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가 아닌, 유치원 엄마가 되다.
졸업을 앞둔 1월, 서둘러 면접을 보고 다녔고 그리 어렵지 않게 한 사립유치원에 취업을 했다.
새 학기 내가 맡은 반 아이는 모두 42명
의욕은 차고도 넘쳤지만, 각 자 발달상황도, 성격도, 환경도 다른 42명의 아이들을
이제 갓 22살의 새내기 교사가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침마다 울고 오는 아이, 떼 쓰는 아이, 바지에 실수하는 아이, 친구를 때리는 아이,
화장실 변기 안에 휴지 한 통을 모두 찢어넣어 변기를 막히게 하는 아이 등
아이들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내기라도 한듯 여러 가지 문제 상황을 만들어 냈다.
나는 빠르게 지쳐갔다.
"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이 맞는가? "
" 내가 이 일을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등
그토록 원했던 유치원 교사가 된 지 일주일 만에 나의 머릿 속은 점점 새하얗게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입학식 첫 날부터 울고 오는 영일이가 그 날도 어김없이 울면서 유치원에 왔다.
영일이 부모님은 두 분 다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을 해야하는 탓에 영일이를 일찍 유치원에 데리고 오셨다.
당시 유치원에는 맞벌이 가정이 흔치 않았다. 때문에 영일이는 매일 1시간 정도는 홀로 친구들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무도 없는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올 때까지 혼자 기다리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 같다. 영일이는 아빠와 쉽게 헤어지지 못하고, 아빠를 이대로 보내면 영영 못 볼것 처럼 아빠의 바지 가랭이를
잡고 늘어지며 필사적으로 울며 매달렸다.
" 가지마! 싫어! 유치원 안 갈꺼야!!!!"
" 영일아. 아빠 금방 올꺼야. 선생님이랑 조금만 놀고 있어. "
" 너, 이렇게 자꾸 떼쓸래? 왜 자꾸 울고 그러는거야!!!"
" 아빠가 오늘 끝나고 너 원하는 장난감 하나 사줄께. 응?"
영일이 아빠는 영일이를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또 때론 회유도 해보지만, 영일이는 아예 귀를 막아버린 듯 했다. 아빠는 영일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며,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 선생님이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라는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사실 22살 어린 교사에게 이런 상황은 영일이 아빠보다 더 낯설고 당혹 스럽고, 난처할 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뭐든 해야한다. 일단 아이들을 책임져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니 뭐든 해야했다.
난 울며 매달리는 영일이를 힘으로 떼어내어 꼬옥 안아주었다. 아빠는 그 틈을 타서 그 순간을 놓치면 영영 기회를 못 잡을 사람처럼 인사도 없이 후다닥 유치원을 벗어났다. 영일이는 내 품안에서 거칠게 버둥거렸다.
간절함이 합쳐지면 6살 아이도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22살에 온 몸으로 처음 알았다. 나는 나의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안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하며 말문을 열었다.
" 알아. 선생님도 네 맘 알아. 영일아. 엄마,아빠랑 떨어지는 게 싫었지?"
" . . . "
신기하게 내 말에 아이의 반응이 왔다. 거친 버둥거림을 멈춰버린 것이다.
난 조심스럽게 아이를 풀어주고는 눈을 보며 이야기 했다.
" 영일아, 선생님이 유치원에서는 엄마해줄까?
그럼, 영일이는 집에가도 엄마가 있고, 유치원에서도 엄마가 있는거야. 엄마랑 헤어지는 게 아니라
집으로 갈 때는 집엄마를 만나러 가는거고, 유치원에는 유치원엄마 만나러 오면 되잖아. "
영일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유치원 엄마?"
" 응, 유치원 엄마. 선생님이 유치원 엄마해줄께."
아이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응. 유치원 엄마 해줘요."
" 그래, 선생님이 이제부터 영일이 유치원 엄마야."
아이는 망설이는 듯 싶더니 희미하게 말했다.
"어....어어어어....엄....마......아아아아. "
나는 영일이를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나는 그렇게 교사가 아닌 42명의 유치원 엄마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22살 초보엄마. 아직도 제 앞길도 제대로 못하는 서툰 엄마였다.
한 없이 나약하고, 작은 일에도 눈물흘리며, 나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아직은 서지 않는 이제 갓 스무살을 넘은
아가씨에 불과한 나 였다. 하지만 영일이를 위해, 또 나머지 41명을 위해 꼭 내가 해내야 하는 일이라 여겨졌다.
과연 나는 42명의 엄마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천방지축 아이들과 22살 초보엄마에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 순간에는 그 어떤 예측도 가늠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유치원 엄마로서의 제 2의 삶이 시작됬다는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