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더 빨리 내 길을 찾아 헤맸지만 대학을 안 간만큼 더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길을 택하는 나의 시도가 다른 사람의 눈엔 우습게 보이진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은 내 도전을 더 망설이게 했다. 그렇게 4년, 아니 어쩌면 10년이 지난 후에야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게 됐다.
내가 어렸을 땐 톰과 제리와 같은 만화가 인기가 많았는데 그런 만화들은 제작사가 대개 외국이었기에 당연히 한국에선 재미있는 만화를 제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무렵, 한국에서 제작한 라바라는 만화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라바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는데 이 만화를 한국에서 만든 거라니..! 떨리는 마음으로 라바 제작사와 캐릭터 제작과정 등 그 만화에 대한 것은 모두 찾아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려면 당연히 예술계 고등학교를 가야 했는데 그때 준비하기엔 이미 늦은 시기였다. 그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중학교 3년을 실기에 쏟아붓는다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경쟁이 엄청 치열하다는 것,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에 타오르던 내 불꽃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뒤늦게 알아봤던 미술학원의 수업료는 상상이상으로 너무 비쌌고 두세 살 터울이 위에 둘씩이나 더 있었기 때문에 그 학원비는 당연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반 고등학교에서 재미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도중 한 친구가 포토샵을 배우러 함께 부산에 가질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알게 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친구와 왕복 세네 시간이 걸리는 학원 여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미련이 있었기에 고민 없이 따라나섰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둘은 주말마다 경주와 부산을 오가며 포토샵과 일러스트, 인디자인을 배웠고 2학년이 돼서는 쇼핑몰 상업 경진대회에 참가하며 상을 받으러 다녔다.
3학년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은 진학과 취업으로 나뉘었는데 나는 어디에도 서지 못했다. 회사에 들어가기도 싫었고 특별히 가고 싶은 대학 학과도 없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냥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컴퓨터 학원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전산회계와 포토샵 등 총 10개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자격증을 따놓았던 덕분이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컴퓨터 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다른 길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나는 학원 일을 병행하며 대구에 영상편집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출근 전에 새벽같이 매일 대구를 오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열정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학원에서 배우는 영상 편집은 취업 목적의 커리큘럼으로만 수업을 진행해서 내가 원하는 캐릭터는 만들 수가 없었다. 분명 캐릭터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왔다고 상담을 받았건만 결제 전까진 가능할 것처럼 말해놓고 결제하고 수업을 듣고 나니 그렇게는 어려울 거라며 말이 바뀌었다. 질리도록 질렸다. 그 학원에도 질렸고 단 기간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을 내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 때문에 조각 조각내서 1년이 넘는 긴 기간 동안 배운 영상에도 질렸다. 다시는 영상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지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나를 보며 배운 거는 언젠가는 쓰인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한다.
참 길고도 긴 시간을 돌아왔다. 예술계 고등학교 진학엔 실패했지만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며 디자인 공부를 했고 학원 선생님으로 취업했지만 영상 편집 공부를 병행했다. 나중엔 모든 걸 내려놓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24살 4월의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 내가 만든 캐릭터를 업로드했다. 밍구, 완두를 세상에 내보인 첫날이었다. 나는 안 될 거라, 나는 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외면하고 또 외면했지만 결국은 이렇게 캐릭터를 제작하고 만화를 그리고 굿즈를 만들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나는 항상 내 가능성을 낮게 여겼고 내 열정을 별 거 아니라 여겼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어도 늘 해낸 게 없다고만 생각했고 늘 내가 늦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난 이미 많은 걸 해냈고 지금도 해내고 있다. 그저, 무언가를 시도하고 해내는 내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