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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Dec 05. 2024

오늘 같은 날 엄마도 왔으면 좋겠다

아버지 기제사날에


겨울 날씨치고는 포근했다. 아버지 기제사날이면 늘 추워서 기제를 준비하는 이들이 고생해 마음이 쓰였는데 오늘은 제법 포근해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예전과 다르게 따뜻한 날씨가 문득 고마우면서도 한편에선 야릇한 감정이 인다.


 내 아버지 하늘로 가시는 날도 새벽 빙판길에 까치가 미끄러질 만큼 얼어붙은 겨울이었다. 아직 세상을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무거운 몸을 부여안으며 차가운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꽁꽁 싸매듯 붙잡은 버스 안에서 눈물 대신 바깥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울지 마라, 울면 아기가 슬프다 하시던 당신의 목소리를 연신 떠올렸다. 떠나는 아버지도 마음 아픈 사람이었지만 내게 다가오는 아이도 축복이었던 때였다. 그렇게 큰아이는 짧고  얇은 노란 잠바로 감싼 뱃속에서 쌔근쌔근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야, 가는 사람 있으면 오는 사람 있는 거야. 먼 길 가는 아버지의 배웅을 엄마는 마다하셨다. 끝까지 따라가다가는 당신도 죽을 것 같다고, 그래서 애써 기쁜 마음으로 남아 있는 손님을 받았다. 아버지 가시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동네 마을회관을 빌려 그곳에서 59년의 회한을 풀어냈다. 무던히도 애썼던 지난날을 돌이켜 길지 않은 당신의 삶을 사흘 동안의 만남으로 영면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두고 온 고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별 없었다. 그래봐야 친척들 몇 분, 당신 가시는 길에 당신 좋아하시던 막걸리 한 사발로 대신하며 추운 겨울을 섧어했다. 따신 봄에나 가시지, 따신 봄이 머잖아 올 건데 무에 그리 떠나기 바빴을까, 걱정하던 사람들의 눈가엔 오히려 슬픔이 가셨다. 추운 겨울이면 어떻고 따뜻한 봄이면 어떠리. 떠나는 당신은 알 리 없는데.


 추운 겨울날 하늘로 보내드렸던 날은 해마다 겨울이 오는 입동 무렵이다. 남은 대봉감 몇 알이 하늘가에 둥둥 떠 있고 마른 잎 하나 달려 있지 않은 삭막함을 더한다. 그래도 저 하늘가 어딘가에서 당신의 지난했던  59년의 삶을 들여다보고 계시리라. 그리하여 입동 무렵 당신을 기다리는 자식의 집으로 찾아와 아주 젊은 시절의 청춘을 보낸 사진 하나 올려놓고 그리워하며 이름 불려도 좋겠다. 엄마 살아 계실 때 아버지를 위해 굵직한 문어를 준비했다. 겨울 문어는 비쌌고 비싼 만큼 많이 드시고 가시라 하나를 더 주문했다. 남은 자를 위한 고마움의 표시였으며 고생한 자를 위한 선물이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넘쳐났던 그날의 잔칫상을 엄마는 잊지 않으셨다. 엄마도 그렇게 아버지가 좋아하던 문어를 상에 올리며 하늘로 가셨다.


 엊그제 월요일은 아버지 기제사날이었다. 날씨가 포근해 살 것 같다며 전화를 걸어온 오빠는 일을 도와준다며 하루 월차를 냈다고 했다. 아버지가 흐뭇해하실 것 같다며 한마디 던지고 나는 그날 은행잎 날리는 거리로 단풍구경을 갔다. 어떤 이는 이 겨울날 바쁘게 움직이며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시댁의 어른을 위해 서른 해 동안 제사상을 준비하고 있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 여기며 지금껏 가족이라는 끈을 이어주며 살아내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 서울로 도시로 제 밥벌이 떠날 때도 아들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자식들은 아직은 터를 지키며 일 년에 하루뿐인 날을 애써 그리워해 주고 있다. 부모를 생각해 주는 그 세월이 얼마든 간에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늦은 저녁 수업을 마치고 오빠네로 갔더니 도시로 떠난 장성한 조카들은 내려오지 않았고 하늘에 계신 부모와 함께 늙어가며 부모를 닮아가는 뒷모습의 남자와 여자가 보였다. 날씨가 포근해서 오늘은 덜 고생했겠네 위로의 말을 건네며 늘 그렇듯 고생했단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제는 불편함도 원망 섞인 푸념도 없다. 지난 세월 모두 받아내고 토해내고 서로에게 던졌던 미움도 조용히 사라져 갔다. 조카들의 자리를 내 큰아들이 지켜주면서 그도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의 기젯상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지금까지 기젯날 거의 참석하고 있는 큰 녀석에게 나의 오빠는 또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아버지 기제사날에 엄마가 생각났다. 특별하달 것도 없는 평범한 날인데 아이들이 없어 소란스럽지 않아서일까. 아이들이 북적거릴 땐 그들의 재잘거림에 부모가 떠오르다가도 묻혀버리는데 아이들이 없는 오늘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소용돌이치며 몰려왔다. 한 자리에 모두 둘러앉아 비싼 문어 다리 하나 씹으며 투닥거려 봤으면 좋겠다. 오늘 같은 날 엄마가 한 번만 내려왔으면 좋겠다.


#아버지기젯날#엄마오늘한번만내려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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