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고향에도 가을이 익어간다. 노란 벼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수확하는 계절이면 마음도 풍성해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포만감을 느낀다. 고향 가을 들녘을 부모는 얼마나 거두었을까. 내가 바라보는 부모의 고향은 고즈넉하다. 익어가는 가을 들녘도 해가 넘어가는 고향 마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부모는 당신들의 고향을 지금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게 될까. 도시생활에 물들어 어쩌다 밟게 되는 고향은 평화롭기만 할 뿐 아무런 인사도 미동도 없는데 간간이 부는 가을바람에 언뜻언뜻 스치는 기억이 흠칫 아리듯 아프다.
부모는 당신들의 고향을 떠난 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많다. 아버진 당신 고향을 버렸다 하셨고 엄마는 당신 고향을 늘 그리워하셨다. 삶의 터전을 버렸을 때부터 고향이란 단어는 없었다. 팍팍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아무 가진 것 없이 정착한 서울살이가 분명 쉽진 않았을 터. 고향을 버린 만큼 그만큼 지난한 삶이었으리라, 고향 없어도 잘 산다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무턱대고 덤빈 젊은 혈기인 줄 알았다. 꺾지 못한 고집인 줄 알았다. 고향을 버린 설움과 버릴 수밖에 없었던 분노가 겹쳐져 아직도 부모의 삶은 고향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무덤 두지 마라 하셨다. 자식들 찾아오지 않는다, 당신이 부모를 찾지 않으니 당신 무덤도 만들지 마라 그리하라 하셨다. 무덤 없으면 찾아가 엎드릴 곳도 없는데, 부모를 잊어버릴 수도 있는데. 오빠는 아버지의 완고한 뜻을 받들어 화장을 하고 고향 바다에 뿌렸다. 아버지 보낸 자식들의 눈물이 당신의 고향 바다 어디메쯤 흘렀으리라. 그나마 당신 가슴은 고향에 얼만큼 두고 가셨을까 모르겠다. 산천이 아버지 무덤이었지만 보고 싶을 땐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 아플 새도 없었다. 내 몸 챙기기 바쁜 스물여덟의 나는 엄마가 되어가는 해였다.
산소 오르는 길에 굵은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알밤인 줄 알았다, 너무 실해서. 도토리가 꽤 크다. 고향을 담은 도토리 몇 개만 줍자 했는데 사진만 찍을 마음이었는데, 하나 둘 줍다 보니 핸드백 가득 담겼다. 너무 많아 해마다 도토리 묵을 해 드시는 지인 어머님 드리고 싶었다. 좋아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꽉 차 자꾸만 몸을 숙여 더 줍게 된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른다. 벌써 묵 한 접시가 무덤 앞에 놓였다. 햇살 넘치는 무덤산이 환하게 반긴다. 이렇게 많은 도토리를 주워 가면 다람쥐는 올 겨울 무얼 먹고살까 순간 걱정이 앞선다. 아직 겨울 준비하긴 이른 계절인데, 한창 먹어야 할 텐데. 내가 과한 욕심을 부려 다람쥐가 굶을까 이토록 심란하다. 부모의 무덤 길이 밤 천지 도토리 천지다. 풍성한 마음 무덤 앞에 두고 와 다행이다. 그리움도 한가득 온 산에 물든다.
무덤가 산길을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 발걸음보다 한결 빠르다. 도토리 줍느라 보지 못했던 우거진 나무들이 올곧게 서서 고향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다. 단풍산이 무덤을 덮었다. 나뭇가지 위에 걸쳐진 붉은 해가 한쪽으로 기울며 노을을 퍼트린다. 불꽃놀이 불꽃이 터지듯 온산이 붉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고향집이 내려다보이는 들녘에 다시 시선이 머문다.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노란 들판은 서둘러 저녁 이슬을 덮고 있다.
붉은 슬레이트 지붕이 보이는 저기 어드메쯤 부모가 살던 집터다. 지금도 갈색 지붕이 그대로 보인다. 아버지 떠난 후 몇 해 전까진 어느 누가 살았으리라. 지금은 주인 없는 수없이 많은 계절을 파아란 하늘만 떠받치고 있다. 애써 눈길이 간다, 자꾸만. 아버진 왜 저곳을 버렸을까. 감히 알지 못하지만 버렸다는 의미도 모른다. 모르긴 해도 어른이 된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자식들 공부 때문에 유학 보내려 이 촌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만 짐작한다. 그래서 택한 곳이 낯설고 낯선 먼 서울이었으리라.
서울살이는 만만했을까. 몸뚱이만 갖고 무일푼으로 시작한 타향살이의 설움을 말해 무엇할까. 돌아 돌아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할 때는 고향을 버리고 간 지 강산이 한 번 바뀐 뒤였다. 가진 것 없으니 살 붙이고 살아야 하는 곳이 고향이었으리라. 그것마저 믿을 수 있었을까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당신들의 선택이었으리라.
칠천도 앞바다 바다 내음이 풍기는 어느 모퉁이 나지막한 집에 귤 달린 나뭇가지를 쳐내느라 늙은 외삼촌의 손길이 분주하다. 마실 다녀오시는 듯 인도인지 차도인지 모를 골목길을 힘겹게 걷는다. 허리는 이미 반쯤 꼬부라졌고 터덜터덜 걷는 두 다리는 접힐 듯 얇은 백지를 닮았다. 차창 문을 열어 어디 갔다 오시느냐 불러도 모른다. 귀도 잘 들리지 않을 연세다. 얼굴은 알아보기나 할까 세월이 무심하다. 네가 누구냐, 나는 니 잘 모른다. 니 오빠는 안다. 맞아요, 저는 외삼촌을 알아요, 저는 외삼촌이 아는 그 오빠의 동생이에요. 오는 귀도 먹고 가는 귀도 먹었지만 살아내는 데는 지장 없다. 오히려 뒤도 없고 앞도 없는 강철 같은 인고만 쌓였다. 두 다리가 얇은 종이처럼 구겨져도 용케도 고향을 지켜내고 있다. 삶의 용수철이다. 귤 손질하던 꼬질꼬질한 손끝에 용돈 쥐어드리며 또 기약 없는 내일을 약속한다. 고기 잡던 투박한 손끝에서 향기로운 귤내가 코끝으로 퍼진다.
자식들은 왔다 갔나요 뻔한 물음을 던진다. 내가 올라갔다 왔다 한다며 한 마디 뱉으시는 웃음이 멋쩍다. 그래요, 먼 곳에서 아버지 보고 싶어 내려오는 것보다 당신이 올라가시는 게 편하시겠지요, 아마요. 빈말인 듯 무엇하리오. 먼 데 자식보다 가까운 이웃이 어쩌면 나을 수도 있다. 칠천도 앞바다는 엄마의 고향이자 생활의 터전이다. 귤나무를 정돈하시는 늙은 외삼촌은 우리가 가면 늘 고기를 잡아 맛있는 회를 떠 주셨고 매운탕을 끓어주셨다. 그때가 좋았다. 지금은 차가 지나는 다리가 생기고 근사한 카페가 생기고 외지인들이 앞다퉈 들어와 생활의 터전을 바꾸어 놓았다. 그도 이젠 고기를 잡진 않는다. 귤내 나는 손이 얼마나 오래갈까. 또 저 손끝에 어떤 삶을 이어 붙이며 먹고 살아갈까. 호기롭던 그 시절 떠올리며 무얼 추억하고 계실까 저 늙은이의 가슴은.
넓은 칠천도 앞바다를 사이에 두고 내외하듯 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다. 고향을 지키는 늙은 외삼촌은 그렇게 고향을 버리고 떠났던 내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고향을 떠난 자의 무게는 누가 잴 수 있을까. 설움의 무게가 같을 수야 없겠지만 굳이 무게를 달지 않아도 살아내는 자의 설움이 더 크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잊혔을까. 막걸리 한 잔에 잊힐 설움이면 진즉에 잊었을 터, 한 잔을 마시면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한 잔 더 들이켰으리라. 초로의 외삼촌이 그랬고 아버지도 그때 그랬다. 깡그리 잊기 위해 술병이 아닌 독주를 주전자째 드셨다. 저녁노을이 막걸리 잔 속에 살포시 떨어진다. 그 붉음이 너무 붉어 애써 눈물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눈물 담긴 막걸리 잔을 칠천도 앞바다에 흩뿌리면서 늙은 외삼촌은 묵은 삶을 훌훌 털어냈다.
아버지는 고향을 버린 게 아니었다. 잠시 떠나셨던 것이다. 돌아갈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돌아가지 않았던 것임을 이제야 조금 헤아려진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터전에 당신을 묻고 오르내리면서 사는 길이 오르막처럼 험난하다가도 뛰듯 달려가는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 내리막길에서 잠시 그리워하는 고향길이 사뭇 남다르게 다가온다. 부모는 다시 못 올 고향이지만 나는 이제야 정답게 부모의 고향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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