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1세기 자본, 서장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by 수근수근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부의 분배는 오늘날 가장 널리 논의되고 또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우리는 장기적으로 부의 분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관해 무엇을 진정으로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다양한 자료와 이론적 틀에 기초하여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현대사회의 자본은 불평등하고, 이는 19세기에도 그러하였고, 21세기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할 것이다.

데이터 없는 토론?

부의 분배에 관한 지적·정치적 토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왔다. 사실 부의 분배는 매우 중요한 문제여서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이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이며, 이는 각자의 관념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언제나 주관적이고 심리적이며,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갈등적인 면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배 문제는 또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맬서스, 영 그리고 프랑스혁명

산업혁명의 도래로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고, 분배문제는 이미 모든 분석의 핵심이었다. 토마스 맬서스가 보기에는 가장 큰 위협은 인구과잉이며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것은 프랑스혁명 직전 프랑스 지방의 비참한 실상에 관한 아서 영의 여행기였다. 당시 프랑스의 인구는 급증하였고 이는 프랑스혁명의 사회적인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영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프랑스혁명을 바라보았고 맬서스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사상을 두려워하였다.

리카도: 희소성의 원리

당시 관찰자들은 부의 분배와 사회의 계층에 대해 암울하고 종말론적인 견해를 공유했고 특히, 데이비드 리카도와 카를 마르크스는 소수의 사회집단이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득에서 점점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리카도는 인구와 생산이 모두 꾸준히 늘어난다면 유한한 토지는 희소성을 지니게 되어 지주에게 부가 집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의 주장의 기초인 ‘희소성의 원리’는 사회적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무한 축적의 원리

산업혁명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참한 생활을 낳았다. 노동 소득이 정체되는 동안 산업이윤은 늘어 부의 불균형이 확대되어 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초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그는 희소성의 원칙을 산업 자본에 대입하여 자본가들의 자본이 무한히 축적되며 이는 자본의 수익률이 감소하거나 무한히 늘 경우 결국 자본주의는 최후를 맞는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은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러시아에서만 발생하였고 발전한 다른 유럽의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로의 다른 길을 모색하는 등 예상이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무한 축적의 원칙은 현재에도 유효하며, 낮은 생산성은 이전의 축적된 부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로 인해 사회는 매우 불안할 것이라는 점이다.

마르크스부터 쿠즈네츠까지, 또는 종말론에서 동화로

사이먼 쿠즈네츠는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는 자연히 양극화를 줄인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미국의 통계를 통해 이러한 결과를 내놓았으며, 이는 처음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쿠즈네츠 곡선: 냉전 한복판에서의 희소식

쿠즈네츠의 ‘쿠즈네츠 곡선’ 이론에서는 초기에는 불평등이 커지다가 산업화와 경제발전이 진전되면서 줄어든다고 하자 이 이론은 정치적으로 사용되며 냉전의 산물이 되었다. 이 연구는 과학적 연구 윤리를 지켰지만 많은 부분 잘못된 논거들로 이루어졌으며 그 실증적 토대가 취약하였다.

분배문제를 경제학적 분석의 중심으로 되돌리기

어떤 면에서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있는 우리는 19세기의 관찰자들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빠른 변화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19세기 경제학자들이 분배의 문제를 경제 분석의 중심으로 연구하였듯이 지금도 그렇게 연구하여야 할 시점이다.

이 책에서 활용한 자료

이 책은 주로 두 가지 유형의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나는 소득과 그 분배의 불평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다른 하나는 부의 분배, 부와 소득의 관계와 관련 있다. 소득과 관한 자료는 쿠즈네츠의 연구를 시·공간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전 세계 20개국의 약 30명의 공동 연구를 바탕을 둔 세계 최상위 소득 계층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소득불평등의 변화에 관한 가장 광범위한 역사 자료가 되었다.

또 중요한 자료는 부, 부의 분배, 부와 소득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상속세 신고 자료, 재산과 상속에 관한 데이터, 국부의 총량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역사적 데이터와 방법론에 의하여 부의 불평등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현재는 연구 조사 기술의 발달로 인해 과거보다 수월하게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의 주요 결과

이 연구를 통해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인 두 번째 결론은 부의 분배의 동학이 수렴과 양극화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을 가동한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메커니즘의 주요 동력을 생각해 보면 지식의 확산, 기술과 훈련에 대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주의적 원리를 따른다면 불평등의 고착화를 막고 민주적 합리성으로 나아갈 것과 세대전쟁이 계급전쟁의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렴의 힘, 양극화의 힘

지식과 기술 확산의 힘이 수렴을 촉진한 다하여도 이보다 불평등함을 초래하는 엄청난 힘에 압도되어버리고 만다. 수렴으로 가는 주된 힘이 충족된 상황에서도 양극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돈을 버는 이들이 나머지 사람들과 격차를 빠르게 벌려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이 미약하고 자본수익률이 높을 때 부의 축적 및 집중화 과정과 관련된 일련의 양극화 요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소득불평등 추이를 살펴보면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는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불평등은 고액연봉자들의 노동 소득이 전례 없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노동 생산성이 늘어났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연봉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유한 국가들에서 제한적이지만 같은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양극화의 근본 요인: r > g

유럽에서의 자본/소득 비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U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의 추세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경제가 상대적인 저성장 체제로 되돌아간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느리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당연히 과거의 부가 지나치게 큰 중요성을 갖게 된다. r(연평균 자본수익률) > g(경제성장률)라는 부등식으로 표현할 이 근본적인 불평등은 이 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며, 이 책의 논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수익률의 확대는 양극화를 불러오며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저자가 결론적으로 제시하는 모형에서는 양극화는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에 부의 분배의 변화 방향과 관련된 몇 가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다.

연구의 지리적, 역사적 범위

이 연구는 18세기 이후 세계 여러 국가 사이에, 그리고 그 국가들 안에 숨어있는 부의 분배의 동학을 탐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 때문에 자주 조사의 범위를 좁혀야 할 것이며, 주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에 의존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가장 완전하게 장기적인 역사적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한 사례이다. 프랑스의 사례를 중시한 것은 프랑스혁명을 통해 부의 구조를 파악하게 해 주었고 인구 변화에서 미국에 비해 알맞았으며, 일찍이 법적평등의 이상을 신속히 하였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이론적, 개념적

저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공정한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에 관한 토론에 기여하는 데 관심이 있다. 박사과정 이후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에만 휩쓸리기 싫어 다시 프랑스에 돌아와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경제학자는 존경받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사회과학에 몰두할 수 있다. 경제학은 수학적인 이론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닌 사회과학 안에서 함께하는 경제학이 될 때에만 앞에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의 개요

앞으로 부의 분배에 대한 상황은 예측하기 힘들며, 이는 정치적이고 혼란스럽다. 누구도 이러한 변화는 알 수 없지만 역사의 교훈은 유용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선택에 직면할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목적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여는 몇 가지 열쇠를 찾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