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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

by 감성기복이
IMG_2501.jpeg 해가 뜬다는 것을 알면 어둠이 와도 불안하지 않다


내가 공부를 잘했던 시절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전교 1등이었다. 그 친구 옆에 있으니 나도 덩달아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어딘지 모르게 닮고 싶은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건 내 안에 조금이나마 공부를 잘하고 싶은 씨앗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우울했던 날들을 돌아본다. 우울한 드라마를 보고, 우울한 음악을 듣고 우울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우울을 탐닉하고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더더더 우울해졌다. 후에 너무 심해져 그 우울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을 때는 정반대로 살았다. 재미있는 것만 보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맛있는 것만 찾아다니고, 혼자서도 즐겁게 잘 사는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봤다. 그리고 조금씩 나도 그것들을 닮아 웃어지게 되었다.






우울증이 심해지는 가장 큰 이유

우울증의 심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부정적 사고의 사이클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터널 시야가 되어 버리는 거다. 나는 더 이상 절대 즐겁게 살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지배한다. 사람들을 만나도 내 사고 안에 갇혀서 나의 고민 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변사람까지 우울하게 만든다. 나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아주 슬프고 우울한 가사들의 노래만 골라서 반복 재생했다. 물론 음악이 치유의 힘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나에게 독이었다. 음악에서 위로가 아니라 동정심을 구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우울함의 당위성이 부여되고 나는 더더더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든 우울증이 처음부터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걸 파고들다 보면 점점 더 심각해진다. 사실 내 의지가 없는데 주변의 그 누구도 나를 우울의 늪에서 꺼내줄 수 없다. 거기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근데 우울을 탐닉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그쪽 방향을 향하는 것이다. 특히 어릴수록 우울을 파고드는 것이 강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개인의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우울이라는 놈의 성격이 그렇다. 그래서 병원도 가고 타인의 도움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심해지면 치료도 쉽지 않다. 굳이 우울증을 더 깊이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그냥 내버려 둬도 자라나는 것을 내 손으로 억지로 매일 키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건 오히려 우울에 마찰을 제거하고 윤활유를 부어주는 꼴이 된다.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내가 우울에서 빠져나올 때 도움을 줬던 것은 우습게도 유튜브이다. 나는 그곳에서 내 또래 사람들이 브이로그를 많이 봤다. 그리고 나처럼 우울했는데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이 좋게도 나만 원하면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유튜브에서 골라 볼 수 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꼭 옆에 있어야만 에너지가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두라는 말이 있고 그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힘든 사람들끼리는 사고가 좁아 모이면 서로 힘듦을 겨루기만 한다. 그런데 유튜브가 있어서 내가 주위의 좋은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다. 이건 꽤 행운이다.


혼자서 여행하는 사람, 혼자 공부하면서 하루하루 잘 보내는 사람 등 너무나도 열심히 밝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밝게 사니까 일도 잘 풀렸다. 잘 되는 유튜브는 사람들의 동경을 자극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유튜버가 그랬다. 유튜브에서 죽는소리만 할 때는 잘 안 됐는데 그걸 티 내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니까 그때부터 잘 풀렸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밝음에 끌린다. 우울한 사람의 유튜브가 잘 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것을 극복하고 지금은 잘 살고 있으며 자신의 극복기와 성장기를 말하는 유튜버가 훨씬 더 인기를 끈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의 밝은 그 에너지 때문에 인생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게 살아가는 태도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산다고 뭐가 바뀌겠어? 그런데 실제로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꿔서 잘 된 사람들, 밝게 사니까 잘 된 사람들이 보면서 나 역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좋은 것을 탐닉하라

부정적이었다가 지금은 성공한 사람이 그랬다. 이제 자신은 부정적인 사람과는 겸상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주 맑은 호숫가에도 검은색 물감을 조금만 떨어뜨리면 바로 탁해지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이 그만큼 힘이 강하고 무섭다고 한다. 모든 우울증을 혼자서 해결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을 가도 분명 자신이 해야 할 몫이 있다. 약은 우리의 신경전달 물질을 조절해 줄 수 있지만 결국 그것도 사람의 노력이라는 것이 같이 필요하다. 아무리 약효가 있어도 결국 내 생각의 힘이 더 세면 그 약효를 상쇄시킬 수 있다. 정말 우울함에도 병원을 처음 가고자 할 때 꺼려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은 정신과를 내과처럼 드나든다고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래도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써봤으면 한다. 좋은 것을 탐닉하라.







내가 우울을 조절할 수 있는 날까지

요즘에 다시 우울한 만한 상황들이 닥쳤다. 기분은 바닥을 쳤고 그때처럼 부정적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머릿속에 후회만 가득 찼고 일이 꼬였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런데 나는 한번 그곳에서 빠져나와 봤다. 그래서 안다. 내가 지금 이 상황들을 붙잡고 파고들수록 심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완전히 좋기만 한 일도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모든 건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살면 살수록 사실이다. 바닥을 쳤다 올라와본 사람은 다시 바닥을 쳐도 올라오는 법을 알고 있다. 우울도 똑같다. 한번 그 우울에서 빠져나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메커니즘을 안다. 어떻게 하면 우울해지고 어떻게 하면 빠져나올 수 있는지 말이다. 내가 우울을 조절할 수 있는 경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를 때다는 덜 두렵고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다. 그때처럼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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