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마음으로
ㅡㅡㅡ올 봄에 끄적거렸던 이야기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날이 차다. 해가 서쪽 하늘로 넘어갈 즈음, 저녁을 먹으러 어탕 국숫집에 들렀다. 날이 차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다거나 몸살로 으슬으슬 찬기운이 몸에 들이칠 때 가끔 들르는 곳이다. 국수가 들어간 진한 어탕에 밑반찬도 대여섯 가지 깔끔하게 나오니 가격 대비 꽤 괜찮은 곳이다. 혼자 가서 먹어도 별 눈치 보이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어 더 좋다. 오늘도 찬바람이 칼바람으로 닿아 몸이 으슬으슬했다.
따뜻함이 먼저 몸에 스미는 것 같다.
식당 안은 어르신들이 두세 군데 앉아 저녁을 드시고 계셨고 한쪽 테이블에선 가족 단위 식구들이 부산스레 숟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어르신 두 분이 앉은 식탁 바로 앞에 자리를 집았다. 어탕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해 놓고 예전에 한 번 들렀을 때 가게 앞으로 보이는 저 집이 얼마로 보이냐며 주인이 내게 물으신 적 있었던 때를 떠올리며 창가로 보이는 몇 억짜리 집으로 눈길을 돌렸다. 비싼 수목들이 줄줄이 테두리 감싸듯 둘러싸고 있다. 어쩜 저리도 비싼 집에 어쩜 저리도 비싼 수목을 심었을까. 역시 부자는 뭔가 다르구나 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있는 내가 더 마음 부자지 하며 애써 너스레를 떨어보았다.
비싸 봐야 내 거 아닌데.
어르신 두 분이 소주 한 잔 곁들이면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신다.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시는 한 분을 보고 손 씻고 오라며 핀잔 아닌 면박을 한다. 손 씻고 와서 먹으라고, 그게 몸에 배야 마누라가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언뜻 일어나시는가 싶더니 도로 앉으시며 묵묵히 얘기를 듣고 계신다. 하긴 일흔이 훨씬 넘게 보이는데도 부인 눈치를 보고 사시는 게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 된 요즘의 일로 봐선 그 말도 맞다 싶다. 볼일을 보고도 손을 씻지 않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이니 괜찮다고 말했던 예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리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도 함께 앉은 사람이 보기엔 깨끗하게 보이지 않았음이 확실한 것 같다.
세 어르신의 이야기는 주로 살아가는 인생 이야기다.
"나는 마누라가 나를 모라 하기 전에 내가 알아서 한다. 그래야 잔소리도 들 듣고 짜증도 들 낸다."
"그러고 눈치를 보고 우찌 사노. 나는 그리 몬한다."
"그러니 그 따위로 혼자 살지. 내 거태도 니랑 안 살고 짐 싸서 나간다. 인자는 그라모 안 되는 세상이다."
아들네에 가 계신다는 어르신의 부인 얘긴가 보다. 하도 잔소리를 많이 하시고 티격태격 하다보니 부인이 영감 꼴보기 싫어서 나갔나 보다.
"그라고 자식들도 너거 자꾸 싸우고 집에 오는 거 안 좋아한다. 요새 자식들은 부모가 집에 와서 있는 것도 싫어하고 특히 싸우고 오는 거는 더 안 좋아한다."
나는 질책하듯 꾸짖고 계시는 분이 현명하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가는 아이들에게 말을 할 때도 조심스러워지고 결정할 일이 있을 때도 의중을 묻게 되는 건 사실이다. 내 아이들도 이제 어른이 되어 연인을 만날 것이고 결혼을 할 것이고 그들도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대할 텐데 나도 어른이 되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짐 지우지 않는 노후를 살아야겠다고 되돌아보게 되었다. 어탕 국수의 뜨거운 국물이 목울대를 지나 위장으로 빨려가듯 흘러 들어가고 있다.
어떤 인생이 맞고 어떤 인생이 틀린 건 없다. 다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상황에 맞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대처가 잘 들어맞는 그런 인생의 징검다리가 놓였으면 좋겠다. 따뜻한 봄이 가까이 오고 있다.
ㅡㅡ봄이 오는 길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