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star와 오래된 인연들
버리지 못하는 것들ㆍ그 시절 Goldstar의 추억
동네서 제법 잘살았던 언니네로 우린 밤마실을 갔다. 누룽지를 싸들고 김치를 싸들고 신문물이었던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어두운 밤길도 무섭지 않던 시절이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문간을 들어서면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삶은 고구마를 가져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어김없이 들른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이 몇 안 되었기에 부자는 손에 꼽혔다. 먹을 것 당연히 많았고 그 집에서 무슨 프로였는지, 뭘 봤는지는 까마득하지만 그저 텔레비전을 구경하기 위해 함께 어울려 다녔다. 언니 노릇한다고 심부름을 시킨 건 아니었을지라도 동생이었던 우리는 묵묵히 짜인 각본대로 원을 그리듯 한 이불을 덮으며 모여 앉았다. 군불을 땐 아랫목은 지글지글 끓었고 외풍이 심했던 벽 사이로 뚫고 들어온 겨울바람은 새로 바른 문풍지까지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 언니를 지금도 만나고 있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비료포대로 꼭 감싸둔 생무와 고구마를 꺼내 둥그런 이불 위에 얹어 놓고 오도독오도독 씹어먹으면 꿀맛이었다. 씻지도 않은 고구마와 생무는 단단한 이빨로 껍질을 벗겼다. 껍질 벗기는 경력이 쌓이다 보면 얇게 벗기게 되는데 우리가 생각해도 그 능력은 신기했다. 순식간에 배가 부를 정도로 먹었던 걸 보면 말이다. 고구마는 생고구마보다 삶은 고구마가 더 인기였다. 삶은 고구마 위에 김치를 척 걸쳐 얹어 먹으면 피자보다 더 맛났고 치킨보다 훨씬 맛있었다. 텔레비전은 혼자 돌아가고 우리는 겨울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밤을 훌쩍 넘겼다. 함께 어울려 텔레비전을 보던 그 시절은 모두에게 즐거웠다.
Goldstar는 진짜 우리에게 스타였다.
그러다 우리 집은 몇 년을 더 지나 비싼 텔레비전을 구경했다. 남의 집에 가지 않아도 언제든 보고 싶은 채널을 돌릴 수 있었고 하루종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들장미 소녀 캔디를 보았던 기억이 강렬했고 플란다스의 개도 수없이 보았다. 그런 신문물을 접하면서 몇 날 며칠을 넋 놓고 앉아 보노라면 '의미를 알고 보나?' 하시던 아버지, 그 말도 무슨 뜻인지는 물론 알지 못하던 나이, 비싼 전기료 아껴야 하던 그 시절에 텔레비전은 분명 우리에겐 사치였다. 그 사치를 마음대로 누리지 못하도록 했고 아버지가 일찍 오시는 날은 텔레비전 대신 한자 책이 펼쳐져야 했다. 그러다 뒤늦게 아버지가 주무시면 그때서야 텔레비전을 켰다. 늦은 시간 그 옆에서 조불다 잠이 들기 일쑤였고 텔레비전은 혼자서 '찌지지직~~'거리며 밤을 새웠던 적도 많았다.
'동해물과 백두산'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성인이 되고도 한참 지나 중년이 되어가던 무렵, 어릴 적 함께 언니네로 텔레비전을 보러 다녔던 친구들이 모였다. 서울로 살림을 살러 간 친구도 만날 겸 우리들만의 첫 여행을 갔다. 미리 계획된 일도 아니고 여러 날을 기다린 것도 아니다. 다 같이 얼굴 한 번 보자는 제안에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년배 9명이 모두 모이진 못하지만 그날 첫 만남의 테이프를 끊었다. 배뚱구리(봄동) 캐 먹고 무 뽑아 먹던 코흘리개 친구인 오래된 인연들이 고급 벤츠를 몰고 오랜만에 서울 밤길을 향해 달렸다.
낯선 공기가 우리를 뭉치게 했다.
오래된 친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나도 낯설지 않다. 다시 어린 시절의 그때로 돌아가 아무 편견 없이 세월을 욕했다. 다시 사춘기가 찾아와 밤낮없이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해서 미치겠다며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행동에 벤츠 안에서 커피를 마시다 웃다 쓰러질 정도였다. 겨울바람이 기분 좋게 차창 안으로 들어와 얼굴을 때려도 어느 누구도 져주는 일 없다. 매서운 바람도 다시 사춘기 앞에선 고꾸라졌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를 함께 겪으면서 우리도 함께 성장했고 때론 아픔도 나눠 가지면서 여태껏 살아온 삶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는,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중년의 아줌마들의 인생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그 속에서 베스트셀러 두세 편을 썼다.
세월이 유수다.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친구 집에 도착했다. 경제적인 부를 제법 누리며 사는 친구도 어린 시절 친구 앞에서는 그저 코흘리개 친구였다. 삶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듯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친구가 준비한 몸빼바지를 입으며 연신 호탕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전신 안마기를 처음 사용해 봤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시원하단 표현보다 손가락이 눌려지고 팔이 눌려지고 뼈마디를 부수는 듯해서 내심 겁도 났다. 신문물 텔레비전을 접하듯 내겐 신문물인 전신 안마기였다. 멈추고 싶어도 멈추는 방법을 몰라 혼자 어쩌지 못하며 꾸욱 참았다. 처음이란 놈이 참 바보스럽기도 하고 무섭단 생각도 했다. 잘 사는 그녀도 비싼 안마기는 6년을 할부로 샀다는 능청스러운 말투에 얼마나 또 웃었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은 선뜻 살 수 없어 다시 쳐다보게 되고 그래서 더 고귀하게 보인다. 내게는 GoldStar도 신문물이었고 벤츠도 그랬고, 6년을 할부로 샀다는 안마기도 선뜻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얼마 전 봉리단길을 지나다 오래된 Goldstar가 그려진 텔레비전을 보았다. 손가락으로 다이얼을 돌려 채널을 맞추던 Goldstar는 외형을 고쳤는지 말끔하다. 예전의 물건들을 다시 새로 쓰는 레트로 열풍이 한창이었을 때 엄마집에 있던 구닥다리 물건을 버린 것이 내심 안타깝게 느껴졌다. Goldstar는 구닥다리라 하기엔 참으로 세련된 골동품이다. 주인장이 정갈하게 다듬어 놓고 길가에 세워두었다. 젊은이들의 거리에 젊은이들은 그러나 옛 물건엔 관심이 없다. 동신버스가 좁은 길을 지나다녔고 털털거리는 경운기가 시장통을 누볐던 거리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찾아와 별스타에 오를 만큼 인기 있는 거리다.
봉리단길의 Goldstar가 옛 추억을 더듬게 한다. 고마운 추억의 이름들이다.
#Goldstar#금성텔레비전#봉리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