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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키라쿠라멘, 강릉

극락으로 가는 돼지행 급행열차, 후루룩 출발합니다

by 김고로

한반도의 여름 장마를 맞이하여, 강릉에도 굵은 빗방울이 대차게 쏟아졌다. 어두컴컴한 구름들 사이에서,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못한 자들에게 엄벌을 내리듯이 회초리처럼 빗방울은 멈추지 않았다. 수년 전 속초에서도 똑같은 날이 있었다, 비록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라서 더욱 차가운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말이다.


우연히 '부타라멘'이라는 간판을 보았고, 아는 동생과 끼니도 빠르게 해결하고 비도 잠시 피할 겸 들어간 곳은 나에게 기름진 차슈와 뼛속까지 진한 돈코츠국물에 담긴 일식 라멘과의 첫 만남을 선사한 곳이었다. 다만 이 '부타라멘'은 'NO재팬'의 폭풍에 억울하게 휘말린 후에 다시 코로나19의 역풍에 연속으로 후드려 맞아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애정하던 단골 돈코츠라멘 집을 잃어버린 나는, 가게가 아직 열려있는지 확인차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가 수화기 너머로 '폐업했어요'라는 말을 듣고 속초로 향하던 차 안에서 거의 울어버렸다. 아아, 사랑하던 가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모습은 가게와 음식을 사랑하던 단골손님 입장에서 마음이 찢어지도록 아픈 일인 것이다. 그렇게 돈코츠라멘 집을 잃어버린 후에 나는 강릉에 있던 일식 라멘 집들을 다니며 잃어버린 돈코츠 라멘의 맛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러하지 못했고, 나에게 돈코츠라멘은 추억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다시 장맛비가 몰아치는 강릉, 교동 택지에 괜찮은 돈코츠라멘 집이 몇 달 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키라쿠라멘'으로 향했다. 주변의 친한 요식업계 사장님들로부터 좋은 평을 듣기도 했기에, '그러면 직접 확인해 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고서 나는 추억의 맛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현실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교동 택지에서도 이런저런 술집들과 밥집들이 모여있는 뒤쪽 골목에 '키라쿠라멘'이라고 한글로 적힌 작은 간판과 통유리, 나무 인테리어로, 열린 주방에 일식 바테이블을 갖춘 작은 라멘집. 나는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가구들과 혼자서도 먹기 편한 바테이블, 깔끔한 실내장식의 공기를 가득 채우는 뜨거운 돼지육수의 냄새. 머리에 두건을 질끈 맨 '장인정신'을 갖춘 주방장과 돼지육수의 냄새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일식 주점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가게의 모습이었다.


나의 글을 오래전부터 읽어온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바테이블을 선호한다. 열린 주방을 한눈에 보면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가끔 요리하시는 분이나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면 소소하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에도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바테이블의 구석, 돼지육수가 끓여지는 커다란 국솥 근처에 앉았다. 곧 차가운 곡차를 갖고 홀직원분이 다가오신다.


"선생님, 돈코츠라멘 하나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이 가게가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 모르니 대표적이고 기본적인 메뉴를 주문한다. 주문을 받고서 곧 면을 삶고 차슈를 그을리시는 주방에게 계신 사장님,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온다. 바테이블에 있는 전자동 휴대용 참깨분쇄기가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손으로 갈아서 돈코츠라멘에 넣어먹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이런 것도 쓰는구나. 다시 주방으로 눈을 돌리니 내 라멘이 금방 완성이 되어 나에게 전달된다.


"돈코츠 준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고명들을 잡아서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살펴본다. 맛달걀, 차슈, 파, 목이버섯에 숙주나물. 과하지 않게 필요한 고명들만 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국물을 한 숟갈 맛본다. 국물에는 돈코츠 육수의 정체성을 증명하듯 돼지기름이 겨울날 함박눈처럼 내리고 있다. 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후루룩


뼛속까지 진하고 고소하며 기름진 맛,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돼지맛이 잔여감이 풍부하다. 부산에 가면 자주 먹는 돼지국밥의 그 진한 돼지육수가 곧바로 떠올랐다. 다시 한번 육수를 마셔본다, 10시간 넘게 직접 돼지뼈를 고아서 끓여낸다는 그 맛은 거짓이 아닌 맛이다, 진하고 고소하며 묵직하며 오래가는 돼지 육수의 맛이 내 혀를 지배하고 있다.



[극락으로 가는 돼지행 열차, 곧 출발합니다]


빠아아아앙


머릿속에서는 내 혀에서부터 출발한 돈코츠 육수가 이미 오장육부로 내려가서 따끈하니 몸을 덥히고, 나는 속초에서 돈코츠라멘을 먹던 추억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다시 찾았다, 내가 사랑하던 돈코츠라멘, 돼지국밥 맛을 연상케 하는 돼지육수.'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은 심정과 같은 나의 마음,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으리오, 돼지냄새로 가득한 감동의 물결이 벅차오르며 내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맺힌다. 이 맛이다, 이 맛이야, 돼지국밥을 생각나게 하는 진한 돈코츠의 맛. 그리고 이제, 차슈를 맛볼 차례이다. 돼지 목살을 차슈소스로 졸여낸 돈코츠라멘의 빠질 수 없는 주연. 젓가락으로 들어보니 코를 간지럽히는 간장의 달달함이 올라온다. 찰랑이는 투명한 지방이 나를 더 흥분시킨다. 입으로 씹어보면 더 맛있을 것이다.


'제발, 제발, 맛있어라.'



으적으적


입안에 처음 들어온 차슈가 놀라지 않게 빠르고 조용하게 씹어본다. 얇게 저며진 목살 차슈는 달콤하며 짭짤하고 고소하다, 은근한 감칠맛이 솟아오른다. 육질이 쫄깃하게 살아있는 살코기 부분과 말캉거리는 지방 부분이 잘 섞인 목살이다, 내가 옛날에 즐기던 차슈는 오겹살이었기에, 그에 비하면 입안에 가득 차는 기름의 맛은 아니지만, 목살 차슈는 목살 차슈 나름의 식감과 지루하지 않은 돼지기름 맛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거기에 직화로 그을려진 고기의 맛은 지글거리는 보너스, 아 합격이다. 드디어 찾았다, 내가 사랑하는 돈코츠의 맛. 그 기쁨을 표현해야 한다.


"사장님, 여기 차슈추가 부탁드립니다."


"네~ 차슈 추가요~"



이렇게 맛있는 차슈를 두 장만 먹기에는 상당히 아쉬운 것이다. 추가해서 더 먹어야겠다. 이제 나를 기다리는 것은 돈코츠 라멘의 돼지 축제다, 잃어버린 맛을 몇 년 만에 찾았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돼지의 맛을 보았으니 그다음은 돈코츠 라멘 속에 들어있는 식감의 축제다. 야들야들하며 찰지게 들어가는 일식 라멘 면발에 아삭아삭한 식감을 담당하는 숙주나물, 거기에 꼬들꼬들한 식감과 입안과 귓속으로 전달되는 식감의 소리를 담당하는 채썰린 목이버섯. 돈코츠라멘으로 돼지의 평화를 얻은 필자는 더 고소한 맛을 위해서 전자동 휴대용 참깨분쇄기를 들어 돈코츠 육수에 견과류의 고소함을 추가한다. 참깨의 향이 돼지의 고소함에 또 다른 고소한 향기를 더하며 나의 코를 더 즐겁게 한다.



라멘의 면을 고명들과 함께 잡아 올리고 숟가락에 육수를 촉촉하게 떠서 함께 퍼먹는다, 일반적인 라면을 먹을 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돈코츠 라멘을 먹을 때에는 꼭 이렇게 먹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돈코츠 라멘의 육수가 맛이 좋으니 면과 고명을 꼭 적셔먹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먹다 보니 어느덧 돈코츠라멘의 국물만 남았다. 맛있는 돈코츠 라멘을 먹을 때, 진정 배가 부르지 않는 한, 국물을 남기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기에 라면 사발을 번쩍 양손으로 들어 육수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바닥이 깨끗하도록 들이켜 마신다.


"잘 먹었습니다."


양손으로 합장을 하며 주방장과 음식에 대한 예를 표하며 나는 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마무리할 때에도 여전히 바깥에 비가 세차게 내린다.


"밖에 비가 많이 오니까, 가게에 더 있다 가셔도 되셔요."


친절하신 홀에 계신 직원분께서 배려를 가득 담아 말을 건네신다. 하지만 나는 출근해야 한다.


"하하, 괜찮습니다, 출근해야 해서요."


"맛은 어떠셨어요?"


맛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옛날에 속초에 부타라멘이라고 돈코츠 라멘이 맛있어서 제가 단골이었는데요, "


"그러셨구나."


"거기가 정말 맛있었는데 노재팬과 코로나 역풍을 맞고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참 아쉬웠는데, "


"아, 그랬군요."


나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깊은 얘기가 나와 당황한 홀 직원분, 그리고 나를 보며 씨익 미소 짓는 주방의 사장님.


"그런데 오늘 여기 와서 그 돈코츠 라멘의 맛을 찾았네요."


나는 추억과 기쁨, 그 희비가 교차하는 아련한 눈빛으로 돈코츠 라멘 육수가 담겨있는 주방의 솥을 바라보았다. 간단하게 맛있었다는 말만 하면 되는데, 나는 뭐하러 그렇게 사라진 옛 가게까지 언급하면서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일까. 나도 참 주책이다.


"아무튼, 또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뜨끈한 맛과 추억, 기쁨을 혀와 위장에 담고 다시 차가운 빗속의 도시로 내달렸다. 진한 돼지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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