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결과 영영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현대인들이 가지는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다. 주변환경 때문으로 어떠한 사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미뤄왔다. 현재 그 결과는 치명적이고 , 너무 멀리 왔기에 돌아오기보다 급류에 휩쓸려 떠밀려 가기가 더 쉽다고 생각된다.
더 이상 불행의 이유가 없다
나는 완벽하게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20대 때는 그 불행과 부정의 힘이 남 탓과 환경 탓으로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지만 그 이후부터는 절대 그럴 수 없다. 긴 시간의 고통 속에 비단 환경 탓만 있겠는가. 모든 화살은 이제 자신에게 방향을 돌린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 열심히 산다고 세상은 절대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세상은 가난 속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의 편이 아니라 그냥 누구의 편에 설지 모르는 불공평함 덩어리였다. 행복을 위해 산다기보다는 위기를 잘 모면하며 살고 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희망이 없다는 냉소적인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문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결정에 자신을 가지고 나 자신을 좀 더 믿어줄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일찍 너무 쉽게 난 안될 놈이라고 단정 짓지 말걸.
부모와 환경과 나를 분리할 용기를 좀 더 일찍 낼걸.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에 회의를 가지지 말고 믿을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을 살걸.
관세음보살
절에서 외는 주문 같은 말이 있다.
"관세음보살"
중생의 소리를 듣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보살이란다.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속담으로 대표적인 것이 '말이 씨가 된다'이다.
지난날들은 보면 내가 생각한 대로 내가 말한 대로 된 것들이 많다. 좋은 말보다는 힘든 환경에 대한 불만을 더 많이 말했으며 그래서 할 수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도 넌 안될 놈이라고 하고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난 될 놈이라고 말하는 것이 쪽팔려서 스스로 안될 놈을 자처했다. 그때부터 반항심도 생겼다. ' 그래 한번 봐봐. 당신들 말대로 살아서 내 인생이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한번 지켜봐.'
더 이상 혼자 버티고 싸울 힘도 없었기에 내 인생의 모든 건 '운'이라는 한 글자에 맡겼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말한다. "네가 이렇게까지 힘들어질 줄은 몰랐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러니 내가 자처하지 않은 고통도 내가 견뎌야 한다. 언제까지? 엉킨 실타래가 풀릴 때까지... 물론 평생 안 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1등 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일지 모를 남은 시간을 비관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원치 않는 삶을 살며 고통 속에서 보내는 것보다 끝까지 뭐라도 해보고 싸워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내 팔자는 내가 꼬는 거고 푸는 것도 나다. 문제의 원인은 나한테 없지만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해결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적당히 살기
아무리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반이상 해결된다. 나머지 반은 그 일들의 상처와 잔해들이다. 그래서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 적당히 사는 게 중요하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기쁘게 말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모든 것을 듣고 있으니 좋은 말은 안 나와도 적어도 나에게 나쁜 말은 해주지 말 것. 그리고 지금껏 후회만되고 잘못 살았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내 인생을 기어코 내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