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와 엄마 생각
홍시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생각이 난다 / 홍시가 열리면 /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눈에 넣어도 / 아프지도 않겠다던 /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ㅡ나훈아ㆍ홍시
내게 홍시를 건네는 어머니의 손길이 잠시 멈칫한다. 드실 수 있겠냐는 무언의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답하기도 전에 내 앞에 내려놓는다. 배가 고플 때쯤 시간 맞춰 달달한 홍시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 갈 것을 생각하니 이미 배는 부르다. 고운 접시에 담긴 매끄럼하고 결 고운 홍시의 모양새가 다소곳한 수줍음 많은 엄마를 닮았다. 붉은 치맛폭을 감싸고 수줍은 듯 아니 수줍은 듯 얌전하다. 옆에 놓인 투박한 밥숟가락이 고운 쟁반 위에 얹혀 폼을 잡고 나를 쳐다본다. 숟가락, 그건 어쩌면 당신을 지키고 싶었던 작은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집 울타리에 감나무가 지천으로 뻗어 있어도 함부로 따 먹을 수 없었던 셋방살이의 기억 한편에 붉은 홍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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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지막한 대문을 들어서면 우물가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우물가 뒤편으로 화장실이 있었던 제법 규모가 넓었던 집을 우린 독채로 썼다. 그 옆으로 백 평 정도의 너른 땅에 온갖 채소들이 심겨 있었고, 담장 둘레를 옆집 감나무와 무화과나무가 가지런히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넘어온 가지가 더 굵었으니 우리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감나무도 우리 것이었고 집도 우리 것이었고 백 평이 넘는 넓디넓은 땅도 우리 것이었다. 우리 것인 줄 알았다. 그 일이 있기까지는.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 도봉감은 충분히 일용한 양식이었고 두고두고 먹을 유용했던 식량이었다. 크기도 커서 하나를 먹고 나면 어린아이의 배는 이미 불렀다. 감이 지천으로 많았다 해도 우린 늘 굶주렸다. 그렇다고 쟁여 놓고 먹을 수 있는 처지도 못 되었다. 떫은 감을 따서 익혀 먹어야 할 때쯤 , 채 익기도 전에 소금물에 찌든 시퍼런 감을 꺼내 먹다가 혼난 적도 많았다. 입이 떫었던 만큼 회초리의 기억도 떫다.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조그마한 단지 안에 떫은 감이 몇 개 들어앉았는지, 언제 넣어두었는지 귀신같이 알고는 익지도 않은 감을 먹었다고 혼쭐을 냈다. 배가 고팠던 어린 딸은 엄마가 세어 둔 대봉감을 손댈 수 없어 담을 타기로 했다. 키 닿는 곳에는 이미 남아 있는 감이 없었고 작대기로 따내려 해도 힘에 부쳤다. 돌멩이를 던져도 보고 나뭇가지를 널어 뜨려 흔들어보기도 했다. 푸르죽죽한 이파리만 얼굴을 할퀴며 떨어질 뿐 원하는 도봉감은 나를 위해 하나도 떨어져 주는 것이 없었다. 나무를 탔다. 가지가 부러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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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엄마는 대봉감 한 박스를 들고 오셨다. 어디서 났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딸자식 준다고 어느 시장에 가서 결 고운 도봉감 한 박스를 샀으리라. 동네서 얻은 상처 입은 감은 당신이 드시고 때깔 좋은 것으로 골랐으리라. 좋은 것 주소! 한 네댓 개 더 넣어주소! 했으리라. 해가 저물도록 거실 한편에 뒀다가 날이 밝으면 머리에 박스를 이고 버스를 타고 새벽이슬을 머금고 오셨으리라. 당신이 좋아하니 나도 좋아할 거라 여기셨다. 한 박스는 너무도 많았다. 차례차례로 홍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크기 순서대로 먼저 익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홍시가 되면 어쩌나? 그것 또한 가을에만 할 수 있는 기다림이었다.
물렁물렁한 느낌이 싫었다. 후루룩 핥어먹는 엄마만의 방법은 왠지 내외하는 거리만큼 정갈하지 않았다. 밥숟가락을 옆에 두고도 무용지물이다. 붉은 살결이 다치지 않게 꼭지 부분까지 껍질을 살살 벗겨내고 입맛을 다신다. 딱 봐도 그냥 입으로 들어갈 태세다. 엄마의 작은 입은 벌써 백 평만큼 벌어져 있다. 너무 멀리 감마중을 나갔다. 한 입 배어 무니 움푹 파인 이빨 자국 사이로 홍시 국물이 손바닥 안으로 두두둑 흘러내렸다. 약간 떫은맛이 나는 부분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후루룩 삼킨다. 순식간에 그 큰 감 하나가 작은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술을 부렸다. 쓱 소맷부리로 감물 묻은 입술을 닦아낸다.
"숟가락으로 퍼 먹어야지, 더럽게 손으로 핥아먹으면 우야요."
대꾸도 않는 엄마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 잔소리하지 말라는 투다. 어쨌거나 맛나면 그만이라는 눈빛이다. 손에 묻은 국물마저 아깝다 혓바닥으로 핥는다.
핀잔 아니 핀잔이다.
"뭐 어떠노, 내 입에 들어갈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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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옆에 놓인 투박한 숟가락을 든다. 큰 숟가락으로 밥 퍼듯이 홍시를 푹 펐다. 한 입에 호로록 넘기시며 야무지게 숟가락에 붙은 것까지 훑었다. 엄마처럼 먹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 홍시의 중간을 가른다. 숟가락으로 퍼 보지만 그리 깔끔하게 숟가락에 담기지 않는다. 숟가락 표면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린다. 옆구리가 터져 결국 손으로 집어 들다 어쩔 수 없이 쟁반에 담아 들이키듯 입으로 가져간다. 엄마가 숟가락을 쓰지 않는 이유였구나. 숟가락이 필요가 없었구나. 더럽게 먹는다고 잔소리했던 게 부끄러웠다. 홍시는 그렇게 약간 더럽게 핥아먹어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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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다리보다 얇았던 감나무 가지는 아래로 꺾이다 휘어져 집 담장 위에 걸쳐졌다. 기와 담장을 두서너 개 깨고 나서야 나도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감쪽같았다. 감을 따다 넘어진 걸 숨기기에는. 기와 담장이 문제였다. 와장창 일그러지는 소리에 놀란 뒷집 아주머니는 내가 많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부터 하셨고 아무 일 없는 듯 옷매무새를 고치는 걸 보시고 혀를 찼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와 담장은 안 물어줘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 결국엔 기와 담장 값을 물어줬다. 얼마나 비싼 값이었는지 그땐 몰랐다. 지금도 얼마를 물어줬는지는 모르지만 새로 심은 감나무 한 그루 값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감나무에 새 잎이 나고 감꽃이 열리고 감이 달렸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면서 도봉감을 따 먹었어야 했는데, 그 나무를 바라보며 산 지 십 년은 넘었을 즈음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감나무에 열린 비싼 감을 얼마나 많이 따 먹었는지는 모른다. 비싼 돈을 주고 심었던 감나무를 그때 빼 왔어야 했는데, 감나무보다 더 귀한 걸 엄마 아빠가 얻었을까, 그대로 두고 온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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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가 되려는 때 홍시가 먹고 싶었다. 추운 겨울날 입김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 빠알간 홍시가 유독 먹고 싶었다. 어느 날 무심코 흘러 보낸 얘기를 엄마는 들었는가 보다. 당신 아니면 대봉감 홍시를 구하기 힘들겠다 여기셨는지 스윽~~~검은 봉다리 하나를 건넸다. 혼자만 먹으라고,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부엌에 앉아서 먹으라고. 그 빠알갛던 홍시가 얼마나 맛있었는지는 아마 아이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 살아도 살갑지 않은 혈육이었고 내 편할 때 찾아가 뵙는 합리의 원칙이었다. 따뜻한 밥 한 끼 정성스레 대접할 수 없는 날이 오래였다. 엄마의 터전이 바뀌었고 엄마의 삶이 바뀌었고 엄마의 친구가 사라졌다. 엄마도 엄마를 잃어버렸지만 나도 엄마를 잃어버렸다. 엄마의 삶이 낯설었다.
병원에 계신 엄마를 찾아갈 때 홍시를 샀다. 많이도 필요 없다.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두세 개 정도 들고 간다. 딸보다 홍시를 더 먼저 알아보고는 어서 오라 손짓하며 입으론 뭔가 말을 하고 있다. 씻지도 않은 홍시를 손에 들고는 연신 어디서 샀냐고 물으신다. 누구누구한테 가면 그냥 줄 건데 또 비싸게 산 건 아니냐며 잔소리를 널어놓는다.
엄마, 요즘은 다 사서 먹어야 해요.
그냥 주는 사람 없어요.
엄마의 부재가 나를 아득하게 만들었다. 엄마의 부재는 우리 것이 아니었던 백 평짜리 그 넓은 땅보다 더 컸다. 기와 담장 값을 치르고도 마음껏 따 먹으려 심었던 감나무도 엄마의 부재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지천으로 널렸던 감나무의 감이 익어갈 무렵 엄마는 붉은 홍시가 되어 젊음을 불살랐다. 눈치 안 보고 따 먹으려 했던 감이 얼마나 열렸을까. 내 키만큼 자라 감꽃이 피는 걸 봤을까. 가을이 익어갈 무렵 익어가는 홍시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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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나서는 내게 봉지에 담긴 대봉감을 건네신다. 가서 드시라고 두둑이 넣으셨단다. 그 마음이 고맙다. 엄마를 떠올릴 수 있었던 짧은 시간이 소중했고 두 손 부끄럽지 않게 따뜻한 마음 담아 감사 인사를 건넸다. 대봉감이 익어 홍시가 되면 또 그리운 엄마가 낯설지 않게 떠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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