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의 내 우울함의 원인은 가정사였다. 가장 공부에 집중해야 할 청소년기 때 가장 심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해 미칠 것 같았고 우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 우울하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발버둥 쳤다. 꽤 오랜 시간 그랬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밝게 웃고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을 찾으라면 8-9살 전에 끝난다. 그때는 나도 보통의 애들이었던 것 같다.
밥 먹다가도 울었고 멀쩡하게 잘 있다가도 울었다. 지금 와서 보니 아주 심했던 것 같은데 어리다 보니 내가 직접 병원을 찾아갈 생각도 안 했고 그 누구도 나를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애가 정신력은 강한 것 같으니 라는 생각으로 그냥 뒀던 것 같다.
가장 반짝반짝 빛나고 이뻐야 할 10대 20대를 그렇게 보냈다. 아주 많이 울었고 매일 땅에 얼굴을 박고 다녔다. 나도 이런 내 모습을 몰랐는데 다른 사람이 말해줘서 알았다. "너는 왜 고객 숙이고 땅만 보고 걸어?" 나가서는 밝은 척을 했는데 어딘가 티는 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우울할수록 그 우울함을 자꾸 파고들었다. 우울하면 더 우울한 노래를 듣고 우울증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고 그 우울함을 탐닉했다고 말해도 맞을 것 같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리고 계속된 실패에 그 무엇도 하기 싫었다. 세상이 나를 죽으라고 몰아넣는 기분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되고 계속 내리막길을 걸으니 나도 나를 포기했다. '그래..해서 뭐해... 어차피 이렇게 살게 태어난 거. 죽을 날만 기다리자' 억하심정이 생겼다. 그렇게 가장 어릴 때 가장 가능성이 많을 때 모든 걸 포기했다.
우울하면 활기가 없어지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간만 가기를 기다렸다. 밥 시간만 기다렸는데 배고프지 않아도 먹었다. 왜냐면 그 시간이나마 내가 할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계속 먹고 많이 먹는 것은 당연했다. 살도 쪘고 그 찐 살에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악순환이었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불가항력이었다. 억지로 내는 힘과 희망은 잠깐은 반짝하다가 다시 수그러졌다.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무망감이 일상이었다.
그 우울함을 전혀 극복할 수 없었냐고 묻는다면 극복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어린 아이가 집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냥 견디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 수련을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될 거야'라는 믿음은 정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주변에서
"너는 할 수 없어. 그런 꿈은 너 같은 애가 가지는 게 아니야. 그 대학이 누구 집 개이름인 줄 알아?, 너는 그런 직업 못해..' 등등..
가족이나 제일 가까운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더 공신력 있게 다가왔다. 오죽하면 나중에는 물었다.
"다 안되면 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그럼 나가서 서빙하고 불판 닦고 청소나 할게"라고. (절대 이런 일 하시는 분들을 비하하는는 발언은 아니다.)
그럼 이런 대답이 나왔다.
" 그런 일은 뭐 아무나 하는 줄 아니? 그런 것도 얼마나 어려운데.."
한숨만 나왔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들의 저 말은 어린애를 두고 굉장히 잔인한 말이었다. 나는 지금 나보다 어린 친구들한테 아무리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저런 말을 절대 함부로 하지 않는다. 모든 어른들이 다 저런 생각인 줄 알았는데 나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어떤 상사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 저 사람이 아무리 여기서 별거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함부로 대해요. 저 사람이 판검사가 될지 변호사가 될지 의사가 될지, 사람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나의 인생은 시작도 하기 전에 내리막길을 달렸고 나는 커가면서 그 화살을 다시 돌려주기 시작했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인생 망친 거야"
그렇게만 안 자랐으면, 좋은 부모만 만났으면, 그런 가정사나 환경만 아니었으면 나는 잘 될 수 있었다고 남 탓 환경 탓만 입에 달고 살았다. 나한테 그런 말만 하지 않았으면 돈은 없어도 자신감은 가지고 살 수 있었지 않느냐고 원망했다. 그런데 그 원망은 아무 힘이 없었다. 당연히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유튜브가 나한테는 순기능을 했다. 수많은 강사들은 강연을 들었고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 애썼다. 세상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힘든 상항에서도 이뤄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많이 들었다. 여러 형태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조금씩 느끼면서 변화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