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마음을 왜 나한테 물어?
살다 보면 아주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 때가 많다. 특히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문제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과 상의하고 싶고 조언을 얻고 싶다. 틀린 답을 고르고 싶지 않고 정답으로 가까워지고 싶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과연 다수결의 원칙으로 고른 정답이 정말 맞는 걸까?
예를 들어 아기 이유식이 뭐가 좋은지 혹은 어디 학원이 좋은지, 몇 살에 무엇을 시키는 것이 좋은지와 같은 정보성적인 고민은 그걸 잘 아는 지인들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무래도 먼저 그 길을 가보고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좋은 답을 해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내면의 개인적인 질문들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따르는 것이 맞다. 그들의 말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내 인생에 사공을 많이 둘수록 산으로 갈 확률은 높아진다.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때부터 모든 인생 코스와 직업을 부모가 결정해 줄 경우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 결정해 주길 바란다고 한다. 결정장애는 단순히 오늘 점심에 짜장을 먹을까 , 짬뽕을 먹을까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아주 작은 소소한 문제부터 크게는 결혼문제까지 그 범위는 넓다. 하지만 사실 모든 문제의 답은 내 마음이 잘 알고 있으면서 틀리기 싫으니까, 시행착오 하기 싫으니까 남한테 자꾸 묻게 된다. 그런데 3명이 그걸 들었다면 분명 3명 다 다른 답을 할 것이고, 그 사이에서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훗날 그들에게 술자리에서의 안줏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틀려도 괜찮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틀리면 그 대처도 내가 할 수 있지만 남의 말을 듣고 틀린 선택지는 회복할 수 없는 오답이 된다. 후회만 남기게 될 뿐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다.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
주인공이 이렇게 물어본다.
그럼 친구는 대답한다.
"네 마음을 왜 나한테 물어? "
친구의 말에 정답이 있다. 내 마음을 왜 다른 사람한테 묻는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고, 누군가가 좋고, 분명 그에 대한 답은 내가 다 알고 있는데 그걸 왜 다른 사람한테 가서 묻는 것일까? 잘 모르겠어서가 아니라 외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내 인생에 대한 결정의 이유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 오직 내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의견만이 들어가야 한다. 귀를 닫고 충고를 듣지 말라는 이유는 아니지만 결국 내가 조용히 내 마음을 읽어내야 한다. 정 모르겠으면 결정을 유예하는 게 낫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이 흔들린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타인의 말에 더 민감하고 세상의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결정을 할 때가 많다. 내 마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때가 많다. 세상 사는데 조심성은 있어야 하지만 두려움은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다. 신중함과 우유부단함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엄마, 아빠, 친구, 선생님, 등등등 내 인생에 사공을 많이 둘수록 배는 산으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 내가 몰고 떠난 배는 망망대해로 향하더라도 갈 길과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지만 남이 떠밀려 보낸 배는 돌아오는 길도, 가야 하는 길도 모른다. 망망대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누가 그곳으로 보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