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린왕자 Nov 07. 2024

돈으로 살 수 없는 오래된 것들

버리지 못하는 오래된 책


추억이 담긴 물건은 쉬 버리지 못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하는 정도 있고, 버릴까 말까 망설이는 선택적 기로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버려야 할 것들이 당연 많은데 또한 당연 버리지 못해 애를 태우게 되는 것도 많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지도 않은 옷을 처분한다든가, 케케묵은 오래된 이불을 버릴 때도 망설여지는 것은 거기에 투자한 돈도 있고 혹여나 한 번 더 몸에 걸칠 수 있을까 하는 투자 가치에 대한 아쉬움이 깃들어서다.  그러다 평생 못 버린다는 말이 들어맞는지도 모른다.


 뒷베란다에 나란히 얹힌 아주 오래된 책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들여다본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닌데 버리지 못하고 놓아둔 지가 어언 이삼십 년이 훌쩍 지났다. 선택 장애가 심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아주 오래 묵은 것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박스에 넣어두었던 것을 걸리적거린다고 뒷베란다로 장소만 옮겨 놓은 것이다. 아이들도 그걸 보고 한 마디 던진다. 제발 좀 버리라고. 오래된 책으로 집을 도배하게 생겼다고.  다 큰 녀석의 충고에도 끄떡 않는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아들 녀석이 알아서 버린다고 큰소리쳐도 저도 결국엔 버리지 못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한자리에 가만히 두면 아무도 터치를 하지 않을 텐데, 문제는 내가 자꾸 이리저리 장소를 바꾸면서 옮기는 탓도 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데 이런 책도 있다, 봐라! 하는 무언의 집착 같은 것이다. 아무튼 여러 생각이 들지만 잘 버리지 못하는 내 성격과 쌓여 있는 책들이 닮아 볼수록 화가 난다.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이 많을수록 돈은 안 되고 화만 쌓인다.  


 오래된 것들이 다만 좋은 것만은 아니고, 오래된 것들이 다만 나쁜 것만도 아니다. 얼마나 유용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 그러나 저 오래된 책들이 과연 유용한 가치가 있을까 묻곤 한다. 그렇다고 버린들 잘 버렸다 박수 칠 일도 아니다. 뒷베란다에 놓여 있으니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삶에 불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굳이 버려야 할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렇게 꿋꿋하게 자리 차지하며 떡 하니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곰팡이가 피면 어쩌나, 책벌레가 생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은 된다. 일전에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을 빌렸을 때 케케묵은 곰팡내에 스멀스멀 기어가는 아주 작은 벌레를 본 적 있다. 에프킬라를 뿌려 잡았다. 오래된 내 책에도 혹 벌레가 생길까 봐 신경 쓰인다.


 오래된 책은 장식품이 될  수 없고 보물도 될 수 없고, 가보는 더더욱 될 수 없다. 기증해도 받아주지 않는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시원하게 버리지 못하는 이 불편한 집착증을 또 어이할까.  예전 학교 다닐 때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길에서 산 책들도 많다. 그때는 한 권에 천 원씩 하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도 사고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사고 고리끼의 어머니도 샀다. 가난했던 아버지에게 사전 산다, 문제지 산다 속여가며 받아낸 돈으로 읽고 싶었던 책을 샀던 것이다. 알고도 속아주시던 아버지였다. 책을 산다면 빚을 내서라도 사 주셨던,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며 스무 살 무렵 내 책을 훔쳐 간 도독을 나쁜 놈이 아니라 말씀하셨다. 책을 버리려고 마음먹으니  옛날의 추억들이 책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새로 된 양장본에 깨끗하고 번드르르한 좋은 책을 살 수 있을 텐데도 오래된 책들은 거금을 주고도 못 살 것 같은 친절한 예감에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안 버린 게 잘한 일이라며 아직은 손뼉 치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책도 있지만 아버지가 내게 남긴 책도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할 때도 아버지의 책은 건드리지 않았다. 엄마의 집에 눅눅하게 꽂힌 채 그대로 삼십 년을 더 묵혀둔 것을  엄마 돌아가시고 집을 정리하면서 내가 가져온 책이다. 족보도 아버지에겐 별 중요한 것이 못되었다. 고향을 등지고 나왔다. 힘들고 어려웠던 그 세월을 살아내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거제도에서 전라도로 전라도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내려와 터전을 잡았다. 짧지 않은 청춘을 두 청춘은 청춘을 모르고 살았다. 땅 한 평 가지지 못하고 내 땅을 찾아 전국의 땅을 누볐다. 쉬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당신의 땅을 갖기 위해 고향을 등진 서러움과 분노로  이 악물고 악착같이 버텼다. 땅이 있었다면 이리저리 떠돌진 않았을 터, 남의 집 문간방에서 어설픈 정착을 하고 어린것들을 건사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해야 했다. 그래서 얼마만큼의 땅을 손에 넣었다. 당신들은 얼마나 벅찼을까. 집이 생겼다는 기분을 당신들은 어떤 말로 표현을 했을까. 어설프게 정착한 땅에서 그렇게 어설프게 고향을 만들었다.


 땅이 생기니 먹고살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늘었고 투정도 늘었고 집착도 늘었다. 살림 아끼라는 잔소리를 엄마는 듣기 싫어했고, 없는 살림에 사교육 -주산(내 인생 최초) - 시키는 것이 당신의 만족에 따라가지 못하자 어린 자식들에 대한 치기가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튕겨져 나가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던진 불만은 불평이 되어 나날이 쌓여갔다. 이끼가 끼듯 두텁게 두텁게. 삶의 언저리에서 늘 뒤처졌던 고향이 어느 순간 목을대까지 치고 올라오는 날엔 더 그랬다. 술로도 달래 지지 않던 먹먹함을 책을 보는데서 달랬다. 먹고살 만하니 아버지는  책을 읽으라고 했다. 공부하라고 했다. 아는 게 힘이라고 했다. 배워서 남 안 준다고 했다. 그래야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라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공부에 한을 쏟아냈다. 차근차근 아버지의 말을 잘 들었다면 아버지가 바라는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땐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놀기 바빴고 도망 다니기 바빴다. 헤어날 수 없는 압박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지금 헤아린 것을 그때 조금만 헤아릴 줄 알았더라면 얼마나 유용한 사람이 되었을까. 아버지의 깊은 뜻이 예쁜 가을날 낙엽 눈물이 되어 흩날린다.


 엄마 돌아가시고 집안 정리할 때 자식들이 나눠갖는 건 책뿐이었다. 어느 것을 취하고 버려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다 갖자니 좁은 아파트에 둘 데가 없고 버리자니 살점이 떼나 가는 듯 쓰리고 아팠다. 많은 걸 버리고 추리고 추려 세계명작 전집을 버리고  '한국사대관' 책만 챙겼다. 집으로 들고 들어와 내 방 책꽂이에 꽂은 후로 한 번도 펼쳐본 적 없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저 책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고 언젠가는 한 번 들여다보겠지 실현 가능한 꿈도 꿔본다.  아버지의 흔적을 읽을 수 있고, 아버지의 삶의 철학이 보이는 책이다.


일전에 책 정리 한다고 학습만화책부터 전집, 오래된 동화책을 박스채 버렸다. 버리면서도 그 육중한 무게에 눌려 화를 냈더랬다. 하나 둘 살 때는 기분 좋았고 읽고 난 후 책꽂이에 꽂을 땐 나름 생각해 가며 장식용으로도 볼 만했는데 버릴 때는 공들여서 버려야 하니 아이러니한 시간들이었다. 아이들도 커가면서 책을 들여다보진 않는다. 굳이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음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굳이 또 돈을 주고 사는 일은 무슨 조화일까.


 '한국사대관'과 그 옆 책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오래된 책은 오래되어도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버리고 나서 후회하기 전에 또 한 번 들여다보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어떤 책을 버려야 할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귀한 물건을 알아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오래된 책들은 읽진 않아도 그대로 두고 봐도 소중한 아버지가 내게 남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유산임을 아는 것이다.

이전 02화 이버지와 양철 대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