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주소서
연꽃
겹겹이 쌓인 설움을 한방에 터트리는 것보다
말 못 할 사연 품은 사람들 곁에
조심스레 조심스레 다가간다
자기 몸을 벌려 시름을 안은 연잎들 사이로
한낮이면 태양빛을 지고
저녁이면 노을을 지고 앉아
오가는 불자들 쓸어안는 보금자리로
다소곳이 조공을 받든다
우물 안에 외떨어져 있어도 눈길을 받고
드러누운 꽃잎들 사이에 우뚝 서도 뽐내지 않고
꽃잎을 벗기듯 무거운 삶의 더께를 벗겨내며
고요함으로 가을을 맞는다
꽃 한 번 피우지 못한 꽃잎도 있을 텐데
봉긋 솟은 봉오리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간병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잠시 위로가 되려 바라보라 했다
무엇을 보는지는 몰라도 된다
화려한 옷을 모두 펼친 연꽃보다
새침스레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슬픔을 한 번에 쏟아내지 않고
조심스레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벼랑인 듯 절벽인 듯 애처롭게 매달린
중생의 무게를 안고 떠받치는
그녀에겐 벼랑이고 절벽이어도
몸부림치며 살아내야 하는 꽃잎도 있기에
다만 치열하게 치열하게 붓질하고 있다
그녀도 너처럼 피어오르고 싶다
나도 너처럼 조용히 피어오르고 싶다
연꽃잎을 보며 맞이하는 길이
그 길 끝이 벼랑 끝이 아니길 바라