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블랙벨트로 시작한 아이들

한국의 '노란 봉고차'가 미국에서 '블랙벨트'의 리스펙의 대상이 되기까지

by 사이의 삶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권도를 시작한 이유는 솔직히 거창하지 않았다.

맞벌이였고, 아이들을 태워다 집까지 데려다주는 봉고차가 있었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들은 안전하게 맡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기 2주 전, 아이들은 부산에서 열리는 태권도 대회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사를 앞두고 정신없던 시기였고, 부산까지 이동해야 하는 일정에 부담스러웠지만,

아이들의 눈빛에 진심이 담겨 있었다. 결국 출전했고, 둘째 아이는 상까지 탔다.

이건 더 이상 시켜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미국에 도착해 먼저 태권도장부터 찾았다.

국기원 공인 2품을 인정받아 아이들은 첫 수업부터 검은 띠를 맸다.

하지만 낯선 도장에서 마주한 시선은 차가웠다.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 최고 등급의 띠를 매고 나타나자, 미국 아이들의 눈에는 의아함과 시샘이 교차했다.

첫째 딸은 그 따가운 시선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고, 지켜보는 내 마음도 타들어갔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었다.

태극기 아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증명해 냈고, 의구심 가득했던 눈초리는 금세 리스펙으로 변했다.

태권도는 아이들에게 어디에 있든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도장 한편에 걸린 태극기를 보았을 때,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미국에서 한국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유일한 공간.

구령, 인사, 호칭 모두 한국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늘 강조한다.

무엇이든 시작했으면 쉽게 놓지 않는 끈기, 그리고 운동은 평생 곁에 두어야 할 친구라는 사실을.

선수가 되지 않아도 좋다,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나이가 들어서도 도복 끈을 동여매며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보며,

부모인 나 또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지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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