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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디델리, 강릉

누가 먹어도 맛있는, 입에 착 감기는 라볶이, 그게 바로 나다

by 김고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분식집들의 대표메뉴, 누가 뭐라 해도 '떡볶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가릴 것 없이 꼬지를 하나씩 들고 후후 불어먹는 어묵이나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찰지게 잘 찐 꽈리를 들고 숭덩숭덩 썰어 내놓는 순대와 돼지부속들, 거기에 바삭하고 노릇하게 잘 튀겨진 튀김과 핫도그 등도 있겠지만 먼 옛날 조선의 궁중 주방에서부터 간장, 기름, 고추장으로 변해가며 명맥을 이어온 떡볶이야말로 한국적인 분식 중의 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나는 떡볶이를 안 좋아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떡볶이를 안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분식집에서 판매하는 일반적인 떡볶이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내가 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떡볶이는 청주 근처 오창신도시의 '브라보분식'의 마늘맛이 가득한 즉석떡볶이가 유일하다. 그 외에 강릉의 '여고시절'에서 판매하는 카레향떡볶이도 괜찮지만 자주 찾아서 먹을 만큼의 호감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집 근처의 이런저런 식당들을 검색하는 나를 보던 이쁜 여자가 한마디 던진다.


"강릉에 오래된 분식집들이 몇 개 있는데 가볼래?"


"엥? 어딘데?"


"시내에 몇 군데 있어, 강릉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잘 아는 분식집들이야."


"그래? 뭐 하는 곳인데?"


"한 곳은 라볶이를 잘하고, 그 바로 앞에 있는 집은 쫄볶이를 잘해. 둘 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집이야. 네가 떡볶이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너한테 굳이 알려주지는 않았지."


"호오.... 그런 집들이 있었구나."


나의 분식 취향이 떡볶이를 피해 가는 바람에 방문하지 않았던 집들을 이제는 방문해 볼 때가 아닌가 싶었다. 내가 먹어보지 않고, 남들의 경험글이나 말만 듣고 어느 곳의 음식을 판단하기보다는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사 먹어봐야 이러쿵저러쿵 말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법이다. 먹어보지도 않고 맛이 있느니 없느니, 말을 하는 것은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90년대 초반에 창업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맛과 저력이 있는 집이라는 의미, 취향에 관계없이 꼭 한번 먹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그러면 일단 여기, 디델리부터 가볼까?"


이쁜 여자는 잠시 뜸을 들인다.


"음.. 여기는 네가 안 좋아할 맛이야."


"왜? 어떻게 알아?"


"라볶이인데, 소스에 케첩이 들어가."


"케첩이 들어가는 떡볶이라고?"


케첩을 넣은 떡볶이라, 어떤 맛이 표현될지 대충 짐작은 가는 떡볶이. 대략 달착지근하면서 새콤한 토마토맛이 나는 적당한 맛의 소스이려나. 케첩이 들어간 떡볶이소스라고 하니 궁금증만 더 커진다.


"거기에 떡이 아니라 라볶이이고, 수제비를 넣어줘."


케첩을 넣은 떡볶이 소스에, 라면, 거기에 수제비. 이것은 어느 나라, 어느 동네의 재미있는 떡볶이 조합인가. 그래, 떡볶이는 이런저런 재료들을 다 소스 안에 풍덩풍덩 던져서 끓여 먹을 수 있는 재미있고 간편하며 단순하며 어려운(?) 음식이지만 대략 이쁜 여자에게 재료 설명을 듣고 나니 직접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가하고 더운 강릉의 여름날, 단오가 한창이던 어느 날에 나는 이쁜 여자와 강릉 시내로 향했다.


오래된 분식집인 디델리가 위치한 곳은, 지금은 상권이 택지와 유천으로 많이 옮겨가기는 했지만, 이전에는 강릉시민들의 '뜨거운 장소'이자 만남의 광장이었던 대학로 가장자리 좁은 골목이다. 디델리가 골목의 한편, 그리고 그 맞은편에 바로 쫄볶이를 주력으로 하는 '옛빙그레'라는 분식집이 있다. '옛빙그레'는 나의 다음 미식탐방 목적지이기에 이렇게 오래된 분식집이 골목에 다정하게 마주 보고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디델리에 도착하니 이미 매장은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 몇 팀, 그리고 주변에서 일을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강릉 현지인 몇 팀으로 테이블은 한, 두 자리 만을 남기고 가득하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깔끔하고 다채로운 김밥천국 형식이랄까. 주황, 초록, 파랑, 빨강, 노란색으로 가게 내부가 꾸며져 있었고 외벽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바깥에서부터 안쪽 주방이 훤히 보이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의자들이 분리가 되어있지 않고 4명이 한꺼번에 앉게 되어있는 의자들도 있어서 사람이 많을 때에는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등이 부딪치지 않게 눈치를 보며 허리를 꼿꼿하고 건강하게 세워가며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델리는 수도권과 전국에 체인점이 있는데 강릉이 본점이다, 강릉 본점 매장은 10 테이블 정도로 크지 않은 편이고 주방에서 사장님 혼자 일하시는 규모다.


"여기 다른 지점들에서 맛을 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강릉 본점 외에 다른 지점들은 사장님들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가 보네."


"그래? 본점에서 노하우를 알려줘도 사장님들 각자 자신들만의 맛을 첨가하시는 건가."


우리는 '뭐 해드릴까?'라고 물으시는 사장님께 '라볶이 하나에 참치김밥 하나 주세요.'라고 답해드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보니 일반 라볶이보다는 치즈를 얹어서 구워내는 그라탕라볶이에 김밥을 시켜서 먹는 모습이었지만 우리는 치즈가 없는 원래의 맛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일반 라볶이를 주문했다. 한창 사람이 몰리는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배달, 포장, 매장 주문이 밀려있어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음식이 식탁으로 나왔다. 소스가 국물처럼 넉넉한 국물떡볶이와 같은 형태인데 부드럽게 달달한 냄새와 새콤한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옆에 가지런히 줄을 맞춰 앉은 참치김밥은 겉으로만 봐도 참치와 마요네즈가 듬뿍보다 더 듬뿍 들어서 군침이 넘어가는 모습. 진정 참치김밥은 이래야 한다는, 자존감이 넘치는 참치김밥의 모습이다.



"기대되는군, 먹어볼까."


한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참치김밥부터 들어서 씹는다. 마요네즈, 참치, 단무지, 게맛살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김밥이지만 참치와 마요네즈가 아낌없이 들어가 있으니 부드럽고 고소한 마요네즈와 사근사근 씹히는 참치가 마음에 든다.



먼 옛날 마요네즈를 개발한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소스가 동방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김밥 재료로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이 얘기만 듣고는 '농~! 쟈메! (안됩니다, 절대!)'라고 외치겠지만 디델리의 참치김밥을 한입 먹고 나서는 '트레비앙!(훌륭합니다!)'을 외치며 태세를 전환할 맛이다. 사실 김밥전문점에서 만드는 참치김밥보다 더 맛있는 참치김밥이었다.


"그래, 참치김밥은 참치와 마요네즈를 김밥이 터지도록 넣어줘야 맛있지."



입안에 참치와 마요네즈의 고소함과 지방 가득한 맛으로 시작한 식사, 기대하지 않은 음식에서 좋은 맛을 느꼈기 때문에 라볶이의 맛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며 라볶이를 덜어 내 그릇에 담는다. 소스에서 찰랑거리는 라면을 입에 후루룩 넣는다.


"오?!"


이야, 이건 무슨 맛인가. 이게 정녕 떡볶이 소스란 말인가? 달착지근한 맛 속에서 불쑥 입안을 스치고 지나가는 상큼한 맛. 생각도 못했는데, 믿기지 않는 마음에 라볶이의 국물을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몇 번을 먹어본다. 이게 떡볶이 소스의 맛이라니, 믿을 수 없다.



후루루룩


처음으로 혀와 입안에 닿는 맛은 달콤한 맛이다, 하지만 설탕이나 뉴슈가등을 잔뜩 때려 넣어서 만든 그런 강력한 단맛이 아니다. 물론 설탕을 안 넣지는 않았겠지만, 설탕 외에도 고추장, 케첩, 물엿, 과일 등을 부드럽고 달착지근하다고 느낄 입에 착착 감기는 감칠맛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분 좋은 단맛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다, 심심하고 온순한 단맛으로 소스의 맛이 시작하는데, 그렇게 달콤하다고 생각할 때쯤 케첩의 맛이라고 생각되는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새콤한 토마토의 맛과 소스의 달콤한 맛이 균형을 잡은 부드러운 마무리. 달콤함과 새콤함이 이루어지니 감칠맛이 끝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숟가락을 들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진 소스다. 거기에 마늘과 매콤함으로 한국인의 마무리를 더한다.



"여기 맛있다, 진작 와볼걸 그랬어."


"진짜? 의외네."


"응, 여기는 맛있네, 나는 앞으로도 종종 올 거야."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새콤하니 모든 재료들이 이 소스와 잘 맞는다. 한입 크기로 채썰린 어묵도 후루룩 넘어가고, 엄지손가락의 첫마디와 같은 크기로 들어간 수제비도 어울린다. 수제비는 쫄깃하니 씹으면 씹을수록 떡볶이 소스가 입안으로 스며들고 토마토의 새콤함과 마무리는 매콤함과 마늘의 맛으로, 질리지 않는 맛이다. 이러니까 수도권과 전국에 체인점이 그렇게 있지, 이 맛이야말로 비법이라고 할 수 있는 소스다.


"이 소스에는 무슨 재료를 넣어도 맛있을 거야. 여기에 떡볶이뷔페에 있는 재료들 다 넣어도 맛있을 거야, 분명."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떡볶이를 먹어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꼭 디델리가 아니더라도 떡볶이 소스에 케첩을 섞은 떡볶이 소스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겠지, 집에서도 떡볶이를 만들면 아이들의 입맛을 위해서 케첩을 잘 섞지 않는가. 하지만 맛있는 음식에서는 균형이 중요하다, 디델리의 소스는 단맛, 신맛 그리고 매운맛의 균형을 잘 맞추고 그 균형을 통해서 감칠맛이라는 매력을 끌어낸다.


감칠맛으로 범벅이 된 얇은 떡국떡, 라면, 수제비와 어묵으로 이루어진 디델리의 작은 라볶이는 입안에서 커다란 폭발을 이룬다. 그 존재만으로도 '이런 맛을 선사하는 라볶이, 그게 바로 나다'하고 외치는 맛이다.



그리고 우리는 커다란 참치김밥 한 줄과 라볶이 한 그릇을 국물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처음 만난 디델리의 라볶이와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려주는 증거인 것이다.


"다음에 와서는 치즈그라탱 라볶이 먹어보자."


"그래, 치즈랑 섞이면 무슨 맛이려나."


"참치김밥은 또 먹어야겠어."


사람의 취향은 대체로 견고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가끔은 그 취향을 뚫고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취향을 내려놓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나에게는 맛있는 떡볶이가 그렇다. 디델리, 또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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