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 이사를 오기 전에 오랫동안 살았던 강원도의 고성과 속초지역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다. 다시 말하자면, 강원도 영동지방은 수도권이 고향인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다는 것이겠지. 가끔 그런 때가 있다, 갑자기 속초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그런 날. 강릉 바다이던, 속초 바다이던, 동해 바다가 무슨 그런 지역별 차이가 크게 있겠냐만은 각 지역별의 사소한 차이가 우리에게는 매력이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갖고 있는 맛있는 음식이 어딘가를 방문하는 큰 차이를 주는 것이지.
"우리 속초 다녀올까? 그냥 가고 싶어."
"그래? 그러면 가는 김에 오래간만에 대포항 가자."
"좋아! 가서 새우강정 먹자!"
그렇게 우리는 거의 올해 처음으로 속초로 함께 차를 내달렸다. 속초에 가면 내가 항상 들리는 곳은 바로 대포항이다. 대포항에 특별한 추억이나 꿀단지를 숨겨놓은 것은 없지만, 남들은 많이 알지 못하는 숨은 새우강정을 먹으러 꼭 들린다. 배가 고프던, 배가 부르던, 나는 먹으러 간다. 배가 고프면 현장에서 먹고 오면 그만이고, 배가 부르면 포장해서 나중에 경치 좋은 바닷가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먹으면 그만이니까.
마침 날이 좋고, 해는 서서히 산 뒤로 넘어가니 땅거미가 슬금슬금 태양의 눈치를 보며 수평선 너머에서 기어 오고 있다. 대포항에 도착하니 역시나 사람이 많지는 않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름이면 여기저기서 몰려들어온 외지 관광객들로 가득한 속초의 대표적인 항구였지만 코로나의 타격을 심하게 받았고, 그 이후에 조금씩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그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 사장님이 고맙기만 하다, 이곳 '해뜨는곳지영이네'의 새우강정은 전국 유일의 새우강정이니까.
아직 다리를 다 회복하지 못하여 목발로 걸어 다니는 이쁜 여자와 천천히 대포항의 난전거리를 걷는다, 대게집과 횟집의 사장님들이 예의 바른 호객행위를 하시고 나도 예의 바른 목례로 그들을 지나친다. 오늘의 목적지인 '해뜨는곳지영이네'는 대포항의 튀김 난전에서 항구 쪽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은 튀김집이다. 다른 튀김집처럼 작은 게, 새우, 채소 튀김등을 여러 가지 튀기는 집이지만 다른 집과 다른 점은 새우강정을 한다는 것이다. 새우강정은 대하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튀겨서 매콤달콤한 양념소스에 볶아 먹는 것인데, 속초중앙시장이나 동명항 등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다만 대포항에서는 해뜨는곳지영이네를 제외하고는 하는 집이 거의 없다. 그래서 대포항을 방문하더라도 이곳이 휴업을 하면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다른 장소로 가버릴 수밖에.
"선생님 안녕하세요, 새우강정 2만 원어치 주시는데요, 반씩 나눠서 담아주시겠어요?"
"네~ 먹고 갈 거예요?"
"아뇨, 포장할게요."
"나 다른 튀김도 사주면 안 돼?"
"그래, 먹자."
옆에서 이쁜 여자가 새우강정 외에도 다른 튀김도 먹고 싶다 하여 2만 5천 원어치의 튀김을 주문하고는 잠시 작은 공간에 들어가서 앉는다. 사장님은 냉장고에서 미리 초벌해 놓은 새우강정용 튀김을 꺼내서 튀기고, 양념을 커다란 웍에 넣어서 슬슬 덥히기 시작한다.
"여기 새우강정, 처음에는 너무 짜서 먹기 힘들었는데."
"맞아, 기억나. 너 여기서 새우강정 먹고는 집에 가서 물 엄청 마셨었지?"
우리가 해뜨는곳지영이네를 오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인 약 2,3년 전이다. 당시에도 새우강정이 있었는데, 아직 양념장은 개발 단계였는지 달달하고 매콤한 맛은 좋았으나 양념이 너무 짜서 먹기 어려운 정도였다. 하지만 이후로 방문할수록 차차 양념맛의 균형이 잡히면서 내가 사랑하는 새우강정의 맛을 뽐내니, 그 이후로는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 줄 만한 대포항의 숨은 튀김맛집이 되었다. 우리는 새우강정이 나오자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사장님, 안녕히 계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
"그래요, 고마워요."
"네, 건강하세요, 저 여기 오래 오고 싶어요."
나의 진심 어린 염원이 담긴 인사가 통했기를 바라며 (정말로 이 맛있는 새우강정이 오랫동안 존재하기를 바라니까) 우리는 새우강정을 들고는 근처 해변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속초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에는 해변이 많아서 근처 시장이나 난전에서 먹을거리를 사서는 바닷가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것, 우리가 속초, 양양을 오면 주로 즐기는 것이다.
새우강정을 한 상자 열고, 함께 구매한 다른 튀김들도 봉지를 열고서 우리는 시선은 저 멀리 잘 보이지 않는 보랏빛 바다로 향했다. 이쁜 여자와 새우강정을 한 마리씩 들고 머리부터 거칠게 이로 물었다.
바사사사삭
새우의 바삭한 머리와 몸통이 치아 사이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혓바닥 위로 감칠맛이 폭발하는 양념의 단맛과 짭짤함이 착륙한다. 감칠맛이 폭발하는 입에서는 금방 침샘의 폭포가 흐른다. 새우의 감촉이 치아에 닿는 순간부터 살짝 단단한 느낌, 불에 그을린 설탕의 표면과 같은 가벼운 단맛, 하지만 그 바삭한 식감은 입안에서 무겁게 씹힌다.
"아, 역시 지영이네 새우강정."
"조금 식었다가 먹어도 맛있네."
"여기 강정은 미지근할 때 먹어도 맛있어."
대포항의 튀김난전에서 장사를 하는 튀김집만 해도 여러 개인데, 그 와중에 우리가 해뜨는곳지영이네의 새우강정을 발굴해 내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할 만큼 달착지근하며 짭짤하고 바삭한 새우강정. 머리부터 먹던지, 몸통부터 먹던지, 꼬리부터 먹던지, 그것은 상관이 없다. 새우의 어디를 씹던지 당신의 입안에서 반짝이는 바삭함은 곧 입안의 현실이 될 테니까. 새우강정의 바삭함은 두 개의 차원을 거친다.
얇은 튀김옷이 주는 살얼음과도 같은 가벼운 바삭함, 그 밑에서 함께 튀겨진 새우가 가진 갑각질의 무겁고 더 사나운 바삭함, 이 두 가지의 가볍고 무거운 바삭함이 새우튀김의 바삭함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끼얹어진 양념은 혹시 모를 느끼함과 지루함을 밀어낸다. '닭강정' 혹은 '양념'이 끼얹어진 튀김이 천재적인 음식인 이유는 기름에 튀겼기에 바삭하지만, 느끼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매콤달콤한 맛으로 중화시킨다는 것이다. 인천이든 속초든, 닭강정을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곳 중에 어느 곳이 진짜인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누가 시작했던지 간에 매우 고마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이쁜 여자와 나는 다시 한번 집어 들어 먹는다, 먹다 보면 맛있어서 개수가 몇 개 남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마구 먹게 되는 마법.
새우강정에 입혀진 양념은 달콤함으로 부드럽게 혀에 올라오는 시작, 거기에 끈적이는 양념의 식감과 바삭한 튀김의 대조, 튀김옷과 새우의 갑각이 맞부닥치며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바삭함, 두툼하고 통통한 새우의 살로 마무리. 새우를 통째로 먹는 것에 반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우튀김 혹은 새우강정으로 시작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것이 바삭하기 때문에 새우머리를 씹는지, 다리를 씹는지, 꼬리를 씹는지, 알지도 못하는 새에 바삭함에 빠져버릴 것이다. 새우는 통째로 먹을 때 영양학적으로도 더 바람직하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해 보시길. 왜 통째로 먹는 것이 더 바람직한지는 나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 인터넷에 설명을 대신해 주셨으니 검색해 보시길.
우리는 입안에서, 어두운 밤의 별들처럼 부서지며 바삭이는 새우강정을 끝내고 약간의 산책으로 새우강정 미식을 마무리 지었다.
"이거 나머지 1팩은 대장님 갖다 줄 거지?"
"응, (피자) 대장님도 여기 강정 좋아하시거든"
"2팩 살 때부터 그럴 줄 알았어."
온 세상의 맛있는 음식들이 가능한 오랫동안 존재하기를 바라면서, 요리를 하시는 분들도 건강하시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짧은 대포항 데이트를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