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1. 학교 잠시 멈춤

메니에르로 인해 휴직하게 되던 날

by 경주

학교는 무척 소란한 곳이다. 아이들의 생기로 넘쳐난다. 젊음의 소리는 언제나 왁자지껄하다. 점심시간 그리고 쉬는 시간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다 보면 아이들의 에너지는 내게 그대로 전해진다. 이 열기가 요즘의 몸 상태로는 넋이 나갈 정도로 힘이 든다. 그래도 업은 생인지라 어디에서인지 모를 힘을 뽑아내어 든다.


교실을 떠나 교무실에 돌아오면 삐 소리가 들린다. 나만 들리는 건지 근처에 공사장이 있는 건지 자꾸만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미쳐가는 느낌이 들어 참아본다. 참는 기분은 참혹하다. 이명은 우울증을 동반한다.

나는 미쳐가는 걸까?


오늘은 일찍 자고 싶다. 일찍 쉬려면 시간을 아껴야 한다. 공강 시간이 되었으니 수업 준비를 해보자. 글자가 흩어져버린다. 무슨 뜻인지 보고 보고 또 본다. 글자를 그림 보듯 바라만 본다. 올해는 작년과 다른 학년을 맡아 수업 준비를 모두 새로이 구상해야 한다.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글이 도무지 읽히지 않는다. 또다시 한숨이 나온다.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하고 나면 피로감이 극심하다. 그러고 나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일어나야한다. 그렇지만 새벽에 하는 수업 준비는 내가 원하는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늘 아쉽다. 그래도 눈을 뜨자마자 책상에 앉으면 글은 읽히니 다행이다. 그때가 아니면 집중을 요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새벽에 편히 일할 나만의 방이 있다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4명, 그런데 방은 셋이다 보니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도 방을 공유해야만 한다.


새벽에 불을 켜고 책을 보는데 남편은 환해서 잘 수가 없다며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정말 잠이 달아난 건지 남편은 손가락으로 나의 어깨, 허리를 찔러 대며 장난을 친다. 말할 기운이 없어 눈빛으로 말해도 듣지 않는다. 퇴근 후 1시간보다 귀한 새벽의 10분이 흘러가 버린다. 1초도 아까운 나는 머리가 쭈삣 설 정도로 화가 난다. 정색하는 나에게 남편은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말하곤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 웃어버린다. 저 남자는 잠을 줄이는 나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든든함 따윈 버린 지 오래다.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이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


올해 맡은 아이들은 1학년 때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중학교에 적응할 시간을 잃어버린 황금돼지의 해에 태어난 아이들, 그 어느 해보다 짧은 시간 동안 만났던 아이들.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려니 2학년이 되었고 이제 학교에 나오나 싶으니 코로나로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 아이들. 그래서인지 짠한 마음이 들어 더 잘해주고 싶다.

수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그런 의지를 다질수록 몸 상태가 악화된다. 급기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약을 먹는데도 몸이 더욱 안 좋아진 건 잠을 오히려 줄였기 때문이다.


물속에 빠진 듯 정신이 멍한 상태가 지속되어 수업 준비며 시험 문제 출제에 너무도 긴 시간이 걸려 급기야 한두 시간만 자는 날이 이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테로이드제, 이뇨제, 어지럼증 개선 약 등 약의 가짓 수가 꽤 많았지만 청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언제쯤 맑은 정신으로
일할 수 있을까요?

일의 속도가 너무 더뎌서
잠을 줄이니
너무 힘들어요.


과로하지 말라던 선생님께 병의 치료 기간을 묻는다.






현재 상태로서는
최소 6개월에서
어쩌면 평생 이 병과
함께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자꾸만 더 힘들어진다.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가는 건가.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고 걸을 때마다 너무 어지러워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조용한 곳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명은 내가 이렇게 미쳐가는 건가 싶어 참혹한 마음이 들게 한다.


어지럽고 심장이 쿵쾅 거리고 때론 시야가 흐려져 앞이 안 보이기도 한다. 현재 무엇보다 힘든 건 일을 해야 하는데 책상에 앉아도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 제발 약을 더 지어달라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간다. 어지러울 때 먹는 약을 추가한다. 멍한 정신은 돌릴 수가 없다.






한의원을 찾아간다. 메니에르 약을 내보이며 현재의 상태를 전한다. 한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쉬지 않으면 공황장애가 올 거예요.



혈압을 재 주신다. 최고 혈압 149. 이상하다. 혈압이 높으면 맥도 잘 느껴져야 하는 건 아닌가. 맥은 혈압과 상관없이 기운의 상태를 나타낸다더니 그런 건가. 나는 늘 저혈압에 가까웠는데 정말 저게 내 혈압인 걸까. 생각이 많다. 지난주 류머티즘 진단을 받던 날 최고 혈압은 139였다. 혈압이 자꾸만 오른다.


왼쪽의 이명을 잡아주겠다는 한의사 선생님은 혈액 순환이 잘 되는 침을 놓아주신다. 배를 두들겨 보고는 몇 년째 달고 사는 위염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바로 알아보신다. 원인은 소화기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진단하신다.


역시 한방과 양방은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며 침을 맞고 일어서서 카운터에 카드를 내민다. 오한이 든다. 몸이 벌벌 떨린다. 따뜻한 차를 주신다. 한결 몸이 누그러진다.


양방에서 이루어진 3시간짜리 메니에르 검사는 정말 힘들었다. 전정기관 검사는 어지럼증을 유발하여 이제 그만이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솟아오를 정도로 힘들었다. 갈 때마다 하는 청력 검사도 집중을 요구해서 병원에 다녀오면 무척 진이 빠졌다.


한의원은 달랐다. 흘러나오는 작은 소리의 음악, 따뜻한 한약에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수술을 해야 하는 병이 아닌데 한의원이 내게는 더 맞지 않을까.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 생전 가져보지 못한 이런 몸 상태로 일을 한다는 건, 죽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가.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오는 엄마처럼 갑자기 과로사한다면? 이 상태로 학교에 다니는 건 학교에도 우리 가족에게도 나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일.


병원과 한의원에서 받은 진단서를 학교에 제출하기로 한다. 진단서는 이미 진단을 받은 3월에 대학병원 선생님께서 써주신 적이 있다. 정말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 지금은 휴직하여 학교에 없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건다. 암에 걸려 휴직한 선생님이다.


휴직 절차를 물어본다. 휴직에 필요한 진단서를 준비하고 다른 선생님에게 의논하지 말고 누구보다 먼저 교감 선생님께 상의드려야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휴직 과정을 들려준다. 학기 중 휴직은 내 앞에서 험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면 다행이라고 여기라고, 학교 입장에서는 힘든 일이니 듣기 싫은 소리 듣지 않고 휴직하려는 것은 욕심이라고, 상처받지 말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교감 선생님과 상의하라고, 전해준다.


휴직 과정에서 본인이 받은 상처를 나 역시 받게 될까 염려해준다. 진단서를 제출해서 휴직하여 쉴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휴직 후에는 건강 회복에만 마음을 쓰라고 말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


그랬다. 우리 반 아이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가는 반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한 일이다. 벌써 우리반 아이들 모두 나와 개인적인 시간을 모두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어느 정도 교감이 이루어진 상태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교감, 교장 선생님은 서류 처리와 함께 민원에 시달리시지 않을까? 인사위원, 교과부장, 자율동아리장, 도서위원 등 다양한 것에 걸쳐 있어 새로 기안문을 결제받아야 할 선생님들에게는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학교가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충분히 바쁜 학교였다. 첫 교직에 나선 2004년에 비해 2022년의 학교는 너무나 바쁘다.




한 아이를 보듬을 시간은 부족해지는데
왜 자꾸 학교에서
교사는
조금씩 더 바빠지는 걸까?

진단서를 가지고 학교에 갔다. 감사하게도 올해 부임하신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더 버티다 누를 끼칠까 걱정하는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셨다. 정신이 점점 몽롱해지고 있어서 더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다.


코로나로 인해 기간제 구하기가 더욱 힘들어 금간제라는 요즘 시기에 기간제를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후임으로 오시는 분이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기도했다. 다행히도 많은 경력을 가진 좋은 선생님이 지원하여 주셨고 나는 휴직할 수 있게 되었다.


후임 선생님을 만나 뵙고 학급 아이들과 업무에 대해 말씀드렸다. 동갑에 교육경력도 비슷하고 성향도 비슷한 분이셨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우리반 아이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님께 조심스럽게 편지를 쓴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나누어 준다. 좋은 일이 아니라 아파서 떠난다는 말에 슬프다며 우는 아이를 안아주었다.


회장과 부회장에게 새로 오시는 선생님 좋으신 분이니 새로 오신 분께 학급 안내를 잘 부탁한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먼저 이야기를 건넸다. 물론 잘 도와드리겠으니 걱정하지 말고 건강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한다. 새로 오시는 선생님도 무척 좋으실 테지만 선생님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없어 너무나 아쉬워서 속상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 눈빛에 뭐라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내 주변 그 어떤 어른보다 낫다. 인성은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몸이 아프다는 말을 목이 아프다는 말로 전해 듣고 목캔디를 내미는 아이가 있다. 목캔디를 내밀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 마음이 고맙고 그 아이와 지낸 시간이 떠올라 나 역시 울컥했다. 고맙다고 안아주었다. 우리가 잘 지내야 선생님이 맘 편히 몸조리하실 수 있을 테니 최선을 다해 잘 지내보겠다고 인사하는 아이도 있다. 그 어느 어른이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내게 말을 전해줄까?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많이 아프냐고 괜찮냐고 물어주는 녀석도 있다.


아이들이 끄적인 편지들과 선생님들의 선물을 가득 안고 돌아선다. 너무 큰 빚이다.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휴직 후 침대에 계속 누워 있었다. 학교에서 다녀온 딸은 침대에 뛰어들며 기뻐한다. 엄마와 침대에서 꽁냥꽁냥을 하려고 친구들과 놀지 않고 달려왔다며 내 몸에 얼굴을 비벼댄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는 나. 오히려 내 끼니를 챙겨주는 아이들. 그저 잠만 자고 있어도 엄마가 침대에 있으니 아들과 딸은 행복하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내 목소리는 아주 작아졌다. 귀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이명으로 소리 자체를 듣는 것이 힘들었다. 내 목소리도 거슬릴 지경이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었다. 내내 누워만 있다가 살기 위해 밥을 욱여넣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잤다.


한의원과 병원 가는 것이 가장 큰 일과이다. 충분히 자고 또 잔다. 한 달 내도록 그렇게 자도 잠이 또 온다.


자고 일어나 한의원을 향해 걸을 때면 생각한다. 걸으며 생각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정리되곤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쓰고 남은 나머지가 된 듯 부끄럽다. 우리반 아이들이 생각날 때면 너무 미안하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12년 그리고 대학을 합쳐 16년의 학교 생활 동안 단 한 분도 중간에 그만두시는 일이 없었는데 왜 난 이러고 있을까. 가장 좋은 선생님은 끝까지 함께 해주는 선생님일 텐데. 마음이 무겁다. 타다 남은 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잉여인간이라는 단어만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