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책이 좋아졌다. 혼자 책하고 씨름하는 것이 훨씬 좋아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싫어졌다. 모든 인관관계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그것이 끝나는 것이 보일 때쯤에는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 사람에게 쏟았던 시간과 감정들과 그리고 특히 마지막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아주 썩 꽤나 나쁘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가져갈 추억보다는 무의미함이 밀려온다. '그 시간에 나에게 좀 더 투자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나고 보니 그냥 그들과 처지가 같아서 친하게 지내는 거였더라고요
어느 곳에서 읽었던 댓글인데 너무 공감이 되었다. 저 한 문장으로 그 많던 관계들이 허무했던 이유가 모두 정리되었다. 예를들어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누구 한 명이 일터를 떠나게 되면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만나더라도 전에 만났던 느낌은 아니다. 그나마 있던 그와 나의 직장이라는 공감대는 사라졌고 그래서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직장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던 거라 개인의 일상적인 대화나 개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어색하다. 그리고 굳이 그걸 위해 만나게 되지도 않는다. 서로 안부를 묻기 위해 얼굴을 볼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인연이란 끝맺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의 그 소원해지는 감정을 느끼고 무관심해지는 것을 느낄 때 끝은 절대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서로가 상대를 배려해 끝까지 아름다운 관계가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사람은 친해지다 보면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던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그냥 끝까지 가면을 쓰면 안 되는 걸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오래 알고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 사람이 변했나? '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한결같은 사람은 드물다. 물론 내가 변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편해졌다는 이유인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가벼움과 무례함이 묻어날 때 그간 친했던 세월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의 불쾌감이 밀려온다. '이런 사람이 아닐 텐데'라는 믿음보다 '결국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더 커질 때 그 관계의 유효기간은 끝난다. 남남이다 보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는 건 너무나 쉽다.
만남을 거절하는 중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인간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에 회의감이 들었다. 사람 만나는 게 즐거운 날들도 분명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나도 배우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릴수록 시간은 더 소중하다. 한순간 일시적으로 끝날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감정을 소모한다는 것은 지나고 보면 낭비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 그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 혼자 있을 때도 자연스레 만남 이후 이런 고민의 시간을 어느 정도 거치게 된다. 감정을 쓴 만큼 추스를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지난 시간에 대해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바로 쓸데없는 사람과 관계에 감정을 쓴 것이다. 그 감정들로 스스로를 갉아먹었던 적이 많다. 그리고 그 감정은 2차적인 부작용까지 낸다. 부정적 감정들에 의해 루틴이 망가지고 계획이 엉망이 되고 정작 내가 정말 해야 될 일에는 쓸 에너지가 없어진다. 기분 나쁘니 그 기분을 푸는데 또 에너지가 낭비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불안한 삶
타인에 의해 일희일비되는 삶은 불안하다. 그런 불안한 삶을 살기를 윈하지 않는다. 때로는 핸드폰이 울리는 것도 싫어 꺼놓은 적이 있다. 연락이란 때때로 반갑지만 아닌 때에는 참으로 귀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누구이냐는 것이다.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타인과의 관계도 잘 유지되는 것이다. 만나서 고민거리만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내 마음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 여유는 내 생활과 감정이 안정적으로 컨트롤될 때 나온다. 그러니 그것이 첫 번째다.
원래부터 감정 낭비를 싫어했지만 요즘은 더더욱 그렇다. 지혜가 생긴 만큼 감정을 분별해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같은 감정들이 되풀이되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해소해야 할 감정이 있다면 혼자 예술 활동이나 다른 취미 활동을 하며 푼다. 왜냐면 그 활동들은 그 시간이 끝난 후에도 잔해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의 건더기를 만들지 않는다. 옛날에는 이기적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한다고들 말한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 수 있다. 타인의 안녕과 안위를 살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안녕해야 한다. 봉사 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다 살만한 사람들이다. 나누어 줄거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마음이든 돈이든 나누어 줄 수 있다. 나도 언젠가부터 나누어줄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상태로는 나 먹고살기도 힘들어 불가능했다. 결국 내가 잘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씽이라는 책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찾고 그것을 풀면 다른 문제들은 도미노처럼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각자의 원씽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그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인다고 한다. 그건 어쩌면 그 가장 중요한 단 하나가 꼬여버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일은 순리라는 것이 있다. 가장 맨 앞의 도미노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두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설사 다음 도미노를 건드린다고 해도 그 앞의 도미노는 여전히 서서 그 자리를 버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