 옛날, 약간의 갈색빛이 감도는 맑은 탕수육 소스. 고기튀김을 먹어보기 전에 소스의 온전한 맛이 궁금하여 숟가락으로 소스를 떠먹어 본다.



뜨겁고 시큼한 향기가 강하게 코와 입으로 밀려들어온다, '콜록'거리면서 기침이 나는 것을 내뱉고 다시 입으로 가져가본다. 첫맛은 강한 새콤함과 신맛, 그리고 따라서 들어오는 농후한 단맛이 입안에 철퍽철퍽거리면서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다. 강렬한 탕수육 소스의 맛, 후르츠 칵테일 혹은 파인애플 과즙의 맛이 섞인 새콤달콤하며 부드러운 맛이다.


"오, 소스에서 과일맛이 강하게 나. 내 생각에는 파인애플 과즙을 넣으셨으려나."


"아니면 후르츠칵테일의 주스를 넣으셨을까."


탕수육 소스에는 당근, 양파, 목이버섯, 완두콩 등 우리가 어릴 적 탕수육을 주문하면 언제나 볼 수 있었던 채소들이 썰려서 들어가 있는 모습.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옛 탕수육의 모습을 신성춘은 갖고 있었다. 반가운 동창을 여기서도 만나는구먼, 반갑다 친구야.



하지만 이제 옛 소스의 감흥에 빠져 식사를 못 하면 안 된다. 소스에 푹 절은 고기튀김을 하나 들어서 씹어본다. 첫맛이 단단하다, 그리고


바사삭


소스에 절여 있어서 눅눅하고 축축한 식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 나의 예상을 뒤엎는 신성춘의 탕수육, 적당히 바삭한 튀김과 두께가 채 썬 고기와 어울려 쫄깃한 맛에 즐거운 식감을 얹어준다.


"옛날 스타일 탕수육이어서 바삭할 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튀김 식감이 예상보다 좋아. 만족스럽네."


"응, 맛있어."


우리가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탕수육이 맛이 좋아서 그랬던 것인지 탕수육은 그릇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끝까지 바삭한 튀김옷은 아니기 때문에 탕수육 소스에 젖으면서 부드러워졌는데, 튀김옷은 소스에 젖으니 쫄깃하고 쫀득해졌다, 새콤달콤한 소스에 젖은 탕수육을 입으로 씹으니 '챡챡' 소리가 날 정도로 입안에 착착 감기는 튀김옷이었다. 바삭했던 튀김옷이 절여서 눅눅해졌는데 오히려 입안에 찰싹 달라붙으면서 더 맛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신성춘 탕수육을 칭찬하는 이유가 나와 같은 이유려나.


튀긴 고기가 다 사라져도 나는 탕수육 그릇을 보내주지 못했다. 항상 하는 얘기이지만 맛있는 탕수육은 '찍먹'과 '부먹'이 아니라 '퍼먹'이어야 하는 법이다. 맛있는 탕수육은 고기를 다 먹고도, 숟가락을 들어 소스를 다 퍼먹는 것이다. 다음 요리인 간짜장과 짬뽕이 행차를 했기 때문에 탁자의 공간 문제로 나는 탕수육을 설거지로 보내줘야 했지만 소스를 다 퍼먹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나는 짬뽕 먹을게, 너는 간짜장이지?"


"응, 내가 간짜장 먹을게."



종수반점의 간짜장을 좋아하는 이쁜 여자는 신성춘의 간짜장도 많은 기대를 품고 왔다. 그리고 이미 간짜장에서 풍기는 향기가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얘기하는 중이었다. 간짜장이 담긴 그릇에서 불향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나는 간짜장 그릇을 그대로 면이 따로 담겨 있는 그릇에 부었고, 이쁜 여자는 슥슥 비빈다. 강한 불에 볶은 단맛과 짠맛이 나의 식욕을 자극한다.


후루루루룩


잘 비벼진 간짜장을 따로 그릇에 담아 시식을 한다, 첫 입에서 이미 불맛이 느껴진다. 춘장의 달콤함 위로 강한 웍질로 첨가된 불향이 코로 훅 밀려 들어온다. 내 기억 속에 이런 맛이 나는 짜장은 먹어 본 적이 없다.


"와, 짜장에서 불맛이 나는 짜장면은 처음 먹어보는데."


"간짜장의 맛이 다른 곳과는 다른데, 양파도 아삭하니 좋고 돼지고기도 많이 들었어."


"신기하게 여기 간짜장은 감자가 들었네, 요즘은 감자를 짜장에 넣어주는 곳은 잘 못 봤는데."



짜장과 짬뽕에 넣으시는 면도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것을 쓰시는지 투명하게 노란색의 면발이 아니라 조금 더 흰색빛이 맴도는 면발이었다. 짜장이 면에 더 잘 달라붙는 면, 신성춘은 새로운 음식들이 아니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면발에 촘촘히 잘 달라붙은 간짜장의 화끈한 풍미가 떠올라 군침이 도는 바이다. 나는 짜장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신성춘의 간짜장은 이미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신성춘의 짬뽕은 (간짜장만큼의 강렬함은 없지만) 칼칼하고 매콤한 불맛이 인상적이었다. 고춧가루가 살짝 텁텁할 정도로 들어간 진하고 재료는 홍합, 바지락, 돼지고기, 양파, 고추 등으로 맛을 내서 진하고 깔끔한 맛. 개인적으로 오징어가 들어간 짬뽕은 그리 좋아하지 않고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육(肉) 짬뽕을 더 선호하는 나이기 때문에 해물과 고기가 균형 있게 들어간 신성춘의 짬뽕은 환영이었다.


굳이 어딘가와 비교를 하자면 근처 서부시장의 입구에 자리 잡은 '작은성'에서 먹던 짬뽕과 맛이 비슷했지만 신성춘도 신성춘만의 독자적인 짬뽕맛을 보유하고 있었다. 불에 그을린 돼지고기와 해물의 조합으로 우러난 가벼우면서 진한, 짬뽕의 칼칼함과 매콤함. 작은성의 사장님도, 신성춘의 사장님도 어느 정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라는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짬뽕과 옛날에 중화요릿집에서 요리하던 짬뽕은 상당히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고춧가루를 더 많이 넣은 칼칼하고 무겁고, 텁텁한 맛이었으려나. 혹시나 아시는 분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달라, 나도 알고 싶다.



식사를 다 마치고 계산을 하러 가는데, 우리가 처음 들어올 때 식사를 하시던 분은 이미 사라지셨고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는 다른 분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계셨는데 다들 볶음밥을 드시고 계셨다, 1인분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많은 양과 짜장, 그리고 웍으로 지져낸 달걀. 진짜루가 폐업을 해버린 마당에 신성춘은 나에게 맛있는 볶음밥을 선사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볶음밥을 드시네."


"우리가 잘못 주문한 건가. 여기 볶음밥도 맛이 좋은가 봐."


"다음번에 오면 볶음밥을 먹어야겠어."


계산대로 가니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시는 사장님께서 당연히 계산도 맡아 해주신다.


"혼자서 다 하시려면 힘드시지 않으세요?"


나의 말을 받으신 사장님께서 빙긋, 점잖게 미소 지으시며 답하신다.


"그러니까 점심 장사만 하죠. 원래 우리 바깥양반이랑 같이 했었는데, 손목이 안 좋아져서 혼자 장사해요."


"아~ 그래서 저녁에는 문이 닫혀있었군요."


원성식당에서는 2대의 부부가 걸쳐서 웍질로 짬뽕과 잡채밥을 볶아내는 모습이었지만, 신성춘은 아내 되시는 사장님 홀로 이 맛을 유지하신다고 하니 존경스럽다.


신성춘은 내 맘대로 정하는 동네 노포 맛집의 기준을 갖췄다, 나이가 지긋하신 고수가 운영하는가? 네. 동네의 건설현장 노동자분들이 자주 찾아오는가? 네. 오래되었으면서 옛맛을 유지하는가? 네. 내가 먹었을 때 맛이 좋은가? 네.


신성춘에 자주, 또, 와야겠다, 간짜장과 탕수육과 볶음밥 먹으러. 사장님께서 제발, 오래오래 장사해 주시길, 개인적인 바람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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