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을 보면 가슴이 덜컹거리고 숨이 막히는 순간을 경험한 나는, 이제 복작거리는 것이 힘겹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 남편, 아들과 딸에게 말한다. 산이나 바다가 있는 곳으로 이사가자고. 그곳에서 좀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살아가자고. 남편은 말한다. 아직은 더 벌어야한다고. 아들과 딸은 말한다. 이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나 혼자 산 속에 올라가서 살까.
산이나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얼마 전 남편이 계곡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 가족뿐인 그 곳에서 졸졸 거리는 계곡의 물 소리를 들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계곡에 그대로 드러누워 한참을 있었다. 그거면 나는 이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이면 행복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다도 좋다. 물소리를 들으면 나를 옥죄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 자연 속에서 잠시만이라도 살고 싶다. 그 곳에 있으면 나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곳이 나의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집이 여기 그대로 남는다면 나에게 시골집을 선택할 수 있는 비용은 상당히 줄어드는 셈. 시골의 빈집, 버려진 폐가도 좋다. 나의 두번째 집을 찾아보자.
전국 주택의 8%에 해당하는 151만여채가 빈집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남, 제주, 강원도에 빈집이 많다고 한다. 전남과 제주는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와는 너무 멀다. 강원도에 나의 두 번째 집을 마련하자.
빈집 거래를 위해 어디서부터 정보를 찾으면 좋을까. 한국국토정보공사는 공가랑 플랫폼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믿을만하겠지. 빈집이라는 의미의 '공가'에 공간에 대한 정보를 더하는 의미의 '랑'이 합쳐져 공공의 목적을 실현하는 공가로 거듭나기를 위해 이름 지었다는 공가랑. 들어가본다. 먼저 찾아보는 곳은 강릉. 우리 가족이 주말에 당일로 자주 다녀오는 곳이다. 아이들이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해의 바다는 언제 찾아도 언제 보아도 그저 좋았다. 공가랑에 올라온 강릉의 매물은 없다. 나만 강릉 바다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다른 지역의 매물을 찾자. 동해에 있는 빈집을 뒤져본다. 속초 해수욕장 근처에 매물이 있다. 나의 SECOND HOUSE를 위해 속초로 떠난다.
바다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집인지가 중요했다. 운전을 즐기지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나. 어디든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 그런 내가 언제든 나가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 다행히 이 빈집은 바다까지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집을 살펴보다보니 옆집 아주머니가 나오신다.
어떻게 오신 거예요?
빈집을 내 놓았다고 해서 보러 왔어요. 이 집은 비어 있은지 오래 되었나요?
10년은 넘었을 거예요. 무슨 이유인지 집 주인이 집을 내놓지도 않고 전세를 주지도 않고 10년을 비워두네. 이 동네 살기 좋아요. 이사오세요.
10년을 비워둔 빈집. 그 공허가 좋다. 그렇지만 옆집이 빈집으로 10년 이상 방치 되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옆집 아주머니 마음이 어땠을까. 빈집의 옆집 아주머니는 천만원 정도면 수리해서 잘 살 수 있을 거라며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친절하게 말씀하신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엉거주춤 주차한 남편은 이제 그만 이동하자고 재촉한다. 이 곳은 다 좋은데 저기 먼 곳에 비용을 내고 주차해야한다며 이 점이 젋은 사람 살기에는 좀 불편할 거라고 하신다. 나를 젊은 사람으로 봐주신 옆집 아주머니가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집 앞 골목이 상당히 좁다.
좁은 골목길과 낮은 건물들. 좁은 집이지만 나름 중정을 갖춘 구조가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바다를 5분 걸어 나갈 수 있음이 너무나 행복하다. 결심했다. 이 집이다. 다만 집의 가격이 나와 있지 않아 구입할 수 없는 비싼 가격일까봐 걱정스럽다. 매물에 연결된 번호로 전화를 건다. 속초 시청으로 연결된다. 매물을 사고 싶다고 말하자 매물의 주인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주인 아저씨의 번호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드디어 그 번호로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속초에 있는 빈집 보고 전화 드렸습니다. 가격이 어떻게 될지요?
그 집 팔지 않습니다.
사연이 있으실테지만 왜 팔지도 않을 집을 공가랑 매물로 올려두신걸까. 허탈해진다. 다음부터는 가격에 주인과 협의라고 올려진 매물은 보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그렇다. 정말 팔 생각이라면 매물의 가격이나 주인의 전화번호를 올려두었을 것 같다. 그곳에 시청번호를 올리고 가격은 주인과 협의라는 다소 성의없는 내용의 매물은 모두 거르고 보기로 한다.
가만가만 생각해본다. 나는 왜 SECOND HOUSE를 꿈꾸는가. 자연을 좋아하는 남편이 강력하게 추천하게 살게된 우리집은 공원과 산으로 이어진 곳에 위치한다. 새벽이든 한밤이든 도보로 등산과 공원 산책이 가능하다. 공원에는 탄천이 흘러 내가 좋아하는 물소리는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새벽과 밤에 외출하면 나는 언제든 사람보다 자연을 더 많이 담을 수 있다. 가족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음에도 난 왜 꼭 SECOND HOUSE여야하는가.
여행이 좋은 이유는 반드시 해야할 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들어서면 항상 산적해 있는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혹시 같은 이유로 SECOND HOUSE를 꿈꾸는걸까. 이 곳에서의 일들을 잊고 싶어서인건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여기, 내가 사는 곳을 SECOND HOUSE로 만들어보자. 집이 쉼의 공간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아니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워야한다. 호텔과 펜션에 들어서서 느끼는 해방감은 빈 공간에서 비롯된다. 방 안 가득 꽉꽉 들어찬 물건들은 존재만으로 숨막힌다. 매일 아이들이 꺼내어 놓는 물건들로 방은 발디딜 틈이 없다. 각 방에서 없으면 안되는 물건만 남기자. 더럽게 만들 요소를 없애자. 쓸 만한 물건은 선별하여 모두 굿윌스토어로 보내자. (굿윌스토어는 기부를 통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곳이다.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그 무엇보다 의미있는 일을 하는 곳.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기부와 닮아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