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정함도 지능이다

by 감성기복이



극 T 입니다만...

나는 공감능력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인생에 그리 큰 관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는 딱 두 가지 경우이다. 억울할 때, 그리고 화가 아주 많이 났을 때. 슬퍼서 눈물을 흘린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감성적 공감능력은 없어도 이성적 공감능력은 있다. 나 스스로 철칙을 가지고 있다. 타인에게 절대 따뜻할 것,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을 것. 내가 도덕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이상향이다. 남에게 화살을 쏘면 그 화살은 곧 나를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화가 많은 사람이라 순간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무척이나 차가워질 때가 있다.




다정함이 지능인 이유

사람은 진화해 오면서 지능도 발달했다. 다정함이 지능이라고 하는 생물 할 적 근거가 있다. 다정한 사람일수록 생존에서 유리할 확률이 더 컸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존과 직결된 것이 예민함과 날카로움이다. 상대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남들보다 좀 더 예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하며 민첩하게 행동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함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그것이 꼭 도망치는 몸동작뿐이겠는가. 상대의 감정에 대한 반응 역시 같은 것이다.


다정함의 반대는 경솔이라는 단어가 될 수도 있겠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해 상대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경솔하다고 부른다.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었던 이유는 생각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가 없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되는 것은 만들지 않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기분 나쁠 구실을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조심해도 '경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따뜻한 사람이 될 것

상처를 받아본 사람은 타인의 상처에도 민감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상처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 민감도가 정말 많이 줄어든 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느 포인트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도 예측이 잘 되곤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냉혹한 평가를 하는 편이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되도록 따뜻한 말만 하려고 하고 굳이 상대가 원하지 않는 평가를 내가 먼저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한 것은 진심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를 위해서일 것이다. 내 마음이 무겁지 않기 위해서, 괜히 나중에 마음에 남을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터 클 것이다. 이런 본심을 읽는 순간 스스로가 가식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만은 진심이다.


정말 몰라서 무례한 사람과 알면서도 무례한 사람이 있다. 결론적으로 둘 다 나쁘다. 순수악도 악이다. 정말 몰라서 무례한 사람은 미안하지만 책과 더 친해지고 인문학, 철학, 심리학 강의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학교 공부가 끝나도 인생을 살아가면 계속 공부는 필요하다. 알면서도 무례한 사람은 최악 중의 최악이다. 그 사람이 괴롭히는 다른 사람도 괴롭겠지만 본인 인생도 괴로울 것이다. 상대에게 따뜻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인생도 차가울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면서 사람에게 저지르는 잘못이 제일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깨끗한 인생은 없다. 하지만 그 잘못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적어도 인간의 도리 아닐까? 그러니 난 손해를 보더라도 여전히 한쪽을 택하라면 무조건 따뜻한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부작용은 있다. 가끔 사람을 상대하기가 싫어진다는 것이다. 아직은 덜 된 인간인지라 상대의 무례함이 반복되면 나의 따뜻함 역시 그 힘을 잃고 본성이 나올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쁜 말을 쏟아내거나 복수해 줄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인생에서 빼버리거나 한쪽 구석으로 밀어버린다. 더 이상 상대하기 싫은 순간이 오는 것이다. 마주하기도 싫고 말도 섞기 싫어 무시한다. 당연히 더 이상 따뜻하게 대해지도 않는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구석으로 밀어진 관계는 회복이 쉽지 않다. 나에게는 너무나 확실한 선이란 것이 있고 그 선을 넘고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때는 되도록 무관심하려고 하는 편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고 그 사람과의 마지막 예의를 지키기 위함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기억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를 종종 생각하곤 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답이 쉽게 나온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살고 싶은 이상향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의 가치관이 투영된 걸 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는 나를 생각할 때와 남이 보는 나를 생각할 때 그 차이는 확연 하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면 좀 더 타인에게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