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떨어진 잎들이 늘어난다.
가을이 얼마 안 남았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다.
안 나갈 수가 없다.
밀린 산책기를 써야 하니까.
막상 밖으로 나오니 또 역시 나오길 잘했군, 싶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아파트 앞 가로수길이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예쁘게 심겨 있다.
낙엽이 다 떨어진 뒤에 지나가면 바스락 소리가 마구 나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
이게 낭만이지, 싶다.
생각해 보니 낭만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은 가을이다.
얼마 전 재건축이 결정됐다고 해서 좀 서운하다.(?)
이 예쁜 길은 꼭 보존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걸어가면 월드컵공원 옆에 있는 평화의 공원이 나온다.
호수가 있어서 좋아한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갈 때는 꽤 시끌벅적한 곳이었는데 평일에 혼자 와보니 역시 한적하고 평화롭다.
이렇게 예쁜 곳이었나.
아이랑 같이 오면 풍경 감상이 쉽지 않다.
벤치 곳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 둘 씩 앉아계신다.
호수 앞에 모래가 쫙 깔려있다.
이게 뭘까, 싶었는데 '난지비치'란다.
가이드와 함께 온 단체관광객들도 보인다.
집 근처 산책을 나온 내 어깨가 으쓱해진다.
가이드까지 동행해서 올만한 곳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가, 충분히 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옆 하늘공원, 노을공원, 월드컵공원까지 둘러본다면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다.
가을정취가 완연한 공원 안의 호수.
벌써 잎들이 많이 떨어져서 빈 나뭇가지들이 많이 보인다.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올해는 마음에 꼭 드는 은행나무를 찾지 못해서 아쉬워하던 참에, 드디어 만났다.
은행나무길!
심지어 너무 예쁘다!
역시 내 취향은 단풍나무보다는 은행나무지.
파란 하늘과 노란 은행잎이라니.
산책 나오길 너무 잘했잖아.
신나는 마음만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
아파트 단지 안에는 은행나무가 없다.
아마 청소하기가 힘들어서겠지?
은행나무 밑을 한참을 서성이다가 머리 위로 뭔가 후두둑 떨어진다.
은행이다.
네, 다섯 개쯤 맞고 나니 웃음이 난다.
예쁘니까 화가 안 난다는 게 이런 걸까.
언젠가 새똥을 맞은 기억도 떠오른다.
많이도 찍은 은행나무 사진.
하지만 누구라도 안 찍을 수가 없을걸?
이렇게 예쁜 곳에 사람이 없다니.
다들 어디 계세요...
은행나무는 충분히 봤으니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에 빨간 단풍나무 군락지.
알록달록 가을스러운 공간.
곳곳에 소풍을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인다.
생각보다 꽤 넓은 공원이라 호수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길가에 쌓인 플라타너스 잎들.
우리가 흔히 낙엽 하면 떠올리는 잎.
나들이 나온 아줌마 몇 분이 행복하게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본다.
나도 몇 년? 몇십 년? 뒤에는 평일에 친구들과 나들이 나올 수 있겠지? (그렇다고 말해. )
새빨간 단풍사진도 잔뜩 찍고,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근데 이제...
이 풍경을 두고 떠나기가 아까워서 다시 호수 앞으로 온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제대로 감상해 본다.
하.
너무 예쁘잖아, 정말.
한참을 앉아있다가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만난 구축 아파트 앞 도로.
나는 왜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가...
재건축되면 이런 느낌이 안 나겠지.
아쉬워라...
오늘, 산책, 로맨틱, 성공적.
다음 주에는 추워진다던데...
아직 끝나지 않은 산책기 잘 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