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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초시막국수, 강릉

딸기밭 옆 막국수, 막 달콤한 그 막국수.

by 김고로

내가 실행하는 식도락 여행은 항상 계획이 있는 여행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하루에 진행하는 단순한 식도락 나들이도 철저한 계획에 의해서 진행이 된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식도락을 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계획이 틀어졌을 때 발생하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변수로 인해 발생하는 식도락 계획의 변화는 가끔 더 큰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어.... 주인아주머니가 아파서 무기한 휴업하신다는데?"


"오... 이런... 굳이 차를 빌려서 주문진을 왔는데."


이쁜 여자와 나는 폭염이 한창이었던 어느 여름날 평일의 낮, 주문진 중앙시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작은 다리의 지명을 뜻하는 물고기 모양의 석상을 지나서 주문진 중앙시장의 도입부를 지나서 우리가 좋아하는 장칼국수 집인 '골목칼국수'를 가기 위해서 시장의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간 우리는 '주인장이 아파서 무기한 휴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큼지막하게 가게 벽면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허탈감에 가슴이 쿵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그저 이 휴업이 우리가 좋아하는 장칼국수집의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어디가?"


"괜찮아, 여기가 닫으면 가려고 했던 곳이 있어."


계획을 세우며 식도락을 다니는 사람의 장점은 언제나 두 번째 계획을 세워서 다닌다는 것이다.


'흐음... 이쁜 여자가 좋아하는 가자미식해가 있는 신리면옥을 갈까...? 아니면....'


나는 가자미식해를 올려주는 회막국수를 먹으러 갈지, 아니면 다른 곳을 생각해 볼지 잠시 고민했다.


'아니야... 이쁜 여자는 좋아하겠지만 나는 그리 즐겁지 않을 거야. 하지만 시원한 국수를 먹고 싶은데.'


나는 주문진의 어느 공영주차장에 세워둔 렌터카를 가지러 가며 잠시 다음 행선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중적인 맛을 가졌지만 맛있는 육수가 다른 강릉의 막국수 집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곳, 논밭 한가운데의 막국수 집, 초시막국수. 그래 연곡의 논밭으로 가자.


"우리 초시막국수 가자."


"초시막국수?"


이쁜 여자는 '초시막국수'라는 막국수집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렇다, 외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강릉 현지인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이 서로 알음알음 아는 대중적이지만 훌륭한 육수를 지닌 막국수집, 초시막국수.


"응, 연곡에 있는데, 맛 좋은 막국수 집이 논밭 한가운데에 있어."


"오.. 그래? 나는 처음 들어봐."


"아마, 그럴 거야. 강릉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은 잘 몰라. 나도 이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차를 타고서 갔었어. 하지만 맛있었던 기억이 있거든."


나는 렌터카를 몰고서 주문진에서 강릉으로 향하는 방향의 도로를 타고 연곡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연곡면의 논밭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그곳이 초시막국수로 가는 길목이다. 커다랗게 간판을 붙여둔 딸기밭을 지나가야 한다, 혹시나 초시막국수로의 초행길이신 분들이 있다면 꼭 지도 어플이나 길 안내 어플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추천한다.


푸르른 녹색의 볏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논밭을 가로질러 'ㅇㅇ가든'이라는 간판을 갖고서 고깃집을 할 것 같은 모습의 큰 식당 '초시막국수'에 도달했다. 식당의 주변은 다 논밭이고, 초시막국수에서 가꾸는 과수원이 손님들을 맞이하며 넓은 자갈밭 마당에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초시막국수 식당 외부에 식탁들을 설치해 놓은 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내부에 들어가서 조금 더 시원하게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여기는 젊은 사람들이나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없네?"


외부 식탁에 함께 앉자, 이쁜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한다.


"응, 여기는 강릉 사람들끼리 잘 아는 집이고 아직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분들끼리 잘 오는 집이라서 그래. 거기다가 위치가 연곡면의 논밭 한가운데에 있어서 차 없으면 오기 어려운 점도 있고."


우리는 막국수를 각자 주문하고는 가게에서 가져다준 육수 주전자에서 육수를 컵에 따라 마셨다.


"오?!"


우리는 서로 눈이 동그랗게 되며 바라보았다. 가벼운 질감의 육수에서는 진한 고기의 맛과 상큼하며 달달한 과일의 맛이 동시에 혀를 적셨다. 과일과 채소로 맛을 낸 육수는 달콤하며 가볍다, 하지만 진함과 무게감을 더하기 위해서 쇠고기 육수를 섞는 것이 영동지방에서는 동치미와 함께 일반적으로 내놓는 육수이다.


"맛이 좋지? 고기육수의 진하고 고소한 맛과 과일의 달콤함과 상큼함. 대중적인 맛이야, 그런데 식상하지 않고 인공감미료의 맛도 없는 깔끔함."


"맞아, 여기 육수 맛있다."


그렇게 육수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막국수가 금방 우리의 식탁에 도착했다. 굵직한 조각으로 갈려져 있는 조각들이 한눈에 보이는 거친 양념장, 입안에서 사각거릴 것 같은 붉은 잼 혹은 렐리쉬의 질감과 표면을 가진 것이 밝은 회색의 막국수 면 위에 올려져 나왔다. 막국수의 색깔을 보아하니 껍질이 조금씩 섞여있고 메밀가루 외에 밀가루가 함께 더 들어간 듯했다.


"육수를 맛보고 나니까, 막국수의 맛이 기대되네."


초시막국수의 비빔막국수, 여기에 육수를 부어 취향것 먹는다


우리는 김가루와 깨, 양념장을 막국수에 슥슥 비비면서 육수를 추가로 조금 더 부어서 자작한 냉육수로 물막국수도, 비빔막국수도 없던 옛 시절의 막국수로 제조해서 먹을 준비를 했다. 일반적으로는 육수에 양념장, 설탕과 식초, 겨자를 조금씩 더 넣어서 개인적인 기호를 맞춰서 막국수를 먹는다. 하지만 나와 이쁜 여자는 양념장에 육수만을 조금 더 부어서 막국수를 말았다.


후루루루룩


탱글거리며 쫄깃한, 매끈거리는 메밀면의 질감이 입술을 치면서 입안으로 들어온다. 걸쭉하게 만들어놓은 양념장이 메밀면에 진하게 묻어 함께 빨려 들어왔다. 혀와 잇몸을 간지럽히는, 고슬 거리는 굵은 가루에서는 자연스러운 단맛이 뿜어져 나온다. 복합적인 과일들이 함께 만나고 갈려서 상큼하고 가벼운 단맛을 내 입안에 더운 날의 소나기처럼 뿌렸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서 들어오는 묵직하고 구수한 소고기 육수의 맛이 비 온 뒤의 갠 하늘의 햇살처럼 혀를 쬐는 맛.


양념장의 재료들은 굵은 편이다


"와아..."


"으음...."


나는 이쁜 여자에게 한 번의 면치기 이후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도 나의 긍정적인 표현을, 긍정적인 끄덕임으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다. 젓가락을 전투적으로 움직인다. 메밀면만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메밀면에 굵은 양념장을 잔뜩 묻혀서 입안에 쏟아 넣듯이 먹는다.


과즙을 잔뜩 머금은 배, 사과, 복숭아 등을 입안에 먹으면서 고기육수를 함께 마시는 기분이다. 그리고 쫄깃하고 찰랑거리는 메밀면은 사각거리고 간질거리는 식감에 또 다른 식감을 더해준다. 마늘을 포함한 한국적인 향신료들도 빠짐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여차 과하게 달거나 느끼해질 수도 있는 양념맛의 고삐를 당겨 적절한 균형을 맞춘다.



"너는 벌써 막국수가 거의 다 사라졌네?"


"그러게."


"막국수를 먹는 게 아니고 마셨구나."


이쁜 여자가 막국수를 반절 정도 먹을 무렵에 이미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나의 막국수 그릇을 보며 웃는다. 그녀는 일반을, 나는 곱빼기를 시켰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더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아니면 더 잘 먹어서 그랬는지, 나는 이쁜 여자의 몫을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막국수가 금방 사라졌다. 이것은 내가 빨리 먹었기 때문이 아니요, 막국수 곱빼기의 양이 적은 때문도 아니라, 초시막국수의 막국수가 맛있기 때문이다.


막국수를 다 먹고 나서도 나와 이쁜 여자는 아쉬운 마음에 주전자 속에 아직 잠들어있던 육수를 따라서 또 마셨다. 양념과 육수가 질리지 않는 단맛에 감칠맛을 품고 있어서 더 그랬나 보다. 초시막국수는 나를 반하게 할 정도로 깊은 맛에, 대중들을 품을 수 있는 맛이기 때문에 그 맛을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여기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글쎄, 일단은 차가 있는 날이어야 하지 않을까."


"금방 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버스라도 타고 올까? 여기 근처에 정류장이 있기는 한데."


"음... 버스 타고 와서 먹고 싶을 정도이기는 한데, 어려운 갈등이야."


초시막국수, 금방 또 갈 수 있게 되기를 빌어보는 이쁜 여자와 콤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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