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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pr 01. 2024

연립방정식(3)

3편

2. 부화

    ‘아랫것들은 몸이 피곤해야 잡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박상진은 일병, 이병을 대상으로 고된 일에 몰두하게 했다. 아랫것이라 무시하던 대상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그는 축구 경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함부로 학문을 가르치지 않았다. 간단한 계산법, 농사, 측량술, 조업 활동, 도축 등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일만 가르쳤다. 오직 지배층인 학자들만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수학 공부를 할 수 있었다. 학자의 수 또한 열둘로 제한되었다. 그 중의 대학자인 피터 고레스가 학자들의 대표가 되어 나라를 통치했다.


    ‘축구를 못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사역에 참여하게 했으며, 고된 노동과 축구를 병행하여 잘하는 사람만이 병영 내에서 대우를 받으며 사역에도 면제되었다. 따라서 중대의 축구 수준은 여단에서 최상급이었다.’

    그는 수학을 하는 학자들만이, 신을 대리하여 진리를 알아가는 권한을 부여받은 현인이라 공표했다. 만백성들은 생산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나라에서 지정한 사역을 휴일에 마무리 지었다. 착취 위에 올린 학문의 깊이는 주변국들과 비교하여 찬란했다.

        - 이승권의 첫 소설 「피터 고레스」 中


    “축구 진짜 뭐 같다 정말.”

    자대 동기 정현수가 희붐한 연기 사이로 얼굴을 드러내며 마음속 깊은 곳에 맺힌 말을 내뱉었다. 

    “기다려 봐. 우리도 짬이 찰 날이 올 거야.”

    “하, 그 시간이 도대체 언제쯤 오겠냐.”

    “인마, 그때까지 시계는 쳐다보지도 마. 잊었냐? 라면 익힐 물도 끓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으면 절대 안 끓어. 그래서 사람들이 물 얹어 놓고 옆에서 딴짓하는 거 아냐. 너나 나나 축구 빠져나가긴 글렀어.”

    “길이 있을 거야.”

    “내가 그 생각 안 해봤겠냐? 불침번 서면서 두 시간 동안 짱돌을 굴려봤다. 그래도 답 안 나와. 특히 너는 더 그래. 너 누가 사회에서 축구하다 온 티 팍팍 내래?”

    한때 축구 선수 출신이었던 정현수의 한숨이 조심스럽게 울려 퍼졌다. 일과시간 중 몰래 태우는 담배는 긴장감이란 향신료가 적절히 가미된 최상급 코스요리와도 같았다. 현수와 나는 맞후임인 최승우에게 망을 보게 한 다음, 구석진 곳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맞후임으로 똘똘한 녀석이 들어오는 일은 군 생활의 크나큰 복이다. 밑바닥 시절의 고락을 함께 겪으면서 쌓인 끈끈한 의리가, 훗날 서로의 권력 유지에 버팀목이 되어줄 뿐 아니라 내무실 생활의 여러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든든한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범 상병이 오고 있습니다. 빨리 정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고무호스 받으십시오.”

    최승우가 낮은 목소리로 이대범 상병이 오는 것을 알리며 잽싸게 타이어에 끼울 고무호스를 건넸다. 우린 부랴부랴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어 가서 열심히 하부를 들여다보는 정비사로 변모했다. 이대범 상병은 박상진 병장의 오른팔이라 불리며, 박상진의 여러 제도와 규범을 지휘·감독하는 실질적인 이인자였다. 그는 박상진의 치기 어린 행동이 도를 넘으려 할 때, 근엄히 제지하여 그의 제국을 안정시키고 공고히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야, 너희들 그 밑에서 뭐 하고 있냐?”

    “일병! 최! 승! 우! 조수석 쪽 앞바퀴 고무호스 갈고 있습니다.”

    “일병! 이! 승! 권! 고무호스 크기가 안 맞아서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최승우는 핑곗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대범 상병은 고개 숙여 자동차 아래를 스쳐보고선 다시 허리를 일으켰다. 

    “빨리 처리하고 대기실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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