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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버린 삶들

by 감성기복이

쉬는 날이 주어졌다. 무얼 할지 몰라 멀뚱멀뚱 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가 해오던 것 밖에는 할게 보이지 않는다. 밀린 집안일과 영어 공부, 그리고 운동, 카페 가기. 그 안에서만 생가각하게 된다. 여행을 생각해 봤지만 직장일 때문에 밀려있는 개인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은 여행 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쉬는 날 집에 있다 보면 쓸데없이 생각만 많아진다.






우리는 무엇을 미루고 있는 걸까?

나이가 먹을수록 책임감은 늘어나고 해야 할 일들은 너무 많다. 거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욕심을 부리게 되면 해야 할 일들은 더 많아진다. 그렇다 보니 요즘 들어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크게는 내 인생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소의 일들을 우선적으로 배치한다. 그런데 그러면 항상 여가나 쉬는 건 저 멀리 후순위로 빠진다. 매번 새로운 일들은 생기고 매번 휴식은 뒤로 밀리게 된다.


마시멜로우 실험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위해 지금 잠깐의 고통은 참고 인내한다는 것이다. 끈기를 강조하고자 말을 할 때 한 번쯤은 이 실험을 예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들 이렇게 살아간다. 매일 새벽같이 일터로 나가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들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마시멜로우의 고통은 끝이 있는 걸까? 일정 기간 참고 인내하면 미래에 그것을 상쇄할 만한 큰 보상이 올까? 애석하지만 산다는 건 마시멜로우 실험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어떻게 매번 열심히 살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즐겨보는 편이다. 한 사연자가 이렇게 말했다.

" 스님 남들은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데 저는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스님이 대답한다.

"그 사람도 인생 전체를 다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당신이 그 사람 인생 중 한 부분만 보고 그렇게 판단하는 거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맨날 죽을 만큼 힘을 쓰고 살아요. 죽을 만큼 노력한다는 것은 어느 한 시기 잠깐이야.."


어리석지만 나는 매번 인생을 수능공부하는 수험생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치열하고 촘촘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을 만큼 열심히 살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밀려버린 삶에 대하여

여행을 갈 용기가 없어 못 가는 대신 영행 유튜브를 많이 본다. '저렇게 자유롭게 살면서 돈도 벌 수 있구나.. 세상 참 좋아졌다..' 매번 이런 생각을 하며 보는 것 같다. 나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아직은 빠릿빠릿한 내 이성이 발목을 잡는다. 내 몽상을 빠르게 현실세계로 끌어내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꼰대인 나는 저렇게 버는 돈은 돈이 아니고 땀을 흘리며 버는 돈이 진짜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 사고방식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땅을 치며 후회하는 중이다. 요즘은 똑똑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이 돈을 더 잘 버는 시대다. 우직하게 열심히는 너무나 고리타분한 말이 되었다.


사람이 일하려고 태어난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꼭 일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일에 매달린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무엇을 미뤘을까? 밀려버린 삶들에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인간은 고통을 참기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유를 미루고, 행복을 미룬다. 한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휴식 없이 일만 하다가 나중에 병원가서 누워서 남은 생을 보내시게 될 겁니다" 내 손으로 선택하지 못한 휴식이 나중에는 강제적으로 나에게 부여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수동적으로 내 인생에 부여된 것은 행복이 아닌 불행에 가깝다. 휴식 시간이 주어져도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밀려버린 삶'들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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