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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Nov 28. 2024

그 많던 추억의 골목길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추억의 골목길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돌다리가 생기면서

 옛 집들은 뜯기고 또

 옛 집들은 생기를 되찾았다

 읍에서도 더 시골이었던 곳은

 얕은 숨을 내뱉으며 변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모은다

 갤러리도 보이고

 보호하는 팽나무도 보이고

 목욕탕이 문화원으로 변하는

 옛 거리가 멋스럽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구한다


 천변의 강물에 몸을 담가

 옆에 앉은 술도가에서

 막걸리 들이켰던 날도 이제는 옛일

 오래된 집들이

 오래된 옛 일을 기억하고

 담장에 수를 놓아

 웃음꽃을 피우며 젊은이들을 반긴다

 사라지는 것들을

 사라지지 않게

 오래된 정취를 품어달라

 복조리에 담았다

 예스런 추억들

 넘치지도 모라지지도 않게

 억하기 좋을 만큼의 열정으로



ㅡㅡㅡㅡㅡㅡㅡ


  중년이 되도록 살았던 고향이라는 공간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양철대문은 녹슬어 골동품이 될 수 없었고 찌그러지고  깨진 장독대는 발길질에 차여 파편으로 뒹굴고 있다. 세월을 알 수 있는 건 길가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다. 봄이면 벚꽃 향기에 취해 옛날의 풍경을 깡그리 잊고, 가을이면 단풍에 취해 옛일을 묻고 만다. 나이 들어가는 나는 이제 그곳에서 무얼 기억해야 할까. 그 많던 골목길의 그리움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 사라져 버렸다.


 학교를 오갔던 번잡한 골목길은 외국인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그대로 세월 속에 묻혀버리고 그곳에 대신 낯선 이들이 주인이 되어 또 낯선 이들을 고용해 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갔다. 변한 건  골목들이다. 그 골목길에서 보는 얼굴도 낯설고 이름도 낯설고 바라보는 시선은 더 따갑다.  내가 외국인이며 내가 오히려 이방인이다.


 나이 들면서 갖고 살아야 하는 것. 누군가는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오래된 추억들은 이방인의 것이 되고 새로운 것들은 내게 너무 낯설다.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 오래 머무를 수 없는 현실이 외려 무섭기만 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수많은 왁자지껄한 사투리 내뱉던 그리운 골목들의 풍경은 다 어디로 갔을까.


#골목길#어린날의소회#변한건내가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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